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과 매춘부의 유사점

  김학용 주필  
 김학용 주필

안대희 총리후보자는 11억 원씩이나 되는 돈을 내놓을 게 아니라 후보직을 사퇴하는 게 마땅하다. 총리후보로 거명되면서 내놓는 돈은 기부가 아니라 총리직을 구하는 데 드는 ‘매관(買官) 비용’일 뿐이다. 11억 원에 총리직을 살 수 있다면 은행을 빚을 내서라도 해보겠다는 사람이 줄을 설 것이다. 그 중에 안 후보만 한 사람이 없겠는가?

‘전관예우 모델’ 총리가 관피아 척결할 수 있나?

작금 박근혜 정부의 최대 과제는 이른바 ‘관피아 척결’인데 알고 보니 안 후보자 자신이 관피아의 모델이다. 그는 5개월 간 16억 원을 벌었다. 한 달에 3억, 하루 1000만원씩 번 셈이다. 그는 “변호사로서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가려서 변호하거나 편들지 않았고, 윤리와 양심에 벗어난 사건을 맡은 적도 없다”고 했다.

변호사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가난한 자들을 변호했다면 짧은 기간에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벌 수 있나? 만일 가난한 사람 10명을 변호하고, 부자 1명을 변호한 결과라 해도 문제다. 부자에게 ‘지나치게 많은 돈’을 받았다는 뜻 아닌가? 

‘많이 줘서 받는 것인데 그게 왜 문제인가? 주는 돈도 못 받는다는 말인가?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돈조차 받을 수 없다는 얘긴가? 판사든 대법관이든 공직을 그만뒀다면 변호사 활동은 할 수 있지 않은가? 대법관 출신은 변호사 노릇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인가?’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관예우는 예우가 아니라 비리다. 보통 변호사들은 전관예우를 ‘전관비리’라고들 한다. 

대법관 등 고위 법관을 지냈으면  변호사 활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당장 그렇게 하자고 하면 위헌 시비가 벌어지겠지만 우리도 근본적으로는 일본이나 프랑스처럼 판검사 출신은 변호사로 가지 않는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대법관이 되려는 사람에겐 추후 변호사 활동을 안 하겠다는 서약 같은 걸 받아야 한다. 대신 대법관을 그만둬도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연금을 지급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지금 같은 풍토에선 대법관 신청자가 한 명도 없을지 모르겠다. ‘국민검사’라는 칭송을 듣던 사람조차 하루 1000만원씩 버는 전관예우의 길을 걷고 있으니 변호사 안 하겠다는 대법관이 있을지 의문이다. 대법관 출신 ‘편의점 아저씨’도 결국은 로펌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나 사회의 암적 요소인 전관예우를 없애려면 법조계가 정말 달라져야 한다.

전관예우는, 판검사 출신들이 법률 서비스 대신 자신의 얼굴을 팔아 돈을 버는 폐습에 다름 아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경우 도장 한번 찍어주는 데 3000만원, 전화 한 통 거는 데 500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쓴 변론장에 도장만 찍어주거나 전화만 한 통 해주고 거액의 수임료를 챙긴다면 그는 법률 서비스 제공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파는 장사꾼이다.

‘전관(前官)’과 매춘부, 유사점과 차이점

이런 전관들은 매춘부와 흡사하다. 모두 ‘상품’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판다는 점에서 같다. 도장 찍어주고 전화 한 통이 전부라면 법률 지식이 아니라 자신을 파는 행위다. 매춘부는 몸을 팔고, 전관은 영혼을 판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매춘부는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고, 전관은 더 많은 돈 더 많은 권력을 위한 수단이다.

차이는 또 있다. 매춘부는 스스로를 희생할 뿐이지만 전관은 사회 전체를 좀먹고 무너뜨린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도 비리와 부패가 없을 수 없으나 최종 심판대는 법(法)이다. 법정에서 바로잡을 수 없으면 고칠 방법이 없다. 그런데 ‘전관’들은 이 심판대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비틀어버리는 선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풍토의 책임도 상당 부분은 전관들에게 있다고 본다. 법조계의 전관예우는 우선적으로 척결돼야 할 관피아의 대표적인 적폐다.

전관예우로 하루 1000만원 꼴의 최고 수임료 기록을 세운 사람이 전관예우 척결에 앞장설 수 있겠나? 11억 원을 게워냈다고 한들 관피아 딱지를 떼낼 수는 없다. 안 후보자를 총리로 앉혀 관피아 척결을 강압적으로 밀어부칠 수는 있겠지만 법조계부터 “당신이야말로 대표적인 관피아 아니냐?”고 비웃을 텐데 어떻게 성공하겠나?

처음엔 청렴하다가 나중에 사욕채우는 교환(巧宦)

안 후보자는, 공직부패 문제에 팔을 걷었던 청의 옹정제(雍正帝)가 말한 ‘교환(巧宦)’에 해당될 수 있다. “많은 관리들이 온갖 수단을 부려 명예를 추구하면서도 국가의 재산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며 명예와 이득을 다 거머쥐려 하고 있다. 그들은 명예와 실리를 진정으로 얻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더 가증스러운 것은 관직에 막 올랐을 때 청렴하다가 막상 고관이 되어서는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한 옛 사람들이 말한, 이른바 교환(巧宦)이 되고 만다. 그런 자들의 저의가 무엇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옹정의 치국(治國)』

‘교환(巧宦)’은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한자어로만 쓰이지만 출세하는 요령을 잘아는 ‘약삭빠른 관리’쯤으로 풀이할 수 있다. 승진을 위해서 청렴한 체하다가 목적을 이룬 뒤에는 재물을 챙겨 명예와 부(富)를 다 누리고자 하는 벼슬아치들이 옹정제가 말한 교환이다.

안 후보자는 한나라당의 검은 돈을 가차 없이 수사하면서 차떼기당 딱지를 붙여주고, 상대 편인 노무현 정권의 사람들까지 성역 없이 수사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검사라는 칭송까지 얻었다. 재직 시절엔 재산이 늘어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청렴 강직한 관리였다.

그러나 그 후의 행보를 보면 ‘교환의 길’을 걸어온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대법관 출신이 법복을 벗은 지 2개월도 안돼 대선 캠프에 들어간 점도 법조인의 길은 아니었다. 진짜 국민검사였다면 자신이 칼을 휘두르던 곳에 그리 쉽게 뛰어들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가 휘둘렀던 것은 정의보다 권력과 공명심을 추구한 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 보면 그가 전관예우를 받았다는 사실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11억 원이 아니라 전 재산을 다 내놓더라도 그는 이제 국민 검사가 아니라 ‘전관예우의 모델’에 불과하다. 정부가 관피아와 전관예우 척결을 외치는 시점에 그 모델이 총리가 될 수는 없다. 대통령이 후보 지명을 취소하든지, 안 후보자 스스로 후보직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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