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대덕구민의 6.4지방선거 인정 않는 것

성이 ‘대 씨’고 이름이 ‘덕구’인 사람이 있다. 지난 6월 4일 ‘청장’을 맛있게 한다는 식당 한곳에 들렀다. 대 씨는 그 집에서 먹을까 말까 하다가 그냥 나와 다른 식당의 ‘청장’을 주문했다. 대 씨는 이제 며칠 뒤엔 ‘선량탕’이란 요리를 먹어보러 그 식당에 다시 가 볼 참이다. 그런데 그 식당은 한 달 전 내놨던 그 ‘청장’을 이름만 ‘선량탕’으로 바꿔 내놓기로 했다. 음식의 내용물은 100% 똑 같다. 시간이 지나서 더 숙성된 것도 아니다.

같은 음식을 그릇만 바꿔 내놓기로 한 새정치연합

대씨는 과연 이번에는, 퇴짜 놨던 그 식당에서 ‘선량탕’을 고를까? 음식보다 식당 주인이 맘에 든다면 -더구나 경쟁 식당의 주인의 하는 꼴이 너무 싫다면 - 비록 그릇만 바꿔서 나오는 재탕이지만 그집 ‘선량탕’을 선택할 수 있다. 그래도 대 씨는 기분이 언짢을 것이다. 맛있는 ‘청장’이라고 자랑하던 그 음식을 그대로 내놓고 이젠 맛있는 ‘선량탕’이라고 할 테니 아무래도 고민은 될 것이다.

7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지난 대덕구청장 선거 때 박영순 후보를 지지했던 대덕구 유권자들의 고민일 수도 있다. 새정치연합은 6월 대덕구청장 선거에서 낙선한 박 씨를 7월 실시되는 국회의원 보선후보로 결정했다. 구청장에서 떨어진 사람이 다시 후보로 거론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새정치연합에서 농담을 좀 심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됐다.

‘같은 선거구서 한 달 만의 재출마’ 한국 정치 수준

새정치연합의 박 씨 공천은 지금 정치가 어느 수준인지를 보여주는, 선거사에 남을 또하나의 ‘사건’이다. 한 사람이 한 달 만에 같은 선거구에서 두 번씩 출마가 가능한 게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구청장에 떨어진 사람을 바로 국회의원 선거에 내보내는 건 과거에도 없던 일이다. 언젠가 맹형규씨가 서울시장 경선에 나오면서 의원직을 내놨다가 실패한 뒤 6개월 만에 재출마해서 당선된 적은 있으나 떨어진 선거구에서 곧바로 다시 나온 경우는 들어본 적 없다.

새정치연합과 박 후보는 지난 6.4선거에서 대덕구민이 내린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돈 공천이 부정행위라면 한 달 만의 재출마는 유권자를 얕보고 무시하는 행위다. 정치가 뻔뻔함의 대결인 경우가 많지만 요즘 한국정치는 해도 너무 한다. 이런 식의 정치를 없애자는 게 새정치일 텐데 새정치연합은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박 후보와 새정치연합은 주민들의 결정은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주민들의 결정을 기다리며 표를 달라고 졸라야 하는 이율배반에 빠지게 됐다.  “나는 당신들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지만 당신들은 나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박 후보가 어떤 말로 표를 달라고 할지 궁금하다.

선거 결과와 유권자 선택 인정 않는 박 후보 공천 결정

박 후보는 두 선거가 다르기 때문에 지난 선거에 대한 부정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구청장과 국회의원은 하는 일이 다르다는 점을 내세울지도 모른다. 물론 구청장과 국회의원은 하는 일이 다르다. 요구되는 능력과 자질도 다르다.

두 자리는 서로 다를 뿐 중요성을 가릴 수는 없다. 하지만 같은 수의 유권자가 뽑더라도 현실정치에선 국회의원이 구청장보다 한 끗발 위다. 구청장이 그 지역 국회의원에게 공천권 때문에 쩔쩔매는 모습을 봐도 그렇다. 현실적으로는 국회의원이 구청장보다 한 단계 위다.

그러나 자리의 높낮이 문제는 아니다. 구민들이 구청장감이 아니어서 떨어뜨리고 국회의원 감이라서 뽑아주는 건 아니다. 유권자는 대체로 선거 시점에서 당과 후보의 적절성을 보고 판단한다. 따라서 구청장선거에서 국회의원선거로 바뀌었다고 해도 ‘재출마’는 선거 결과에 대한 부정이고, 불복이다. 

콩으로 메주도 쑤기 어려운 후보 국회의원 되더라도..

정치하는 사람에게 이것만큼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도 없다. 그런데도 새정치연합과 박 후보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지난 선거에서 박 후보가 아주 근소한 표 차이로 패했기 때문에 또 다시 나가면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재출마의 가장 현실적인 이유로 보인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이다. 그는 구청장 선거에서 낙선했을 뿐 아니라 구청장에 떨어지면 정계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었다. 자신이 한 말을 스스로 되삼키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모든 약속을 다 지킬 수는 없지만 꼭 지켜야 때가 있다. 박 후보는 정계은퇴까지는 아니어도 스스로 한 자기 말을 한 달도 안 돼 확 뒤집는 결정은 하지 않았어야 한다. 그는 이제 콩으로도 메주를 쑬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된들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는 불확실한 금배지 욕심에 오히려 자기 자신을 버린 셈이다. 금배지를 얻는다 하더라도 자신조차 되찾기가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 누가 그를 이런 구렁텅이에 밀어 넣었는가? 우선은 본인이 책임이 크다. 자신이 원치 않았는데 억지로 요구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새정치연합 지역 중진 박병석 이상민 의원도 책임

그 다음은 그를 공천한 정당과 정당 관계자들이다. 정당에선 누구라도 그의 재출마를 만류했어야 한다. 새정치연합의 지역당에서도 만류하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최고참인 박병석 의원과 시당위원장인 이상민 의원이 박 후보를 말렸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그들은 오히려 ‘경선’이라는 장치를 통해 박 후보를 이끌어낸 측면이 있어 보인다. 물론 그럴 만한 사정도 있을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경선을 통해 당원과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된 결정이라는 점을 들어 박 후보 공천의 정당성을 주장할지 모른다. 천만에다. 우리는 잘못된 결정이 개인보다 집단과 조직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국회의원 300명이 국민들 의사에 반(反)해 만들어내는 엉터리 법률도 그 예다. 집단적 조직적 결정은 책임감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무책임하고 비도적인 결정을 더 쉽게 할 수 있다. 박 후보의 공천도 그런 결정이었다.

시장선거 뛰다가 방향 바꾼 정용기 후보도 흠

출마 과정으로 보면 박 후보의 경쟁자인 정용기 후보도 흠이 있다. 그는 대전시장이 되겠다고 나섰다가 중도탈학한 사람이다. 그도 국회의원 보선에 떳떳하게 나올 처지는 아니다. 두 달 전만 해도 시장이 되겠다고 전력을 다하던 사람이 느닷없이 방향을 바꾼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도 그는 시민의 심판까지 받지는 않았으므로 박영순 후보와는 큰 차이가 있다.

‘대덕구씨’는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겠다. ‘출마 과정’만으로 보면 박 후보의 ‘새정치 식당’보다는 정 후보의 새누리 식당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선거는 알 수 없다. 고객들은 종종 음식보다는 식당 주인을 보고 선택한다. ‘새누리 식당’의 최대 주주인 박근혜 정권이 계속 죽을 쑤고 있다고 판단되면 재탕인지 삼탕인지 묻지도 않고 ‘새정치 식당’으로 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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