[김학용 칼럼]

대전 도시철도 2호선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이냐는 ‘교통 철학’의 문제다. 추상적인 철학이 아니다. 나 자신의 출퇴근 방식을 바꿔야 하는 실생활의 문제다. 트램 도입 여부는 승용차를 이용하는 시민들에겐 앞으로 승용차를 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다.

트램은 ‘승용차 버리자’는 교통철학 있어야

2호선 논쟁에는 이 부분이 거의 빠져 있다. 빠져 있다기보다는 숨겨져 있다. 고가(高架)로 간다면 도시철도 증설에 불과하지만, 만일 트램으로 결정된다면 “이젠 승용차를 버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는 정책 변환의 시작을 뜻한다. 2호선이 공중으로 달리느냐 노면 위를 달리느냐는 하는 단순한 차이의 문제가 아니다.

트램방식을 선택하면 6차선 도로의 중앙 부분을 2~3차선 정도를 잠식해야 하는 데다, 600~700m마다 들어서는 역사(驛舍) 부분은 잠식의 폭이 훨씬 더 넓기 때문에 주변의 상가나 주택 부지를 사들여야 한다. 도로는 크게 좁아지고 역사 구간마다 배불뚝이 노선이 된다. 이 도로를 자주 사용하는 승용차족은 찬성하기 힘든 방식이고, 토지 수용도 난제다.

트램 도입은 승용차 운전자들에겐 멀쩡한 도로가 짜증나는 공사구간처럼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2호선, 즉 도마동-서대전 4가-대흥동-원동-가양동-중리동-둔산-충남대를 잇는 노선을 이용하는 자가용 소유자에게 트램 선택은 “당신이 승용차를 버리지 않으면 앞으론 불편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트램은 승용차 이용을 적극적으로 억제하는 정책이다. 승용차보다는 도시철도나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자전거나 보행으로 바꾸자는 녹색교통론자들은 승용차 이용을 억제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뉴욕 파리 등의 ‘승용차 줄이기 실험’

대전발전연구원의 전신인 대전시시정연구단에서 수석연구원을 지낸 박용남씨는 브라질 꾸리찌바시의 녹색교통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녹색교통론자다. 그는 최근에 낸 <도시의 로빈후드>에서 이젠 더 이상 자동차가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자동차 정점 이론’을 소개하면서 뉴욕 파리 등의 ‘승용차 줄이기 실험’을 소개하고 있다. 대전발전연구원 연구원인 이재영씨도 파리시가 승용차 도로를 트램으로 바꾼 사례 등을 들며 대전도 이제는 생태교통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승용차 이용자를 괴롭히는 게 녹색교통의 목표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정책일 수밖에 없다. 대전시가 이런 실험에 동참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2호선을 트램으로 결정한다면 녹색교통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교통정책의 커다란 변화가 아닐 수 없고, 누구보다 대전시장의 ‘교통철학’이 확고하게 서 있어야 가능한 정책이다.

권 시장이 고가냐 트램이냐를 놓고 여론수렴 작업을 다시 진행하고 있는 것은 트램으로 갈 수도 있다는 말인데, 권 시장은 정말 교통철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가? 만일 트램으로 결정이 날 경우 이를 실천에 옮길 각오가 돼 있는가?

권 시장의 엉터리 공약 뒤집기에 혼란만 가중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선거 공약은 트램이었지만 당선 이후 적극적인 추진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트램파에서 권 시장이 시도도 안 해보고 약속을 저버리고 있다고 비판하겠는가? 전임자가 결정해놓은 고가방식으로 그냥 따라가려는 게 권 시장 생각 같다. 재탕 여론수렴은 공약 뒤집기의 명분 찾기다.

물론 권 시장으로선 트램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만큼 입장은 정리해야 할 처지다. 안타까운 것은 논점에서도 방식으로도 전임 시장과 아무 차이도 없는 방법으로 여론수렴을 진행하면서 혼란만 더 가중시키고 있는 점이다.

고가냐 트램이냐 하는 논점도 전임 시장과 다를 게 없고, 타운홀미팅 같은 진행방식도 판박이다. 전임자가 한 것은 믿을 수 없으니 내가 다시 해보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타운홀미팅은 과거보다 더 허술하게 진행하는 바람에 선호도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성은 오히려 더 떨어지고 있다.

또다시 겪는 2호선의 혼란은 권 시장 자신의 확신이 없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다.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 정책을 여론에 물어서 결정하자는 것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진행이다. 여론조사만으로 결정한다면 여론조사기관이 하면 되지 시장이 왜 필요한가?

시장 무소신 땐 위험천만한 ‘로또방식’ 결정

트램이냐 고가냐를 결정하는 기준은 교통의 편리성, 건설비용, 수익성, 사고율, 미관, 환경, 미래 교통수단으로서의 적합성 등 여럿이다.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판단 요소들이다. 도시철도 건설은 시장의 정책적 판단으로 결정돼야 할 문제다. 그런데 지금 대전에선 제비뽑기나 다름없는 로또 방식처럼 가고 있다.

권 시장은 앞으로 실시될 여론조사에서 트램 선호도가 높게 나온다면 공약까지 한 방식이니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현재로서 대전도시철도 2호선을 트램으로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기존의 복잡한 도심 도로 복판에 철도를 까는 건 현실성이 없다. 예타 통과도 장담하기 힘들다.

나는 2호선을 추진한다면 고가 방식이 현실적 대안이며, 따라서 염홍철 시장이 결정한 ‘고가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후임 시장이 누구든 염 시장의 결정을 받아들이자는 제안도 했다. 권 시장이 이와 다른 생각이라면 트램이 아니라 2호선 건설 자체를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것뿐이다. 2호선을 연기한 뒤 획기적인 교통철학 즉 ‘승용차 줄이기’가 가능해지는 상황이 되면 그때 후임자가 하도록 할 수 있다.

2호선 재검토 진정이면 ‘고가냐-취소냐’ 물어야

전임 시장의 결정을 재검토 하려면 ‘고가냐 2호선 취소냐’를 놓고 여론조사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실천이 가능하다. 권 시장은 지금이라도 질문의 제목을 ‘고가냐-트램이냐’로 하지 말고, ‘고가냐-연기냐’로 놓고 바꾸는 게 솔직한 행정이다.

트램을 주장하는 시민단체들도 도시철도 증설 자체를 반대하는 쪽이다. 꼭 하겠다면 트램으로 하자는 ‘주장’이지만, 트램보다는 비용이 더 저렴한 BRT나 시내버스 확충을 더 좋은 대안으로 본다. 이들이 트램을 주장하는 것은 도시철도 건설 자체를 반대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나오는 전략이다. 이런 의도를 잘 모르는 시민들에겐 시민단체도 떳떳한 방법은 아니다.

권 시장이 지금 시민들에게 묻고 있는 ‘고가냐 트램이냐’는 물음은 결과를 책임질 수 없는 무책임한 질문이다. 소신도 없이 표 때문에 무책임하게 엉터리로 내건 가짜 공약의 덫에 걸려 2호선이 또 한번 혼선을 겪으면서 사업 일정만 1년 이상 늦어졌다.

권 시장은 타운홀미팅 진행을 미숙하게 한 공무원들을 감사하라고 지시했다. 시장이 시켜서 하는 일일 텐데 그들 잘못 뭐 그리 크겠는가? 지금 감사의 대상은 아래 사람들의 미숙함이나 공정성 문제가 아니라 시장 자신의 ‘무소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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