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충남교육청의 장학관 '인사 사고'

김학용 주필.
학교에서도 승진은 어렵다. 충남교육청의 경우 평교사가 장학사가 되려면 시험을 봐야 한다.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뇌물이라도 주고 시험문제를 미리 얻어 보려는 교사들도 나온다. 작년 여름 지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충남도교육청 장학사 비리도 그런 사건이었다.

평교사 2명 장학사 안 거치고 장학관 '수직 상승'

어렵사리 장학사로 승진한 뒤에야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장학관이다. 충남도내 1만 6000여 명의 교원 가운데 장학사는 200여명, 장학관은 70여명이다. 교원 100명에 장학사는 1.3명꼴, 장학관은 0.4명꼴이다. 장학사 3~4명 가운데 한 명만 장학관까지 올라간다. 현직 교장 중에도 장학사 장학관을 거친 사람도 있지만 장학사 자격이 없는 교장들이 훨씬 많다. 천안의 경우 대략 초중고 120여개 가운데 교장 40여명, 교감 15명 정도 장학사(아주 일부만 장학관) 출신이다.

평교사가 장학관이 되는 건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다. 김지철 충남교육감은 이번에 평교사 2명에게 그런 별을 따주었다. 25일 실시한 도교육청 인사에선 평교사에서 장학사를 건너뛰고 곧바로 장학관으로 승진한 사람이 2명 나왔다. 전에는 없던 초유의 일이다. 장학사는 공개전형이어서 시험 등 객관적인 선발 과정을 거치도록 돼 있지만 장학관 승진은 공개전형이 아니어서 인사권자의 임의 발탁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법의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고등학생을, 시험에 합격해야 다닐 수 있는 대학을 건너뛰고 곧바로 무시험 면접으로 대학원에 입학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대학원 지원은 대학졸업장이 있어야 가능하지만 장학관은 장학사를 거쳐야 한다는 규정을 두지 않고 있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법의 허점을 악용한 상식 파괴 인사

이건 악용 수준이 아니라 상식의 파괴다. 가령, 시험을 봐야 5급(사무관) 승진이 가능한 6급(주사)을, 5급을 건너뛰고 4급(서기관)으로 무시험 발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6급의 4급 발탁 금지’를 별도로 명시 않더라도 –그런 규정이 실제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식의 건너뛰기 승진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그야말로 상식이다. 이번 인사는 그런 상식을 깬 인사다.

수혜자 2명은 전교조 출신이다. 김지철 교육감 당선인의 인수위원회에 참여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인사를 전해들은 사람들은 전교조 출신의 김지철 교육감이 자신의 정책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발탁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책적 이유’만으론 이해하기는 어렵다. 어느 시대 어떤 기관장도 자기 정책을 보다 잘 수행할 사람, 자기 맘에 드는 사람을 승진시키고 싶어한다. 그래도 기준과 원칙에 크게 벗어난 방법으로 승진시키지는 않는다. 6급을 곧바로 4급으로 앉히는 법은 없다. 이번 인사는 그 이상이다. 자기 돈으로 월급을 주는 개인회사도 뭘 아는 사장이면 그런 식의 인사는 하지는 않는다.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결국은 자기도 망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김지철 충남도교육감.

측근 빼고는 아무도 못 믿겠다는 ‘불신 인사’

이번 인사도 교육청을 망치게 돼 있다. 수 백 명의 장학사급들은 모두 졸지에 무능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평교사에게 장학관 승진을 추월당한 장학사라면 퇴출이 마땅한 용관(冗官) 아닌가? 설사 그 이유가 무능 때문이 아니라 해도 이들에 대한 김 교육감의 불신이 드러난 건 분명하다. 조직 관리에서 이보다 더 큰 손실이 어디 있나?

이제 김 교육감은 평교사보다 못한 장학사들을 전원 퇴출시켜 집에 돌려보내든지, 월급만 주면서 그냥 놀려야 할 판이다. 장학사 입장에서도 “난 당신들은 못 믿어. 내 사람밖에!” 하는 교육감에게 무슨 일을 해줄 수 있겠는가? 교육감은 측근 몇 명을 앞세워 조직을 자기 뜻대로 끌고 간다는 계산이겠지만 측근들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를 적군으로 돌리는 인사로는 성공할 수 없다.

김 교육감은 후보시절 교육감이 되면 장학사 비리의 원인인 시험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었다. 그게 이런 식의 인사를 말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시험비리를 감수하는 게 더 낫다. 시험비리는 들통 나면 승진은커녕 교도소 신세까지 각오해야 한다. 그만큼 위험성이 수반되는 ‘공정한 게임’이다. 따라서 설사 (그런 부정한 방법의) 승진 기회가 온다 해도 모두가 참여하지는 않는다.

장학사 비리보다 심각한 ‘불공정 비리’ 인사

이에 반해 ‘김지철식 인사’는 2단계 이상 뛰어오르는 비정상 비상식적 승진인 데도 그런 위험성조차 없는 불공정 게임이다. 승진을 시키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얼굴에 철판만 깔면 된다. 법의 그물망을 피한 ‘적법 인사’일 수는 있으나 심각하게 불공정한 인사다.

도교육청은 김 교육감이 정해놓은 사람 2명을 뽑아 올리면서도 직무능력 평가를 위한 심사위원회까지 구성했다. 공정성 확보용이었다. 교육감이 추천한 외부인사는 3배수로 뽑아서 추첨으로 가렸다고 한다. 물론 모든 심사위원은 100% 도교육청 즉 김 교육감이 뽑은 사람들이다. 이런 쇼가 없다.

가장 공정해야 할 공모 과정은 전혀 없었다. 이번에 장학관으로 벼락 승진한 사람처럼 곧바로 장학관으로 가도 손색이 없을 수 백 명(이런 식이면 어쩌면 수천 명)의 동료 평교사들은 그런 식의 장학관 승진이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이번 인사는 승진 신청기회마저 박탈하는 명백하고 심각한 불공정 인사다.

불공정도 엄연한 ‘인사 비리’다. 이치나 도리에 어긋나는 게 비리다. 뇌물을 주고 시험시를 빼내는 것만 비리가 아니다. 불공정은 부패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이번 장학관 인사는 ‘공개적인 비리’다. 교육감이 보란 듯이 행한 비리다. 만일 수혜자가 지난 선거 때 어떤 식으로든 김 교육감을 도왔다면 ‘뇌물 승진’과 다를 바 없다.

김 교육감이 소위 ‘진보교육감’이란 점에서 그의 청렴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돈 문제’는 없다는 김 교육감의 자신감이 이런 황당한 인사를 가능하게 했을 수도 있다. “나는 떳떳하다. 나는 그들(2명)의 능력을 알고 있고 교육감으로서 그들을 선택할 권한이 있다! 내 인사에는 문제가 없다!”

청렴한 '관리'의 오만이 때론 더 위험

정말 청렴성에 문제가 없다면 교육감의 오만이다. 깨끗한 관리(官吏)가 때론 더 위험하다. 법만 어기 않으면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오만에 빠지기 쉽다. 수십 만 학생의 교육을 책임진 기관장의 오만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2만 가까운 교원과 공무원들은 얼마나 불안할 것인가? 자기 맘에 드는 사람이라고 벼락 출세시켜주는 교육감을 어떻게 믿고 따를 것인가? 어디 인사만 그렇겠는가? 교육 정책과 사업은 또 어떨 것인가?

이번 인사의 주인공들이 모두 전교조 출신이란 점에서 일차적으로는 ‘전교조 교육감에 의한 전교조를 위한 인사’가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지만 꼭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세종과 충북도 진보교육감이 집권했으나 이런 식의 인사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인사는 전교조와 분리해서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전교조 출신 진보교육감의 인사’가 아니라 그냥 ‘충남교육감 김지철 개인적인 인사’로 보는 게 옳다.

전교조 출신 중에도 그 어려운 시험 과정을 거쳐서 – 몇 번씩이나 낙방의 고배를 마시면서 - 장학사가 된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번 인사는 전교조를 위한 인사가 아니다. 오히려 전교조에 피해를 주고 전교조 출신을 욕먹이는 인사다. 전교조든 아니든 장학사 장학관이 되어 충남교육에서 보람을 찾아보겠다는 많은 전문직 지망생들에겐 정말 힘빠지는 인사다. 장학사 시험비리보다 더 실망스럽고 걱정되는 인사다.

김 교육감 해명하지 않으면 ‘사고 교육감’ 못 벗어나

김 교육감은 인사를 철회하고 해명해야 된다.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어떻게 그런 인사를 했는지 자세하게 밝혀야 한다. 이 인사는 단순히 2명을 예외적으로 발탁한 인사가 아니라 심각한 ‘인사 사고’다. 인사에 대한 교육감의 생각과 기준, 더 나아가서는 조직 관리와 교육 정책에 대한 김 교육감의 판단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커다란 사고다. 충분히 해명하지 않으면 충남교육청은 앞으로 ‘사고 교육감’이 이끄는 불행한 조직이 될 수밖에 없다. 희생자는 여전히 학생과 학부모라는 게 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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