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등교시간도 못 정하는 대전시교육감

김학용 주필
벽돌 찍어내는 일을 하는 벽돌공과 벽돌공장 사장은 무엇이 다른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벽돌공은 어떤 ‘결정’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사장은 늘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점이다. 벽돌공은 몸은 고달파도 일 때문에 머리가 아플 일은 없다.

벽돌공과 벽돌공장 사장의 차이

사장은 손은 편히 쉴 수 있어도 머리가 복잡하다. 때마다 어떤 종류의 벽돌을 몇 장이나 찍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주문받는 만큼만 찍는다면 결정할 일은 없다. 그러나 불시에 납품을 요구하는 고객까지 소화하려면 시장(市場)의 수요를 예측해서 생산량을 결정해야 한다. 수요 예측이 불분명하면 ‘결단’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래야 다른 벽돌공장과 경쟁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

사장 자신이 수요를 확신하지 못할 땐 벽돌공한테도 “얼마나 찍는 게 좋겠느냐?”고 물어보는 게 좋다. 그때마다 벽돌공이 수요를 잘 맞춰 공장이 점점 커진다면 기획이나 영업 보직을 만들어 그쪽으로 보내는 게 낫다. 물론 그런 ‘결정’도 사장의 몫이다.

공사(公私)의 모든 조직에서 가장 높은 자리는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자리다. 이게 수장(首長)의 가장 큰 임무다. 대통령에서부터 구멍가게 사장까지 마찬가지다. 시도지사, 시도교육감도 그런 자리다. 어떤 조직이든 수장이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조직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결정’은 수장(首長)의 권한이자 의무

‘결정’은 수장의 권한이면서 의무다. 대전시교육감은 시교육청이 해야 할 일에 대한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결정을 해줘야 할 의무도 있다. 일선학교의 등교시간을 9시로 늦출 것인지 여부도 마찬가지다.

설동호 대전시교육감은 이 문제를 어떻게 결정해야 될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것 같다. 그는 “9시 등교는 도농지역 간 형편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자율성을 주는 게 합리적”이라며 “학교 자율에 맡겨 학생과 학부모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9시 등교가 학습효과 등에 대한 믿을만한 연구결과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믿을 만한 결과를 찾지 못했다면 그냥 두면 될텐 데도 “학교 자율로 하겠다”는 것은 과제를 학교에 떠미는 것이다. 학교 교육 전반에 대한 결정권한은 본래 학교 교장에게 있는 만큼 앞으로 그 권한을 존중하겠다는 말이면 정말 개혁적인 결정이겠으나 그런 뜻은 아니다.

누구든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는 일에 대한 결정권은 권한이 아니라 골치아픈 과제일 뿐이다. 자신이 충분히 결정할 수도 있는 문제를, 혹은 결정권을 아래 내려주면 좋아할 일을 내려주는 게 위임이고 자율이지 자신이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를 떠넘기는 것은 책임 회피다.

설 교육감의 ‘9시등교 자율화’ 발언 이후 학교에선 혼란이 빚어지면서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교사든 학부모든 “등교 시간을 학교에 맡기면 더 불편할 수 있다”며 반대하는 입장이 많다. 등교시간을 자율화해서 얻는 이익이 없고 혼란만 준다면 교육감이 결정해줘야 한다.

9시등교 자율화는 설 교육감 결단력 부족 문제 드러내

등교시간 문제는 설 교육감의 ‘결단력 부족’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그는 미복직 전교조 교사의 징계 조치와 관련한 ‘결정’도 오락가락했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면직 결정을 내렸다가 진보 교육감들이 징계를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서둘러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 발 뺐다. 전교조는 설 교육감이 자사고 재지정 문제에도 명확한 입장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결단력 부족’은 조직의 수장으로선 커다란 약점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로서 최대의 악덕은 미움을 사는 것과 경멸당하는 일인데, 경멸은 군주가 결단력이 없을 때 국민의 마음속에 싹튼다”고 했다. 어디 군주뿐이겠는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리더는 먼저 자기 부하들로부터 경멸당한다.

시교육감은 시교육청이 해야 할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다. 등교 시간도 소신있게 결정하지 못할 정도면 대전시 교육행정의 혼란 가능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재정 문제도 아니고 인력 문제도 아닌, 순전히 교육감의 결단력 부족 때문이라면 딱한 일이다.

설 교육감은 9시 등교에 대한 판단이 분명하지 않다면 일선학교 교사나 학부모 등을 만나 의견을 들어본 뒤 결정할 수 있다. 그래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관련 부서에 맡겨 검토하고 그 결정을 그대로 따를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이든 등교시간 문제는 교육감의 몫이지 학교에 떠넘길 일은 아니다.

물론 일선 학교에서 스스로 결정할 사항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이야말로 교육감 자신이 결정하고 싶어도 학교에 맡겨야 한다. 효율적으로 벽돌을 찍어내는 방법은 벽돌공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런데도 사장이 그런 부분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면 쓸데없는 간섭이 된다.

하지만 벽돌을 몇 개 찍어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사람은 사장이다. 사장이 이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자, 벽돌공에게 “난 잘 모르겠으니 당신 맘대로 하라”고 하는 것은 사장의 임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대개 이런 사장들은 벽돌이 모자라거나 남게 되면 그 책임을 벽돌공에게 묻는다.

엉터리 와인축제 계속된 건 권 시장의 결단력 문제

시도지사 가운데도 이런 사장 같은 사람들이 많다. 세금만 낭비하는 엉터리 와인페스티벌을 올해도 계속한 것은 새 시장의의 결단력 부족 문제였다. 권선택 시장은 이 행사가 어떤 동기로 시작됐으며 얼마나 엉터리로 진행되었는지를 알고 있었을 텐데도 행사를 계속하면서 와인 잔을 들어 포즈를 취했다. 참으로 딱한 풍경이었다.

대전시가 30만 명 이상 왔다고 보도자료를 냈지만 팔린 입장권은 3만 여장에 불과했다. 그 중 상당 부분은 시 산하 공공기관 단체에서 사서 뿌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 관람객은 그보다도 훨씬 적었다는 뜻이다. 행사의 피크 타임에도 매표소는 한산했고 차량 진입이 불가능해야 할 행사장 주차장도 이용에 큰 불편이 없었다는 게 취재기자의 전언이다. 자기 돈 내고 온 사람은 30만 명은커녕 1만 명도 안 될 것이라는 취재기자의 추산이다. 물론 경제효과도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한다.

대전시는 이런 행사에 올해도 16억 원(와인트로피 행사까지 포함하면 19억원)을 썼다. 2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니 14억 원 이상은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갔다. 대전시 인구가 150만 명이니 1인당 1000원씩 내서 누군가에게 좋은 일을 한 셈이다. 그 ‘누군가’에는 와인축제를 만들어 재미본 사람들도 포함될 것이다. 새로 대전시장이 된 사람은 이런 행사를 곧바로 중단시켜야 하는 데도 결단력이 부족하면 그냥 끌려가고 만다.

‘결단력 문제’는 조직 수장의 단순한 캐릭터 문제가 아니다. 쓸데없이 일선학교를 혼란에 빠뜨리고, 수십~수천억 원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원인이 된다. 과도한 ‘결단력’은 독단으로 흐르는 게 문제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결단력 부족’ 또한 부작용이 심각하다. 대전시교육감과 대전시장은 시민들이 왜 자신을 그 자리에 앉혔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그렇게 무책임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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