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계룡과 아들의 계룡
아버지의 계룡과 아들의 계룡
  • 김학용 주필
  • 승인 2014.09.0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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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용 칼럼] 계룡건설 2세경영 시대
계룡건설 홈페이지의 CEO 코너에는 세 사람의  인사말이 걸려 있다. 이인구 명예회장의 인사말이 맨 위에 있고 그 아래 이시구 회장과 한승구 사장의 인사말이 차례로 실려 있다. 그 내용을 보지 않더라도 계룡이 어떻게 운영돼 왔는지를 알만 하다. 1조원 대 매출 기업이 CEO 소개난에 명예회장을 예우 차원으로 올려놓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도 홈페이지에 맨 위에 올라와 있는 아버지 인사말

김학용 주필

이인구 명예회장(84)은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계룡을 진두지휘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룡의 사정을 알 만한 한 인사는 얼마 전 “지금도 중요한 일은 이인구 회장의 결재(결심)가 떨어져야 돌아가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가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지는 벌써 18년이나 됐다. 1996년 이원보 이시구 공동대표 체제를 출범시키면서 자신은 명예회장이 되었다. 동생과 전문경영인, 두 명을 공동대표로 앉히고 자신은 명예회장을 맡아왔으나 여전히 경영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노익장’에도 한계가 있다.

계룡이 이젠 ‘2세 경영 시대’를 열고 있다. 이인구 명예회장의 외아들로 10년 가까이 경영수업을 받아온 승찬씨(39)가 한승구 대표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았다. 명예회장의 동생 이시구 회장은 공동대표 자리를 내놓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계룡건설 주식도 전부 처분했다. 회장직은 유지했지만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모습이다. 다른 가족들도 계룡에서 떠나고 있다고 한다. 전문경영인의 도움 속에 ‘아들의 홀로서기’가 시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계룡은 지역 최대의 향토기업이다. 시공능력 순위 전국 21위의 대형건설업체로 연 매출 규모가 1조원이 넘는다. 1000명 가까운 직원을 고용하고 있고, 하청업체까지 합하면 고용효과는 훨씬 크다. 아파트 하나를 지으면 200개 업체가 먹고 산다는 말이 있으니 계룡 덕에 먹고사는 사람들의 숫자는 쉬 헤아리기 어렵다. 계룡 장학재단에선 매년 2억원이 넘는 장학금을 내놓는다.

6.25 때 미군 영어 통역 번역하다 건설과 인연

계룡을 이만큼 키운 데는 이인구 명예회장의 공이 가장 클 것이다. 계룡 홈페이지에 소개된 ‘이인구의 건설인생’을 보면 그의 열정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6.25 때 미 군사고문관 통역을 맡았던 것을 계기로 공병대 장교가 되어, 낮에는 교관을 하고 밤에는 미 국방성에서 보내는 각종 훈련서적을 번역하는 데 눈코 뜰새가 없었다. 60년대 후반에는 군인 신분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 사업에도 참여했다. 제대 후에는 공병대 장교를 하면서 알게 된 미군 공병부장의 권유로 미국에 건너가 300만 달러를 빌려오기도 했다.

그는 1970년 1월 계룡건설의 모태가 된 계룡건설합자회사를 인수한다. 기업인에게 위기는 있는 법. 자금난으로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그는 당시 동방생명을 찾아가 “만일 내가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자결하면 사망보험금이 나오냐?”고 물었다. 부도가 나면 그것으로 책임을 지며 가족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가입 후 2년 뒤에는 자살도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답변을 듣고 1억원 보험에 들었다. 지역 건설업계에 전해져 오는 ‘이인구 자살 시도설’의 진상이다.

아버지가 죽음 불사하고 지켜낸 향토기업

그는 말그대로 죽음을 불사한 각오로 회사를 지켜냈다. 1979년 갑년체전 때는 행사 6개월을 앞두고, 주경기장인 대전공설운동장 건설을 하던 건설업체의 부도로 위기에 처한 충남도를 구했다. 그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대형 건설사들도 절대 공기가 부족하다며 혀를 내두르던 그 공사를 떠맡았고 1일3교대 24시간 작업으로 행사 시작 며칠 전에 공사를 완공했다.

이 회장에게도 부자들에게 잘 발견되는 검소함이 배어 있다. 충남대 정용길 교수는 2011년 『한국의 기업가 정신』이라는 공저를 내는 데 참여하면서 이인구 회장을 인터뷰했다. 거기에서 정 교수는 이인구 회장의 넷째 딸에게 들었다는 ‘구멍난 양말을 신고 다니는 아버지’ 얘기를 전하고 있다. 이인구 회장이 2011년 특강에 참석하기 위해 충남대에 왔을 때 이 회장의 승용차(제네시스)가 한승구 사장(에쿠스)보다 등급이 낮은 것이어서 놀랐다는 사실도 책에 적었다. 

계룡건설 부자 이인구 명예회장(84)과 이승찬 대표(39)


‘한국의 삼성’에 비유되는 ’대전의 계룡’

계룡건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말해주는 일화들이다. 계룡은 이제 지역에선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갑(甲)’이 되어 있다. 하청업체는 물론이고, 내가 보기엔 관(官)과 언론에도 계룡은 확고한 갑의 지위에 있다. 지역엔 ‘계룡’을 ‘삼성’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우리나라에서 삼성의 지위와 대전 지역에서 계룡의 지위를 비유하는 말이다. 좋은 뜻이든 나쁜 뜻이든 지역에서의 계룡 영향력을 강조하는 말이다. 

요즘 대전도시공사(대전시)는 전대미문의 희한한 ‘계약사고’로 건설업체와 소송을 벌이고 있다. 2700억원 규모의 유성복합터미널 사업자 선정과 관련된 사건이다. 계룡이 컨소시엄으로 경쟁에 뛰어든 사업으로, 계룡이 대전시를 손아귀에 넣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다. 나는 이 소송을 지켜보면서 대전은 ‘계룡공화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계룡의 앞날이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계룡은 5년 전, 처음으로 1조원 매출을 기록했지만 이후엔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부진한 건설 경기 탓도 있지만 국내 건설시장 자체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계룡의 도급 순위도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의 성공과 한계,, 아들이 넘어야 할 과제

전문가들은 계룡이 해외시장으로 나가지 않으면 더 이상의 성장은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한다. ‘글로벌 경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계룡도 이를 잘 알고 있다. 20년 전 말레이시아와 러시아 등에 대한 진출도 시도했었다. 성공하지는 못했다. 아버지의 한계였다. 계룡이 건설로서 승부를 계속하겠다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아들이 도전해야 될 가장 큰 과제다. 

이인구 명예회장의 호는 유림(裕林)이다. ‘넉넉한 숲’이란 뜻이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원시림처럼 넓고 우거진 숲도 내 생리에는 맞지 않고 그저 구색이 잘 갖춰진 넉넉한 숲이 나에겐 맞는다”고 했다. 글로벌 경영의 측면에서 ‘아버지’는 보수적 경영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유가 그의 호 유림에 담겨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아들은 더 넓은 원시림으로 나가야 할 상황이다.

아들이 노력해야 할 또 한 가지는 계룡이 지역사회와 좀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1년에 2억 원의 장학금을 내놓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시도(市道)지사가 손을 벌릴 때마다 3천만원~1억원 씩 내는 기부금과 종종 군부대를 찾아 내놓는 성금은 뭔가에 대한 ‘대가성’일 수밖에 없다. 그게 무엇이든 사람들은 그렇게 본다. 100억원을 들여 기증했다는 ‘유림공원’은 ‘이름값’으로 치면 이 회장이 오히려 돈을 더 내놔야 계산이 맞는다. 적자만 내는 대전시티즌도 버리고 도망갔다.

세계 무대로 나가면서 지역사회와 더 가까워져야

아무리 돈이 많은 재벌도, 작은 구멍가게라도 적자가 나면 운영이 불가능한 게 기업의 생리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는 이제 비용이 아니다. 정용길 교수는 “기업이 사회에 좋은 일을 하면 그 기업에게도 이익이 돌아간다는 이론이 정립되고 있다”고 했다.

계룡은 대전시에서 나오는 큼직한 사업들은 거의 맡아서 하고 있지 않은가? 웬만큼 큰 사업 중에 계룡이 참여하지 않은 경우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 아닌가? 그런데도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여엔 소홀하다면 체면도 없는 것이다. 

지역 대학에 계룡 이름으로 도서관 하나 지어 주는 것도 불가능한 일일까? 이번에 대표가 된 아들이 그런 제안을 아버지에게 했다는 풍문이 들린 적은 있으나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새로 경영을 맡은 사람이 기부부터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정말 그런 생각의 소유자라면 실천 가능성은 더 높지 않겠는가? 계룡이 지역 대학에 도서관을 지어준다는 뉴스를 듣는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한다.

신중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새로운 계룡’ 만들었으면

아버지는 아버지의 방식대로 계룡을 만들고 성장시켰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계룡은 아버지의 방식으로 수주를 하고 매출을 올리는 데 골몰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 방법으로 1조 매출을 달성하고 도급 순위 20위권에 올랐지만 아들은 달라야 한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들 자신이 결정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는 가르쳐 줄 수 없고, 설사 그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가르쳐줘서도 안 된다. 그러면 ‘아버지의 계룡’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들은 신중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새로운 계룡으로 변화를 이끌었으면 좋겠다. 계룡 홈페이지에서 이인구 명예회장의 인사말이 사라져야 비로소 ‘아들의 계룡시대’가 열리는 날이다. 아버지는 그게 서운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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