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지방자치 제도 개선 위해 ‘의회폐지 실험’을..

김학용 주필
대전 서구의회가 임기 시작 두 달이 다 돼 가도록 문도 열지 못하고 있다. 어제까지 12번이나 원구성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유는 한 가지다. 의장(議長)을 어느 쪽에서 할 것이냐의 다툼이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서로 우리가 해야 한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주민들이 호소도 하고 압박도 해보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고 있다. 

의회 폐지하면 어떤 문제 생기나 확인하는 실험을

나는 서구의회를 한시적으로 폐지하는 방법을 찾아봤으면 한다. 서구가 지방자치를 일정 기간 중단하고, 의회를 없애는 ‘무의회(無議會) 실험’을 해보면 어떨까 한다. 구의회를 없앤다면 주민에게 어떤 불편이 생기는지 구청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는 등을 확인해보는 기회로 썼으면 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지방자치 제도를 제대로 개선할 수 있다면 소중한 실험이 될 것이다. 

지방선거 때마다 지방의회 무용론이 나오고 있지만 지방자치 자체를 그만둘 수는 없다. 그러나 제도개선은 절실한 상황이다. 그 중에는 광역시 구의회의 존치 논란도 있다. 지방자치발전위원회(위원장 심대평)는 특별시와 광역시의 구의회는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새누리당은 찬성, 새정치연합은 반대 쪽이다.

여야가 합의해서 입장을 정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일부 자치단체 구의회를 한시적으로 폐지하는 실험에는 합의할 수도 있다. 서구주민들이 동의하고 법적 장애물을 피하는 길을 찾는다면 ‘무의회 실험’은 가능하다고 본다.

서구의회 민생 조례 0건.. 구의회 없어도 불편 없어

구의회가 없어도 주민들에겐 큰 불편은 없을 것 같다. 서구의회가 지금 주민을 위해 도장을 찍어야  할 민생조례는 한 건도 없다. 구의회가 처리해야 할 조례는 2건 뿐이다. 의료급여 관련 조례의 문구를 수정하는 안건과 서구청 정원을 일부 조정하는 조례안이 올라와 있다. 

둘 다 시급하지 않은 사안이다. 정원 조례도 새 구청장이 별정직 공무원을 비서실장으로 앉히는 데 필요한 것일 뿐 주민들과는 아무 상관없다고 한다. 지방의회는 국회와 달리 민생법안이 거의 없다. 지금 지방의회는 단체장에 대한 감시 감독 기능 외엔 거의 없지만 그런 권한마저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구의회가 없으면 예산승인을 못 받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서구청은 하반기 추경예산을 승인받아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올해 연말까지 구의회가 안 열리더라도 준예산으로 집행,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서구청은 판단하고 있다. 구의회가 없어도 올 연말까지는 돌아간다는 말이다. 

임기 시작 두 달이 되도록 의장을 뽑지 못하고 있는 서구의회

본격 실험 위해선 주민 동의 받고 법적 장애물 해결해야

서구의회가 연말까지 문을 열지 않는다면 당초 개원일인 지난 7월부터 6개월 정도는 자동적으로 ‘무의회 실험’이 진행되는 셈이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최소 1~2년이나 지방의원 임기인 4년은 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하고 법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된다. 헌법 118조는 지방의회를 두도록 명시하고 있다. 지방자치가 이뤄지고 있는 곳은 지방의회를 둘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구의원 전체를 주민소환하는 방법 등으로 구의회를 폐지하는 방안을 강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서구의원들이 협조하고 서구 주민들과 정치권이 의견을 모으면, 지방자치 개선을 위한 실험 차원에서 못할 것도 없다고 본다. 지방자치발전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육동일 교수(충남대)도 “주민들과 정치권이 합의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지방자치발전위원회 ‘구의회 폐지’ 의견 내놔

구의회가 폐지되면 아마 예산 승인과 감독권은 상급 단체인 대전시나 대전시의회가 가져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가 실시되기 전에는 그렇게 했다. 시도 광역단체 예산은 안행부(내무부)가 승인하고, 시군은 시도에서 승인했다. 물론 감독도 했다.

시군은 지리적 정서적 독립성이 강해 자치가 제법 가능하지만 서구 같은 대도시의 구는 말만 자치지 스스로 결정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지방분권의 정도가 약한 우리나라 자치단체가 다 그런 편이지만 자치의 수준이 낮은 구는 특히 그렇다. 이 때문에 구의회는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는 주장도 많다.

그래도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대도시의 구민이다. 기초의회가 풀뿌리 자치의 기본단위라는 점에서 구의회를 없애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한 두 곳을 대상으로 무의회 실험을 해보는 데는 합의가 가능할 수도 있다.

서구가 이 실험을 해봤으면 하는 것이다. 무의회 실험은 소중한 자료를 남길 수 있다. 실험 결과는 구의회 폐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나아가 우리나라 지방자치 전반의 수술에 필요한 ‘임상 자료’가 될 수도 있다.

지역 국회의원 정치적 · 법률적 문제 노력했으면..

구의원들은 반대하겠지만 스스로 원구성도 못하는 사람들이니 반대할 명분은 별로 없다.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실험인 만큼 구의원들이 받는 세비는 그대로 지급했으면 한다. 시도지사들이 논공행상을 위해 수십 명씩 엉터리로 뽑아서 낭비하는 것에 비하면 구의원의 세비는 약과다.

구의원들은 지방의원이면서 한편으론 ‘구청에서 월급을 받는 국회의원의 조직책’이다. 구의회 폐지에 국회의원이 찬성할 입장은 아니다. 그래도 새로운 정치를 위한 실험이라면 나서야 한다. 더구나 서구의회의 자리싸움은 새정치연합 구의원후보 공천과정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순번 바꿔치기’가 단초가 되었다는 얘기들이 많다. 당협위원장인 박범계 의원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지방의회 활동에 정당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나 의장 선거는  양당의 정치적 타협이 요구되는 사안인 만큼 정당 간에도 노력해야 할 사안이다. 이 기회에 새누리와 새정치연합은 ‘무의회 실험’으로 유도했으면 한다. 

새정치연합 박병석 박범계 의원과 새누리당 이영규 위원장 등 이 지역 정치인들이 앞장섰으면 한다. 먼저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서 ‘무의회 실험’을 해봐야 한다. 서구의원들은 더 이상 원구성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빨리 원구성을 하라는 뜻의 반어법은 진정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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