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권선택 시장의 ‘셀프 청문회’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나기로 했던 총리를 도로 유임시켜야 할 정도로 인사청문회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청문회에서 줄줄이 낙마하는 총리 장관 후보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속이 터질 것이다. 지방 인사청문회가 그 정도의 위력은 가질 수는 없지만 인사권자에겐 그래도 불편한 제도다.
 
그런데 대전시에선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인사권자인 대전시장은 청문회를 꼭 해보자고 하고, 시의회는 오히려 난색을 표한다. 시장이 거부해도 의회가 요구해야 할 판인데 시장은 멍석을 깔아주겠다고 나서고 시의회는 도망가는 상황이다.

권선택 시장 주관으로 열리는 ‘셀프 인사청문회’

그러자 권 시장은 대전시가 주관해서 인사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12일로 예정된 도시공사 사장 인사청문회는 시장 자신의 인사를 자신이 위촉하는 사람들에 의해 평가받는 ‘셀프 청문회’가 될 전망이다. 기관장 인사에 대해 그 기관 스스로가 마련하는 최초의 셀프 청문회가 될 것 같다.

인사청문회는 권 시장의 공약이다. 약속을 지키겠다는 시장의 뜻은 가상하지만 ‘셀프 청문회’까지 갈 일은 아니다. 셀프 청문회는 문제가 있다. 우선은 시장이 의회를 무시하는 처사다. 인사청문회는 시장에 대한 시의회의 권한 사항이다. 그걸 시장 자신이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너무 오버하는 것이다. 주제넘은 일이고 시의회에 대한 무례다.

의회를 제쳐두고 시민이나 시민단체에게 맡기는 성격의 청문회라고 해도 의회를 무시하는 일이다. 인사청문회는 집행부인 대전시와 시의회가 협의해야 하며 물론 시의회가 주관해야 한다. 시장은 인사청문회를 하자고 의회에 제안할 수는 있으나 “의회에서 못하면 내가 하겠다”고 나설 일은 아니다.

멍석 깔아줘도 못 나오는 무능한 대전시의회

권 시장이 ‘셀프 청문회’를 함으로써 대전시의회는 앉아서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 시장이 멍석을 깔아줘도 나오지도 못하는 무능한 의회가 되고 말았다. 어쩌면 청문회보다 이게 더 심각한 문제다. 인사청문회도 못 여는 시의원들이 시장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을까?

당초 시의회는 법과 제도의 미비점을 들어 인사청문회를 거부했다. 김인식 대전시의회 의장은 “아무리 시장 공약 사항이라도 제도적인 뒷받침 없이 밀어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보였다.

시의장이란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였다는 기사를 보면서 ‘권 시장이 겉으론 청문회를 하자면서 꼭두각시 시의장을 내세워 반대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그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지방의회가 나서 강력하게 주문해야 할 청문회인데 저런 황당한 대답을 하고 있으니 시민의 한 사람으로 복장이 터진다.

법과 제도가 문제? 인사청문회 못할 이유 없어

지방자치는 지방 문제를 우리 스스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그 중에는 법을 꼭 지켜야 하는 사안도 있고 법이 필요 없는 일도 있다. 기본적으로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예산낭비 가능성도 없는 문제라면 법이 필요 없다.

‘지방인사청문회’도 바로 그런 경우다. 유일하게 반대할 입장인 대전시장이 해보자고 나서는데 못할 까닭이 없다. 중앙정부에 돈을 더 달라는 얘기도 아니고, 시민들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되는 일도 아니며, 시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잘만 하면 단체장의 엉터리 인사를 조금이라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지금은 시장이 혼자 결정해서 임명하는 방식이다. 이것을 시장이 대전시민의 대표인 시의회와 ‘협의’해서 결정하겠다는데 누가 반대할 것인가? 모든 시도지사가 인사청문회를 자발적으로 한다면 청문회법은 필요 없다. 그러나 거의 모든 시도지사들이 이를 반대하기 때문에 인사청문회법이 필요한 것이다.

지방의원에겐 ‘면책특권’이 없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면책특권 사용은 국회에서도 자제되어야 할 부분이다. 지방은 인사청문회 수준이 그 정도까지 가기도 어렵지만, 설사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법으로 보완하면 된다. 그때야말로 법이 필요하다. 면책특권 문제가 청문회를 하지 못할 이유는 아니다.

김인식 대전시의장(왼쪽)과 권선택 대전시장

청문회에 대한 부담감과 ‘들러리’ 걱정 하는 시의회

대전시의회가 인사청문회를 거부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시의원들은 인사청문회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지방의회는 인사청문회를 해본 적이 없다. 청문회답게 할 자신이 없을지 모른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시민들에겐 실망감만 줄 수도 있다는 걱정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다 자칫 시장 인사에 의회가 들러리만 서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할 것이다.

첫술부터 배가 부를 수는 없다. 시의회가 성실하게 노력하면 좀 미흡해도 처음엔 이해해줄 것이다. 그러니 시의회는 법과 제도를 핑계로 도망가면 안 된다. 청문회조차 못하는 지방의원이면 의원 배지 내놓고 그만 둬야 한다. 시장이 인사간담회 형식으로라도 하자며 멍석을 깔았으니 더 도망갈 수도 없는 처지여서 억지 춘향으로 청문회장에 끌려 나오게 됐다.

시의원이 집행부가 주관하는 시장의 셀프 청문회에 참석하는 것은 청와대가 주관하는 장관 인사청문회에 참석하는 국회의원과 다를 바 없다. 국민이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러나 지금 대전시의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방자치의 수준이다.

셀프 청문회는 실효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시장이 임명한 사람을 그 시장이 위촉한 청문위원들이 제대로 검증할 수 있겠나? 시의원 3명도 여기에 참석하기로 했지만, 제 집에서도 청문회를 못 여는 사람들이 남의 집에서 열리는 청문회에서 실력을 보여 줄 수 있겠는가? 셀프 청문회는 ‘쇼’에 그칠 수밖에 없다. 청문위원의 질문 강도가 제법 세더라도 ‘시장님 손바닥 안’이다.

권 시장이 청문회에 집착하는 ‘또 다른 이유’

권 시장이 시의원들을 바보로 만들면서까지 셀프 청문회라도 열어야 할 이유도 궁금하다. 시장은 청문회에 응하겠다는 뜻만 분명하게 표현해도 충분하다. 그렇게 하고도 의회가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의회가 동의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도리다.

시장이 인사청문회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데는 공약을 지킨다는 목적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권 시장이 지난 지방선거 과정에서 이른바 ‘염맨들’과 얽히면서 인사권을 온전하게 발휘하기 어려운 난처한 상태에 있으며 이를 해결하는 수단이 인사청문회가 아닌가 하는 쑥덕공론이 나오고 있다. 염홍철 전 시장의 측근으로 권선택 캠프에 참여했던 모 씨가 지방공기업으로 갈 거라는 소문도 돈다.

선거가 끝난 뒤 바로 나왔다는 ‘백춘희 정무부시장설’도 사실이 된 만큼 소문으로만 여기기는 어렵다. 인사청문회가 이들을 떨어내기 방어용이든, 반대로 이들의 등용을 위한 면죄부용이든 청문회는 농락당하는 꼴이다. ‘제2의 제3의 백춘희’ 기용은 지난 선거에 있었던 ‘밀약’을 너무 드러내는 것이어서 ‘방어용’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럴 경우 청문회에서 확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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