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권선택의 ‘경청’ 이런 것인가?

권선택 시장이 지난 시장선거에서 ‘경청’을 내세웠을 때 권선택다운 구호라고 생각했다. 그를 아는 사람이면 그의 ‘경청하는 자세’를 인정하는 편이다. 여느 정치인들은 겉으론 듣는 체 하면서도 금방 자기 고집이 드러난다. 권 시장에겐 그런 고집스런 모습이 보기 힘들었다. 공무원이든 민간인이든 권 시장의 그런 모습을 좋아했다.

권선택, 시장 당선엔 소통 덕도 컸다

지난 선거에서 세월호 사고라는 악재가 야당 후보였던 그에게 반사이익이 되었던 점은 분명하지만, 권 시장 자신의 강점인 경청도 그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이면서도 새누리당 사람들의 마음을 많이 얻었다. 평생 보수당 계열만 지지하던 유권자 가운데도 지난 선거 때는 새정치연합의 권 후보를 찍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 자신의 ‘소통실력’ 덕분이었다.

그는 경청을 선거구호로 했고 경청을 제목으로 책도 냈다. 경청은 어떤 후보의 소통 공약보다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가 시장이 된다면 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권 시장이 보여주는 경청은 소통이 아니라 ‘소통쇼’로 가고 있다.

‘명예시장’은 선거용 ‘공명첩’ 아닌가?

대전시가 11월부터 시행할 ‘명예시장’은 경청을 명분으로 도입되는 것이다. 분야별로 8명의 명예시장을 뽑아 대전시 간부회의에 참석시키고 시장도 정기적으로 만나게 할 예정이다. 별도의 공동 사무실도 제공된다. 그들은 시민들의 뜻을 시장에게 전하면서 정책 건의도 하고, 또 시장의 생각을 시민들에게 전파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명예대전시장은 이름과는 달리 시장과 시민들 사이를 잇는 메신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름을 명예시장으로 붙였다. ‘명예시장’이라고 하면 해당 도시를 대표할 만한 공적이나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부여할 수 있는 호칭이다. 도시 이미지를 높이고 홍보하는 역할에 맞는 이름이다.

메신저와 명예시장은 용어도 역할도 전혀 다르다. 혼용할 수 있는 이름이 아니다. 그런데도 대전에선 메신저가 명예시장으로 불릴 참이다. 명칭만 쓰는 것인데 뭔 문제냐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높임말에도 한도가 있고 법도가 있다. 병원에서 간호사를 높여 의사로 부를 수는 없다.

예전엔 다방에서 ‘사장님!’하고 부르면 손님의 반은 돌아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구멍가게 사장이라도 진짜 주인이어야 사장인데 호칭이 마땅치 않으면 ‘사장님’으로 불렀다. ‘사장님’ 유행이 지나면서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사장과 선생은 아무나 불릴 수 있는 이름이 아닌 데도 언제부턴가 싸구려 이름이 되고 말았다.

‘명예시장’ 말장난에 대전시 신뢰도만 떨어져

대전 명예시장은 이제 그리 명예롭지 않은 명칭이 될 것이다. 대전시가 진짜 명예시장이 필요할 때는 무슨 이름을 써야 할까? ‘진짜 명예시장’이라고 해야 할까? 메신저를 ‘명예시장’으로 부르는 건 대전시의 신뢰성만 떨어뜨리는 말장난이다.

명예시장은 사실상 ‘허직(虛職)’이지만 자리값을 높이려는 잔꾀에서 나왔을 것이다. 허직은 업무가 따로 없고 이름만 있는 가짜 벼슬이다. 조선시대에는 공명첩(空名帖)을 만들어 돈을 받고 팔았다. 신분을 높이고 명예가 필요한 자들에겐 가짜 벼슬이라도 돈을 주고 살 만한 가치가 있었다.

권 시장은 명예시장이란 현대판 허직을 만들어 공짜로 선물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가짜이긴 해도 구미가 당기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청경쟁률이 높지 않다. 평균 7대 1이다. 이름값으로 보면 70대 1은 돼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 ‘명예시장’이라는 게 말장난이라는 것을 시민들도 알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침산책’ ‘아침동행’은 소통 빙자한 소통쇼

소통을 빙자한 이런 선거운동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전직 시장은 ‘아침산책’이라는 행사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200~300명의 시민들을 불러 모았다. 이른 아침에 시장과 시민들이 나란히 걷는 장면만 보면 이상적인 지방자치의 모습이다. 그러나 ‘가짜 소통’이었다.

소통이 진정한 목적이었다면 시정의 성과가 조금은 나와야 맞다. 그의 임기 4년 업적은, 도시철도 2호선은 헛바퀴만 돌리고, 56억 원이나 낭비한 것으로 드러난 엉터리 와인축제를 만들었으며, 으능정이 상인들만 더 골병들게 한 스카이로드 사업을 벌인 게 거의 전부다. 시민들과 진정 소통을 원했다면 이 정도로 한심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침산책의 목적은 소통이 아니라 ‘표발 관리’였다. 권 시장은 이런 행사를 이름만 ‘아침동행’으로 바꿔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권 시장이 원하는 소통은 무엇인가? 자신의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시민들이 몰라줘서 애가 타는 것인가? 시민들의 좋은 생각이나 정보를 다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것인가? 전자라면 시장은 언제든지 보도자료를 만들어 전달할 수 있고 기자브리핑이 가능하다. 후자라면 지역의 신문 방송 인터넷 SNS 등에 쏟아지는 뉴스와 정보를 직접 챙기기에도 부족할 것이다. 또 시장이면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의 시민들을 만날 수 있는데 왜 소통문제를 걱정하나? 꼭 아침동행을 따라해야 하고 웃기는 명예시장증을 발급해야 하는가?

세종은 진정으로 소통을 실천한 군주로 평가된다. 한글 창제 같은 화려한 업적도 소통 정치의 결실이었다. 그의 소통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세종은 무엇보다 소통의 목적이 분명했다”고 말한다. 작금 정치인 가운데 자칭 ‘소통 강조론자’와 다른 점이다.

지금 정치인들 중에는 소통을 외치면서도 소통을 실천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소통을 잘하는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만 얻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능력은 좀 부족해도 소통을 잘하는 정치인을 높이 산다. 정치인이 너나없이 소통론자임을 주장하는 이유지만 가짜가 태반이다.

소통쇼 그만두고 일로 보여줘야

그래도 권 시장은 그런 부류와는 좀 다른 사람으로 여겨왔는데 요즘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권 시장이 명분도 없이 전임자의 소통쇼를 따라 하고, 공명첩이나 다름없는 명예시장증까지 발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내세운 ‘경청’의 진정성을 오히려 의심하게 된다. ‘명예시장’은 그의 공약이긴 했으나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면 철회하거나 수정하는 게 마땅하다.

권 시장은 ‘소통쇼’에 나서지 말고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사실 소통은 당사자의 자세와 태도의 문제이지, 만나는 시민의 많고 적음이나 방법에 있지 않다. 시장이 아무리 소통과 대화를 외쳐도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시민들은 알 수 있다. 권 시장의 트레이드마크 ‘경청’이 ‘소통쇼’로 귀결되지 않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