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김학용 주필
제대로 임금 노릇하는 건 힘들다. 어천만사가 걱정거리다. 비가 너무 많이 와도 너무 안 와도 근심이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물가가 너무 오를까 대형 사고라도 터질까 늘 노심초사다. 그러나 군주와 대통령에겐 남들이 갖지 못하는 즐거움이 있다.

『논어』에 공자(孔子)가 노나라 정공(定公)에게 말한 그 즐거움이다. “사람들의 말에 ‘내가 임금이 되어 다른 즐거움은 없고, 다만 내가 말을 하면 아무도 어기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내 말을 어기는 사람이 없는 즐거움

박근혜 대통령도 누구보다 ‘1인자의 즐거움’을 누려왔다. 그의 주변에는 자신의 말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인사 참사’가 되풀이되는 걸 보면 지당대신들만 그를 에워싸고 있다. 본래 찬성보다 반대가 소임인 야당의 시비는 늘 있어왔지만 목소리가 크지 못했다.

이젠 사정이 달라질 수 있을까?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비박(非朴) 김무성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여당 내의 야당이 탄생한 셈이다. 대통령에겐 더 신경쓰이는 ‘진짜 야당’이 될 수 있다. 김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면서도 할 말은 하겠다고 했다. 당청을 수평적 관계로 바꾸겠다고도 했다. 당대표 선거기간 중에는 “박 대통령에게 독선의 기미가 나타났다”는 말까지 했다.

비박 여당대표, 대통령의 ‘독선’ 견제할까

 대통령은 여당의 협조가 없다면 국정을 운영하기 힘들다. 김 대표가 제역할을 한다면 대통령은 ‘1인자의 즐거움’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대통령은 불쾌했을 것이다. “내 말에 그리 잘못된 게 뭔가? 대체 누구의 말을 따르라는 것이냐?”고 항변할지 모른다.

이에 대해선 공자가 이미 답을 했다.  “임금의 말이 선(善)해서 아무도 어기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임금의 말이 불선(不善)한 데도 아무도 어기지 않는다면 한 마디 말로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 ‘독선’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였다.

‘(군주가) 한 마디 말로써 나라를 진흥시킬 수 있느냐?’는 정공의 물음에 대한 공자의 대답이었다. 공자의 후학들은 “임금의 말을 아무도 어기지 않는다면 아첨하고 알랑거리는 사람들만 찾아온다. 이 때문에 나라가 갑자기 흥하거나 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흥망의 근원은 여기에서 갈라지게 된다”고 해설을 붙였다.

문제가 된 장관후보자 3명을 다 임명하든 안 하든 결국 대통령의 생각에 따라 결론이 날 것이다. 대통령의 말은 국가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금이 공자 시대와 다른 것은 대통령의 선택이 국가의 미래보다 자기 정권의 흥망에 더 빨리, 즉각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1인자가 독선에 빠지는 이유

대통령이 소통을 거부하고 끝내 자기 고집대로만 하면 인기가 떨어지고 각종 선거에서 여당이 패하면서 결국 정권을 내주게 돼 있다. 집권 기간에도 대통령 지지율이 낮으면 의도하는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다. 나라를 망치고 정권을 빼앗기는 한이 있더라도 ‘독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이렇다 할 치적도 없이 물러난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되면 독선에 빠지는 이유가 있다. 1인자에게 타협은 상대를 굴복시키지 못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타협이 자신의 권위를 손상시킨다는 생각도 한다. 반대의 의견을 계속 수용하다간 나라를 끌고 가기 어렵다는 걱정도 들 것이다. 그러나 원초적인 이유는 ‘누가 감히 나에게 덤비느냐?’는 생각이다.

‘1인자의 즐거움’은 대통령만 누리는 게 아니다. 선거를 통해 조직의 장(長)이 된 사람들도 독선에 빠진다. 시도지사도 시장 군수 구청장도 자기 생각과 자기 말이 전부다. 임기가 다 끝나 다시 주민의 심판을 받게 될 즈음에야 유권자의 눈치를 본다.

권선택 시장 ‘경청’ 약속 지키고 있나?

권선택 대전시장이 선거에서 내세운 ‘경청’은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안 되겠다는 의미였다. ‘1인자의 즐거움’을 경계하는 말이었다. 권 시장은 지금 누구 말을 경청하고 있는가? 시민인가, 공무원인가, 새정치연합인가, 시민단체인가? 선거 때 조직인가? 아니면 일부 측근인가? 아니 경청의 대상이 있기는 한가? 논란을 빚는 정무부시장 인선은 경청의 결과인가? 혼자 한 결정인가? (시민의) 경청을 위함인가, (시민단체로부터의) 경청을 거부함인가?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을 좋아할 지도자는 없다. 자기를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걸 좋아하고 반대하는 사람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않을 힘을 가진 사람이 그 조직의 1인자다. 그 지위를 유지하는 한 그는 ‘1인자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 한다.

독선은 ‘하수 1인자들’의 방법, 고수는...

능력이 있으면 1인자가 될 수 있고, 간혹 운이 좋아도 그런 자리에 갈 수 있다. 실질적인 1인자라면 ‘독선’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독선은 조직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망치는 지름길이다. 독선은 ‘하수(下手) 1인자들’의 방법일 뿐이다. 고수(高手)라면 자기보다 남을 내세워 자신의 뜻을 이룬다. 이야말로 진정한 1인자요 진정한 즐거움 아닌가?

김정은이 뜨면 늙은 간부들이 수첩을 들고 따라 다닌다. 1인자의 즐거움이다. ‘아니오’는커녕 제대로 받아적지 못해도 목이 달아날지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회의는 이와 얼마나 다른가? 고금을 막론하고 ‘1인자의 즐거움’은 1인자 스스로 정치 수준의 저급성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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