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일 사장 인선 미스터리]

김학용 주필
공병대 출신의 박남일 씨가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전도시공사 사장에 취임했으나 의문투성이의 인사로 남게 되었다. 인사청문회까지 도입되었으나 인선의 기준과 과정이 어느 때보다도 불투명해서 누가 왜 그런 인사를 하였는지도 알 수 없다.

박 사장은 청문회 직후 대덕테크노밸리 요지에 9층짜리 빌딩의 소유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은행과 병원 등이 입주해 있는 건물의 소유주였다. 부동산 전문가에게 들으니 60억~80억 원을 호가한다. 건물은 여러 개의 사무실로 쪼개져 등기가 나 있으며 대부분은 박 사장의 소유로 돼 있다.

 ‘고양이’에게 맡긴 ‘도시공사 생선가게’

그는 공병대 출신의 부동산 개발업자로 보인다. 어떻게 하는 게 도시공사의 이익을 더 낼 수 있는지를 잘 알 만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도시공사를 자기 사업에 더 잘 이용할 수도 있는 사람이다. 도시공사라는 생선가게에 ‘나쁜 고양이’가 될지 ‘착한 고양이’가 될지는 그 자신이 마음먹기 달렸다. 공기업에선 능력보다 도덕성이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인사청문회에서 도덕성 검증은 배제되고 묵살되었다. 박 사장은 납세내역과 재산내역을 알려달라는 청문위원들의 요청을 거부했다. 법적인 청문회가 아닌 만큼 자료 제출이 의무 사항은 아니었다고 해도 처음부터 자격 논란이 일었던 만큼 납세내역 등을 적극적으로 밝혀야 할 입장이었다. 박 사장은 납세내역 요청에 쓸모도 없는 완납증명서를 내놨다. 청문위원은 실수가 아니라 거부였다고 했다.

박 사장이 ‘착한 고양이’였다면 검증에 소극적일 이유가 없었다. 본래 민간 기업가 출신 중에서 공기업에 적합한 ‘착한 고양이’를 찾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권선택 시장은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그에게 생선가게 대리인 임명장을 줬다. 권 시장은 청문회 전에도 “(박 씨가) 도시개발에 대한 식견이 있고 강직한 성품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권 시장은 처음부터 그가 ‘착한 고양이’라고 믿었다는 말이다.

얼굴도 안 봤다는 사람에게 중책 맡길 수 있나

권과 박 두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권 시장은 박 사장이 ‘착한 고양이’라는 사실을 알기 어려웠다. 두 사람은 서로 일면식도 없는 것처럼 말했다. 권 시장은 박 사장에 대해 “저와 만나 구체적으로 지방선거를 어떻게 도울지 얘기했던 사이는 아니다”고 했다. 박 사장도 인사청문회에 나와 “TV로 (권 시장) 얼굴을 뵌 적은 있지만 직접 뵌 적은 없다”고 했다. 

박 사장은 널리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도시공사사장 복수후보로 발표되자, 언론계와 공직사회에선 “박남일이 도대체 누구냐”는 반응이 많았다. 만난 적도 없는 이런 미지의 인물인 박 사장을 권 시장은 어떻게 ‘착한 고양이’라고 믿고 발탁하였나? 이번 인사의 최대 미스터리다.

권 시장은 이미 그를 잘 알고 있었거나 추천자의 인물평을 들었을 것이다. 나는 당초 전자라고만 생각했다. 서로 만난 적이 없다는 두 사람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설마 권 시장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도시공사 사장에 앉히겠나?”하고 의심했다.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데도 ‘보은인사’ 비판을 우려해 둘러대는 말로 여겼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박남일 도시공사 사장이 소유한 남일빌딩

권 시장-박 사장, 정말 일면식도 없었다면 

그러나 지금 나는 판단을 유보하고, 만난 적이 없다는, 믿기 힘든 두 사람의 말이 진실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할 만한 일도 있었다. 사장 복수후보가 발표되던 날 지인 두 사람과 함께 점심을 했다. 그 중 한 명이 어디선가 들었다는 얘기를 근거로 ‘박남일 사장 100%’라고 장담하였다. 내용을 다 밝힐 수는 없으나 권-박 둘만의 ‘밀약’이 있었다면 나오지 않을 얘기였다. ‘작업’이 시장실 밖에서도 이뤄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것이었지만 서로 일면식도 없다는 말과는 부합했다.

조직 외부의 사람을 쓰는 경우, ‘수첩인사’가 아니라면 누군가의 추천을 받기 마련이지만 그를 쓰느냐 마느냐에 대한 판단은 인사권자 자신의 몫이다. 사람 보는 능력이 탁월해도 얼굴도 한번 안 보고 사람을 쓸 수는 없다. 시장이 정말 얼굴도 안 보고 박 사장을 썼다면 이는 믿을 만한 – 시장과 운명공동체일 수도 있는 - 누군가의 추천을 100% 수용해서 따랐다는 뜻이다.

이 경우 실질적인 인사권을 행사한 사람은 추천을 한 사람이지 임명장에 도장을 찍는 시장이 아니다. 시장 인사가 아니라 사실상 추천자의 인사가 된다. 일부에선 이번 인사가 그런 식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지인은 “권 시장은 누군가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놀아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했다. 이번 인사는 권 시장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권 시장, 인사권 제대로 쓰고 있느냐는 의구심

‘다른 사람 작품’도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떨어지는 분석이지만 일면식도 없다는 말과는 합치된다. 만일 ‘다른 사람’이 시장의 분신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시장이 박 사장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면 인사권은 그 분신이 행사한 것이고, 적어도 인사에 깊숙이 간여한 것이 된다.

조직의 인사문란은 대개 이렇게 시작된다. 공기업 사장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면 못할 인사가 뭐가 있겠나? 요즘 대전시에는 상왕이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다는 우스갯말까지 나돈다. 이런 상황이니 이젠 인사권을 행사하는 사람이 과연 누구냐는 의심까지 받는 것 아닌가? 

도시공사사장 인사는 누가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인선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도시공사 20년 역사상 가장 의문스러운 인사다. 그러나 왜 그런 인사를 했는지, 누굴 위한 인사였는지도 드러나게 돼 있다. 

의문투성이의 이번 인사는 대전시 행정 전반에 켜지는 적신호다. 권 시장이 취임 이후 내놓고 있는 ‘비정상 인사’의 연장선 위에 있다. 대전시 인사가 계속 이런 식이면 조직이 심각한 상황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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