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대전시 주변의 기이한 현상들-

전임 시장과 후임 시장은 대체로 사이가 좋지 않다. 후임자는 전임자와 차별화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전임자는 자기 흔적이 지워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다산(茶山)은 전임 수령과 후임 수령을 처첩 갈등에 비유했다. 하지만 성인군자가 아니라면 그게 정상이다. 
 
현직 권선택과 전직 염홍철 ‘과도한 밀월관계’

성인군자가 아닌 데도 두 사람 사이에 ‘과도한 밀월관계’가 이뤄지고 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시장 선거 이후 권선택 시장과 염홍철 전 시장 주변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들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의문을 낳고 있다. 전후임 관계가 좋은 것도 문제냐고 할지 모르나 그냥 좋은 게 아니면 문제다. 지난 선거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그럴 가능성을 말해주는 기이한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

권 시장이 첫 여성 정무부시장으로 백 모씨를 발탁한 것도 아주 비정상적인 인사다. 일각에선 그가 여성운동 경력이 없다는 점과 전문성을 문제삼고 있다. 아쉬운 점이긴 하지만 그게 불가 사유는 못된다. 불가능에 가까운 이유도 아니다. 경력도 전문성도 없으면서 선거가 끝나면 한 자리 차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첫 정무부시장 발탁, 염 전 시장 측과 무관한가?

백 씨의 정무 기용이 문제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가 새누리당 당원이란 점이었다. 그는 권 시장이 취임한 지 열흘이 지날 때까지 새누리당 당원이었다. 염 전 시장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지방선거 때는 ‘염홍철의 여자 오른팔’로 불렸다고 한다. 선진당에 있다가 합당으로 새누리당 당원이 되었고 선거 한 달 전 쯤 권선택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권 시장은 백 씨 발탁의 이유로 “결단력과 추진력이 있으며 제가 부족한 부분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런 재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누가 봐도 명백한 보은인사다. 백 씨가 권 캠프에 합류해서 돕지 않았다면 그가 정무를 받을 수 있는 다른 요인은 없다. 
 
그러나 순전히 선거운동의 대가로만 보기에는 정무부시장 자리는 ‘과도한 선물’이다. 시민단체의 지적처럼 이렇다 할 경력이 없는 백 씨가 천하의 선거 귀재라고 해도 불과 한 두 달 ‘봉사한’ 대가만으로 정무부시장을 꿰찼다고 하면 이를 누가 믿겠는가? 백 씨 혼자 권 후보를 도왔다면 정무 자리를 받을 수 있었을까? 99% 불가능한 일이다. 백 씨 기용에는 염 전 시장과 그 측근 그룹이 관련되어 있다고 봐야 하고, 이는 권과 염 측이 ‘협조 관계’에 있다는 뜻이다.

최초 ‘민주개혁 세력 대전시장’의 이상한 행보

백 씨가 새누리당 당원이란 점은 정무 발탁에 큰 장애물이었다. 권 시장 스스로 최초의 민주 개혁 세력 대전시장임을 강조하면서 새누리당 당적을 가진 사람을 정무부시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시장 스스로를 부정하는 행위다. 누구보다 권 시장을 응원했던 민주 개혁 세력들이 개탄할 인사다. 이들은 권 시장이 임명한 첫 여성 부시장이 새누리당 사람이란 뉴스에 황당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정무부시장으로 처음 거론되었던 시민단체 출신 안 모 교수 기용설은 권 시장이 책임을 피해보려는 꼼수였던 것 같다. 접촉 과정을 보면 권 시장이 정말 안 교수를 기용하려 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안 교수는 충남도에서 중책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대전시 정무로 옮기는 건 사실상 힘든 상태다. 
 
권 시장은 그런 안 교수에게 사람을 보내 “부시장을 공모 형식으로 하려 하는데 응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안 교수는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얼굴에 철판을 깐 사람이 아니면 그런 식으로 자리를 옮기기는 어렵다. 나중엔 공모 방식을 취소한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입장을 바꿀 수는 없었다. 공모형식이 아니어도 안 교수는 정무로 오기 어려웠다.


모셔가도 가기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공모라는 방법으로 접촉한 것은 그를 진짜 쓰겠다는 생각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시민단체 사람을 쓰려고 했지만 본인이 거절하는데 어쩌겠느냐?”는 핑계 만들기였다. 이후 권 시장은 시민단체 쪽에선 사람을 찾지 않았고 결국 ‘백 씨 카드’가 나왔다. 백 씨는 다른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쓴 사람이 아니라 애초의 정무 카드였을 수 있다. 물론 권과 염 두 사람의 ‘협조 관계’가 전제되지 않으면 어려운 카드다.
 
권과 염 두 사람의 ‘협조 관계’는 지난 선거 때 이미 확인됐다. 당시 권 시장은 새정치연합 대전시장 후보로 당 지도부와 함께 새누리당 대전시장인 염홍철 시장을 시장 사무실로 찾아갔고 염 시장은 권 후보와 함께 포즈를 취해주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웃고 있는 한 장의 사진이 뉴스를 탔다. 여당 시장이면서 야당 시장 후보를 공개적으로 도와준 셈이다. 지방선거에서 두 번 다시 나오기 힘든 ‘기이한 사건’이었다.
 
권선택-염홍철 ‘정치적 결합’ 밀약 있었나?

지난 선거에서 이른바 ‘염맨들’이 권선택 후보를 도왔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권 시장 당선에 염 시장의 공이 50%는 된다’는 말까지 한다. 과장이겠지만 염 시장 공이 작지 않다는 말이다. 이 정도면 두 사람이 정치적으로 ‘보통 관계’는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이후에도 두 사람 사이에 나타나는 기이한 일들은 그 관계가 일회성이 아닐 가능성을 말해준다.
 
두 사람은 지난 선거 과정에서 ‘정치적 결합’이나 ‘정치적 협조’를 밀약했을 수도 있다. 권 후보의 당선이라는 성공을 거둔 뒤에도 두 사람은 ‘결합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4년 뒤를 생각하면 권 시장에겐 염맨들, 즉 염의 조직이 필요할 수 있고, 염과 염맨들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권 시장이 필요하다. 이게 지금 두 사람의 ‘관계’로 보인다. 어떤 ‘외부적 요인’으로 관계가 파탄을 맞거나 한쪽이 배신하지 않는 한, 자리든 사업이든  ‘성공의 열매’는 함께 나누는 게 맞다.
 
두 사람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들은 이런 관계를 전제로 하여 관찰하면 쉽게 납득이 간다. 백 씨의 정무부시장 기용도 그 중 하나일 뿐이다. 퇴임한 시장이 곧바로 시청 앞에 사무실을 여는 이상한 일도 이젠 이상한 일이 아니다. 청와대 인사실장까지 한 권 당선자가 염 시장이 퇴임도 하기 전에 염 시장의 양해를 얻어 총무과장을 내정하는 황당한 인사도 이상할 게 없다. 대전시와 그 주변에 포진해 있는 이른바 ‘염맨들’이 권 시장 취임 이후에도 온전히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점도 과거 시장교체기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지금 권 시장과 염 전 시장 두 사람은 대전시라는 지방정부를 마치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전시가 공동정부로 보인다. 전직시장과 현직시장이 이심전심으로 사이좋게 협조하는 정도를 넘었다. 그렇지 않고는 시청 주변에서 연이어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을 이해할 방법이 없다.
 
전임 수령과 후임 수령 사이가 처첩 같아선 곤란하다는 게 다산의 말씀이지만 양쪽의 이해 관계 때문에 이뤄지는 ‘정치적 밀월’이라면 차라리 처첩지간이 낫다. 처음으로 민주 개혁 세력의 대전시장이 탄생했지만 스스로 반개혁의 상징으로 비판하는 새누리당 당원을 정무부시장에 앉히는 것은 단순한 난센스가 아니다.

개혁성 안보이는 권 시장.. 염 시장 때와 같다면
 
대전시는 지금 정무부시장 한 명이 문제가 아니다. 염홍철-권선택 공동정부로 운영된다면 권 시장이 선거 때 내세운 공약은 헛공약이 되고 말 것이다. 이미 그런 조짐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민주 개혁 세력의 시장이라면 무엇보다 행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보일 만한 데도 권 시장한텐 아직 그런 얘기도 행보도 없다. 대전시 안팎엔 시민경청위에서 잠깐 보였던 개혁세력들보다는 과거형 인물과 공무원들이 힘을 얻어가는 분위기다.

전임 시장이 해온 사업들이라 해도 계속할 건 계속하고 바꿀 건 확 바꿔야 하는데 전부 계속하기만 할 뿐 바뀌는 건 거의 없다. 와인축제도 호수공원도 사이언스콤플렉스도 다 염 전 시장이 깔아놓은 대로 따라가는 분위기다. 권 시장이 4년 임기 정책에 대한 로드맵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지금처럼 가면 염 시장이 계속 시장을 하는 것과 진배가 없다.

정부가 새로 들어서면 3개월이나 6개월은 언론도 좀 봐주는 관행이 있다. 이 기사는 그런 관행에 어긋날 수 있다. 그러나 3개월을 기다리기에는 지금 대전시가 너무 위험하게 가고 있다. 권 시장과 염 전 시장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공동정부’는 시민들을 크게 속이는 최악의 행정이다. 자리든 사업이든 전현직 시장이 정치적 거래로 시정을 운영한다면 그게 바로 공동정부다. 아니길 바라지만, 대전시 주변에서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현상들은 그런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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