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식의 이슈토론] 정순진 대전대교수, 박헌오 대전문학관장

신천식  (이하 ‘신) : 안녕하십니까. 신천식의 이슈토론입니다. 10월 9일이 한글날이었습니다. 한글이 있었기에 우리글로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고, 문학을 통해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문학이 왜 필요하고, 우리 시대의 문학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문학에 평생을 바치신 두 분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정순진 대전대학교 교수 (이하 ‘정’) : 안녕하십니까. 대전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부 교수 정순진입니다.
박헌오 대전문학관장 (이하 ‘박’) : 대전문학관 관장을 맡고 있는 박헌오입니다.
신: 언제부터 대전문학관 관장직을 수행하고 계신거죠?
박: 초대입니다. 대전문학관 개관이 2012년 12월 27일인데요. 그 직전인 2012년 9월 7일에 초대관장으로 위촉을 받았습니다.
신: 정교수님은 대전대학교에 계신지 오래되셨죠?
정: 네, 저도 대전에서 태어나 학교를 모두 대전에서 다녔고 대전대학교에 문창과가 생기면서 교수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거의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신: 정 교수님은 다른 어떤 활동 보다 가족신문 발행인으로서 많이 알려지신 것 같은데요. 그것 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문학의 생활화를 몸소 실천하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정: 박헌오 관장님이 제일 부러워하는 일이 가족신문발행인데요. 그래서 지난 5월에 문학관에서 하는 문학콘서트에서도 가족신문을 진행했습니다. 가족신문을 만든 건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해 한글 쓰기를 겨우 익혀서 온 가족이 한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된 것을 기념하자고 만들게 되었습니다. 1993년 4월 5일에 창간호가 나왔습니다. 초기에는 아이들이 어려서 월 단위 간격으로 1년에 6번씩 꼬박꼬박 나왔는데, 이제 아이들이 크고 원고를 쓰기에는 바빠서 1년에 4~5번 정도 신문을 냅니다. 지난 8월에 낸 것이 96호 이구요. 내년은 창간한 지 22년 되는 데요. 100호 기념호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 문학이 실생활과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지요. 저는 우리글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에서도 고유의 글을 가지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나라가 많지 않은데요. 약 10개 국가 정도 된다고 합니다. 한글 이야기 말고도 문학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하는데요. 박관장님은 행정가에서 문학관장으로 변신하셨는데 어떻게 보면 관장이라는 역할도 행정이라는 역할을 함께 수행하는 것이 아닌 가요?
박: 관장이란 직책은 행정관리와 문학적 전문성 두 가지를 겸하는 것이지요.

◦) 문학의 힘, 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신: 문학이 이 시대에 왜 필요한지요. 간단하게 말씀 해주신다면?

정: 우리가 쉽게 정의할 때는 문학이 예술이라고 합니다. 언어를 매체로 하는 예술이지요. 언어는 시와 소설을 쓰라고 있는 매체가 아니라 우리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매체라서 다른 예술과는 달리 가장 기본적으로 반성적 인식이 문학에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예술이 아름다움을 위한 미적활동이라고 한다면 문학은 물론 미적활동도 포함되어 아름다움을 추구하려 노력하지만 진실과 선. 즉, 진(眞)·선(善)·미(美)를 아우르는 활동입니다.
문학이 왜 필요하냐면 단편적인 삶과 사고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매일의 삶, 단편적인 순간이 내 전체의 삶, 지역, 나라, 우주와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서 문학이 중요합니다. 재미, 의미, 심미 이 삼박자가 맞아야 좋은 문학이고, 그럴 때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태도를 변화시킵니다.

박: 문학관에 오는 학생들이나 관람객들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문학은 문학가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해야 하는 필수적인 소양이라고 말합니다. 문학의 정서적인 안정을 통해서 인재를 양성하고 성장기의 정서를 관리하고, 감성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고, 자신을 멋있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어떤 일을 하든지 자신이 하는 일을 잘 기획하고 분석하고 표현하는 데 문학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문학을 하는 사람이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 대전 문학이란?
  - 정체성, 지향점 등
◦) 대전 대표 문인은?
   작품은?

신: 그런 말이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 그런 정도로 문학의 위대한 힘에 대해서 한 마디로 설파했는데요. 대전문학관의 관장이시고 대전문학관의 운영위원인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시고요. 대전문학이 다른 문학과 구별되는 것이 무엇이 있을지 대전문학관장님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박: 대전문학이라고 하면 일단 대전출신의 작가가 쓴 작품과 대전지역에서 쓰인 작품입니다. 대전문학의 특성을 이야기하면 대전문학은 선비문학에서 출발합니다. 조선 후기 대전은 학문의 메카였습니다. 특색 있는 분들을 옮겨보면요. 박팽년 선생의 충(忠), 김만중의 효(孝), 송시열의 예(禮), 신채호의 의(義), 충암 김정 선생의 부인 송 씨의 열(烈)이 있고, 상촌 신흠의 문장이 있습니다. 이런 선비문화가 대전문학의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 대전 문학관의 역할, 존재의의는?

신: 문학관은 문학가를 위한 공간, 시민을 위한 공간도 될 텐데요. 문학관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박: 문학은 문화, 예술, 생활의 재료이기 때문에 시민의 생활에 필수입니다. 대전문학관은 지역 문학관인데요. 위원님들과 고심해서 문학관의 비전을 ‘문학으로 꿈꾸다’라고 정했습니다. 대전을 미래의 문화도시, 문학도시로 만들어 가자는 꿈을 실현해 가기 위해 그렇게 정했습니다. 저희는 ‘시민문학관’입니다. 기념관적 문학관인 ‘정지용 문학관’, ‘예당문학관’이 아닌 시민과 함께 가꾸는 문학관으로 만들어 시민들이 문학생활을 통해 행복한 문화생활을 영위하게 하고자 합니다.
 
 문학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이사를 갈 때 보면 버려지는 책이 많은데요. 그 속에 아주 중요한 문학 자료들이 섞여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뜻있는 사람들이 문학 자료를 보존하기 위해 근대 문학관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전 세계에 문학 자료를 공급합니다. 우리도 훼손되고 소멸되어 가는 문학 자료를 건져내서 보존하고 연구하고 활용하는 문학박물관이 필요합니다. 문학사에 있어서 그 역할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 활동 방안은?

신: 정교수님의 경우 시민들로 하여금 문학의 감수성을 어떻게 확장시키고 공유하게 하는 지요. 예를 들면 공동체 의식을 확장시킨다든지요.

정: 우리가 흔히 사람답지 않은 사람을 표현할 때 목석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감수성이나 정서들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인데. 마음이 불편하고 허무하고 우울한 것은 전부 정서와 관련된 것들이라서 문학은 기본적으로 자기를 치유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처나 아픔, 고통이 큰 사람들은 그것을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해서 글을 씁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 혼자만 하는 고민인 것 같았지만 책을 보고 나면 ‘아하’하고 나만이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이 아님을 발견합니다. 거기에서 굉장히 많은 위안을 받게 되죠. 문학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전문 문학인의 작품을 소장하는 박물관적인 역할뿐 아니라 지역의 시민들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 문학의 자기 치유역할을 말씀하셨는데요. 알랭 드 보통이 쓴 글 중에 예술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있던데요. 여러 가지 중에 치유기능이 있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힐링도 치유인데요. 문학관이 하는 기능은 시민과 함께하는 여러 가지 활동 중에 감정의 표현 기회를 가지거나 확장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 대전 문학관 상시 특별전을 소개한다면?
   - 손 편지전, 시 한편 갖기 운동 등 포함

신: 시를 한 편 갖고 오셨습니다. 시민 모두 시 한 편 갖기 운동을 하시던데요. 문학관에 보니까 ‘손 편지 쓰기’라고 해서 나이 들어서 늦게 편지를 쓰는 할머니들의 편지도 있고, DJ하시던 분이 받으신 수많은 엽서도 있구요. 옛날 생각도 나고,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도 되었는데요. 그런 운동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박: 저희가 기획전을 여는데요. 문학관이 변화하는 모습을 잘 나타내 주는 전시입니다 2개월에 한 번 정도 여는 데요. 기획전을 통해서 의미 있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희귀한 자료를 소개하는 기획전도 있었고, 훌륭한 대전의 작가를 알리는 기획전, 출향 문인들이 고향에 와서 고향시민과 함께 만나는 기획전도 있었고, 대학의 문학동아리가 연합으로 동아리 연합전도 했구요. 지금 하는 것은 ‘손 편지 전’입니다. 손 편지가 문학인가 아닌가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가 가장 보편적으로 문학적 감성을 가지고 쓰기 시작하는 것이 편지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손 편지 전’에는 체험을 포함해서 재미있고 의미있는 다양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전시 중에는 80대를 전후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한글교육을 받고 쓴 첫 편지가 있습니다. 연애편지도 있고, 유명한 문인들의 편지도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편지를 한 장씩 써놓고 가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것을 그때그때 전시하기도 해서 ‘손 편지 전’이 의외로 많은 분들의 감성을 일깨워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신: 시 한 편이 주는 위대한 힘을 대전 시민들은 자주 인식하게 되는 것이 시청 옆에 시가 한 편 있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시 한 편 갖기 운동’은 그런 연장선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 ‘시 한 편 갖기 운동’은 중·고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애송시가 될 수 있고, 사람들이 뛰어나다고 인정한 시도 될 수 있기는 하지만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쓴 시가 굉장히 감동적일 수 있거든요. 딸이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집에 시가 한 편 걸려있으면 오며 가며 글을 보고, 시를 암송해보기도 하고 해서 시가 없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있죠.

신: 저는 노래방에서 시를 암송하기도 하는데요.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이 일부러 시를 낭송해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시 한편 갖기 운동’은 어떻게 전개가 되나요?

박: ‘시 한편 갖기 운동’은 시의 씨앗을 뿌리고 꽃 피우기 위한 것입니다. 가정마다 가족이 쓴 시나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시를 한 편 걸어놓고 같이 보면 그것을 보는 순간마다 같은 생각을 하게 되면서 문화적인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성장하는 아이들은 감수성이 예민해서 시심(詩心)을 분명히 다 가지고 있어요. 부모가 그 시심을 막지 말고 일으켜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 한 편갖기’ 운동은 시민생활에 있어 단기간에 끝내지 않고 지속시켜나가야 할 좋은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신: 시가 노랫말로서도 참 아름답습니다. 군대시절 박인희 씨의 ‘목마와 숙녀’라는 노래가 있었어요. 우연히 특별한 장소에서 그 시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 교수님도 그런 사례가 있습니까? 연애편지나 그런 것들이요.

정: 그때는 전화가 어려웠기 때문에 연애편지를 많이 주고받았는데요. 1년에 제가 편지를 400통쯤 쓰고요. 연애기간이 길어서 편지가 박스에 담겨있었는데 시누이나 여동생이 가져가서 자기 연애 편지 쓸 때 써먹기도 했습니다.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좀 남아있습니다. 남편이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게 시집을 들고 나타난 거에요. 그래서 ‘저 사람이 시를 아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죠. 관장님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저도 백일장을 가보면 초등학생의 글이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글보다 나아요.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의 차이는 그 시절엔 많은 것인데요. 그런데 어떤 때는 장원을 1학년 학생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은 시심이 훨씬 풍성하고 잘 표현하면서 정곡을 찌르고, 여백이 있는 표현을 합니다. 그럴 때 ‘우리 교육이 창의적인 상상력을 길러주는 교육이 아니구나’라는 굉장히 씁쓸한 마음입니다. 또 어느 모임에서 어떤 부부가 노래를 부르는 대신 시를 낭송했는데 분위기가 확 바뀐 경험이 있습니다.

신: 그 말씀 하시니까 문학관의 운영에 대해서 중장기적인 비전과 목표가 있으실텐데요. 저는 문학이 시민과 함께하면서 시민 속에서 활동하고 그것이 대전문학관의 주요활동 중의 하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집니다.


◦) 대전 문학관과의 인연을 든다면?

신: 정교수님이나 박관장님은 지역에서 많이 활동하시면서 대전문학과는 불가분의 관계이십니다. 특히 대전문학관과는 어떤 인연이 있으시고 어떤 활동을 하시는 지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면 합니다.

박: 대전 문학관이 대전의 유일한 문학관이고, 근래에 개관했고, 대전 전체 문학을 아우르는 새로운 시작인데요. 저는 평생 공직생활을 하며 문화예술에 관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문화예술의 전당, 컨벤션 센터 건립할 때도 관여했는데요. 문학관만은 못 짓고 나간다고 생각했는데요. 2008년에 동구 부구청장으로 왔을 때 동구청의 청장 공약사항에 동구문학관 건립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학관 건립을 서둘러서 중앙예산과 시예산도 많이 따서 문학관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준공이 되면 빨리 개관하려고 문학관 건축이 시작되자마자 자료 수집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문학관이 준공되었을 때 퇴직하면서 명예관장으로서 개관에 대한 업무를 계속 했고, 시에서 개관준비위원회를 만들었는데요. 그때 개관준비위원장으로 개관준비를 했고, 영광스럽게도 초대 관장직을 맡아서 당초 문학관을 지을 때 가졌던 생각을 그대로 문학관에 옮겨서 실현하기까지 해서 정말 저는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신: 덧붙이면 지난번에 문학관을 방문했더니 작지만 지형지물을 잘 활용해서 최근에 보기 드문 우수한 건축물이 만들어졌다고 느꼈습니다. 1층에서 산으로 오를 수도 있고, 야외 발표도 할 수 있는 공연장도 있구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씀을 아끼시는 것 같아서 그 정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정교수님은 문학관과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습니까?

정: 대전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문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고, 그러니 대전에서 문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면 도와야겠다는 공적책무 같은 것이 기본적으로 있었습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누가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하는 관계가 있는데요. 그런 관계는 잘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한 두분 계십니다. 그분 중에 한 분이 박헌오 관장님이세요. 그래서 준비위원회에 참가하기 전에 연구년을 앞두고 있었는데 연구년을 서울에서 보낼 생각이었기 때문에 참여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연구년 가기 전에 끝난다고 하셔서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발을 들여놓고 났더니 끝나지도 않고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구요. 시의회에서 여러 일들이 있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서울에 있으면서 회의하고 자료를 조사도 해야 해서 기차타고 서울을 다녔습니다. 남들이 ‘문학관과 무슨 인연이 있는거냐’라고 묻기도 합니다. 사심을 버리고 대전문학관을 잘 만들고 잘 운영하려고 노력하는 분이 옆에 계시고, 제가 할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돕고 싶은 마음 때문에 여기 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 현재 활동하고 있는 문인은?

신: 현재 활동하고 계신 문인 숫자가 어느 정도 되십니까?

박: 문인과 비문인을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재 문단에서 등단하고 활동하시는 분들이 620분 정도 됩니다. 문학 단체도 60여 개가 있구요. 대전이 이제 훌륭한 문인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시골에서는 한 사람의 이름나는 문인을 그 지역에서 존경하고 알고 하는데요. 대전 지역에는 문인이 많습니다. 많아서 어떤 분 한 분을 내세우기가 어려운 점이 있지요 일반 시군 이런 곳은 4~5만 군민이 다 알면 그 문인을 다 아는 것인데 대전은 150만이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텃밭이 굉장히 넓다는 점이 있습니다. 대전에 있는 문인도 훌륭하고, 알려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 고은 시인이나 故 박경리 작가, 이외수 작가 등 특히 이외수 마을은 레지던시(Residency)의 원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분들이 그 지역을 대표할 수도 있거든요. 우리 지역에 문인 수가 620분이라고 하셨고 문학 단체도 60여 개라고 하시구요. 그러면 대충 어림하면 중복은 있겠지만 10명에 한 분 정도는 단체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가진 기능이나 효용이라고 한다면 시민 통합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 문학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겠습니다만 만남의 장소도 제공할 수 있을 테고, 전시공간도 있을 테고, 예를 든다면 창작지원금 같은 것도 지원이 가능한가요?

정: 창작지원금의 경우는 문화재단에서 맡고 있습니다.

신: 문학관에서 하는 것은 아니군요. 그럼 추천을 한다든지 그런 역할은 안하시나요?

박: 간접적으로 관여는 합니다. 문학관 자체가 문화재단에서 운영을 책임지기 때문에...

신: 문화재단 산하기관이지요?

박: 예, 그렇습니다.

정: 우리나라가 굉장히 서울 집중적인 곳이잖아요. 모든 것이 서울에 모여 있어서 특히 문화는 세련되고 고급한 것을 배우기 위해서 서울과 외국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널리 아는 시나 문학작품들은 서울 중심에서 서울에 있는 사람들의 활동을 알게 되잖아요. 우리 지역뉴스는 잘 안 보고 서울 어디에서 일어난 사건이 주목받습니다. 그래서 우리 문학관이 해야 할 역할 중의 하나가 지역 문인들의 작품이 우리가 알고 있는, 교과서에서 배운, 그런 글들과 같이 친숙하게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박: 그래서 ‘우리집 시 한 편 걸기’와 병행해서 우리 지역 대표작가의 작품을 책갈피, 걸개, 냉장고 자석 등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서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신: 정훈 선생님의 시 중에 「머들령」이란 시가 있어서 ‘머들령’이라는 청소년 문학 모임이 있었는데요. 그런 활동을 하셨습니까? 그곳에 활동하셨던 분들이 시인으로 등단하신 분들이 꽤 있더라구요. 시인의 흔적이라고도 생각이 되고요. 우리가 지역이라고 하는 것이 문화도 중앙에 집중되고 편재되어 있어요. 그런 차별을 극복하기위해서도 문학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대전 문학관 운영 애로점은?
   - 인적애로사항, 예산 지원 등

신: 대전문학관의 애로사항이 무엇이 있을까요? 예를 들면 예산이나 인력의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 현재 저는 운영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문학관에 가서보면 이 적은 인원을 가지고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할 수 있냐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문화노동자라고 이야기 하는데요.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면서 어떻게 일을 하는지... 어렵지만 인원을 확충하고 예산을 확충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관장직도 매년 재계약을 하는 형식이라고 합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한 학기 강의시간표도 2년 전에 계획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1년 단위로 하는 것인데 멀리 내다보는 활동을 하기에는 너무 어렵습니다. 행정적인 부분에서도 장기적이고 소신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건도 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박물관 등록이 안 되어 있지만 전문 인력을 증원해서 박물관으로 등록하는 것도 문학관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 꼭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신: 앞으로 대전 문학관 활동의 방향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박: 대전문학관을 만들고 보니 하고 싶은 일에 비해서 공간이 참 좁습니다. 문학관 확장이 앞으로 반드시 해야할 과제이구요. 전문 인력을 충원해서 대전문학관의 중요한 자료가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박물관 등록을 해서 박물관 체제 운영도 겸해야 하구요. 대전이 문화도시로 발전하는 데 있어서 문학관이 거리로 나가서 이동 문학관도 하고, 축제장에 나가서 활동도 하고, 이야기가 있는 도시의 거리를 만드는 등 공간 활동을 확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산과 인력이 더 필요합니다. 1년 운영비 예산이라고 하면 1억 미만인데 사실 1억 미만이면 좋은 공연 하나 만드는 비용을 가지고 1년을 운영합니다. 직원들에게 ‘신화를 창조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자’라고 이야기합니다. 문학관을 시민이 아끼고 많이 이용해주셨으면 하는 바랍니다.

정: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삶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계절에 따라 자기가 어려우면 어려워서, 기쁘면 기뻐서, 자신의 감흥을 한 줄 시에 담아내는 그런 시민이 되려면 대전 문학관을 애용하셔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신: 시민의 품격이 높아지면 도시의 삶의 질이 향상됩니다. 시민의 품격을 높이는데 문학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같습니다. 문학의 힘을 제대로 인식하고 시민에게 확산시키고자 노력하는 여러 기관 중 하나가 대전문학관일 수 있습니다만 오늘 이 자리에서 대전 문학관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전 문학관의 특별한 그 무엇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신천식의 문화토론 이만 마치겠습니다.

정리: 박미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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