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공천’ 이상민과 이장우의 차이

  김학용 주필  
 김학용 주필

선거는 각 정당이 후보라는 상품을 파는 시장(市場)이다. 시장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면 좋은 상품이라야 더 잘 팔리는 게 맞다. 그러나 정당은 좋은 상품보다 자신들이 팔고 싶은 상품을 내놓는다. 전략공천이라고 불리는 전략상품이다. 

좋은 상품 대신 팔고 싶은 상품 내놓은 새정치민주연합

전략상품에 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당이 아닌 공천권자의 전략상품인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다. 이름만 공천(公薦)일 뿐 사실은 공천권자의 개인적 이해가 반영된 사천(私薦)이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정당들이 외치는 공천개혁은 이런 사천을 없애자는 것이다. 안철수가 외치던 새정치도 그 첫발은 제대로 된 공천에 있었다. 민주당과 안철수는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이란 이름으로 당간판까지 새로 내걸었지만 오히려 ‘헌정치’로 돌아가고 있다. 당내 반발을 사고 있는 광주시장 후보 전략공천은 안철수를 위한 사천이었다.

대전은 어떤가? 새정치연합 대전시당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자신이 왜 탈락했는지도 모르고 떨어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100명이 넘는 공천 희망자 중 30명 정도가 시당에 이의 신청을 냈지만 거의 다 묵살됐다. 일부는 이상민 위원장의 사퇴까지 요구하면서 소송도 불사할 태세다. 김형태 대전시당 공동위원장의 탈당도 문제 있는 공천이었다는 의미다.

새누리보다 못한 새정치연합 공천 투명성

여당보다는 야당에서 더 공정하고 깨끗한 공천이 이뤄진다는 인식이 있어 왔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선 완전히 거꾸로다. 새누리보다는 새정치연합이 더 구태한 방식으로 진행했다. 새누리당은 신청자의 경선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하면서 구색을 갖추려고 했다. 그래야 할 이유는 있었다. 대통령 공약이었던 기초공천 폐지를 뒤집으면서 공천이라도 떳떳하게 해야 했다. 여론조사나 경선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새정치연합보다는 공정한 편이었다.

새정치연합은 전부 전략공천으로 마감했다. 시장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등의 모든 선거구 가운데 동구청장 후보 한 곳만 경선으로 뽑았다. 무공천 입장을 번복, 뒤늦게 공천작업을 시작함으로써 시간이 부족한 데다 세월호 사건이 터진 점을 핑계로 댈 수도 있다. 그러나 당이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고 세월호 사건은 여야가 다 겪는 일인데 새누리당은 무사히 끝내지 않았나?

‘좋은 상품’보다 ‘공정한 상품’ 내는 게 민주주의 원리

정당 ‘공천(公薦)’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상품’을 내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상품도 뽑는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좋은 상품’보다 ‘공정한 상품’을 우선으로 하는 제도다. 공정한 절차를 거쳐 좋은 상품을 뽑는 게 최선이지만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좋은 상품’이 아니라 ‘공정한 상품’이다. 그게 민주주의의 원리다.

새정치연합대전시당은 이번 공천의 경우 공정하게 뽑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공정하게 뽑았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주장일 뿐이다. 공천관리위원들이 점수로 산정했다고 해도, 나눠먹기로 공천하지 않았다고 해도, 전략공천은 공천권에 영향력을 가진 몇이서 주물럭거려 추천상품 낸 것에 다름 아니다.

대전시장 후보나 구청장 후보처럼 공천 과정이 외부에 잘 노출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전략공천은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의 사천일 뿐이다. 20~30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공천 반발은 그런 이유라고 본다.

새누리당에도 공정성 해치는 공천시도 있었지만 다 성공 못해

경선을 했던 새누리당 쪽에도 사천을 노린 불공정이 없지는 않았다. 한현택 동구청장은 새누리당을 떠나 새정치연합 후보가 되었다. 본인은 새누리당이 내쫓은 것이라 하고, 새누리당 쪽에선 본인 스스로 떠났다고 주장한다. 사정을 모르는 주민들은 어리둥절하겠지만 새누리당 시당위원장인 이장우 의원의 ‘사천 욕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장우 의원은 새누리당 위원장으로서 대전 지역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공천을 이끌었지만 이 문제 때문에 그 공을 많이 까먹었다.

이 밖에도 새누리당 대전시당 경선공천 과정에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서 사천이 시도된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경선 방식에선 그런 부당한 노력들이 다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다. 새누리당의 서울시장 대구시장 경남지사 공천에서도 최대 영향력을 가진 친박계가 힘을 못 썼다. 그 점에서 경선공천과 전략공천은 하늘과 땅 차이다.

새정치연합, 공천권자 원하는 사람 다 심을 수 있는 전략공천

전략공천은 영향력을 가진 시당위원장이나 당협위원장 등이 자기 사람을 심고자 하면 100% 심을 수 있는 방법이지만 경선방식으론 그게 어렵다. 새정치연합 대전시당이 전략공천만 고집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전략공천으로 하든 경선으로 하든 선거 결과엔 별 영향이 없다고 보는 점이다.

시장 원리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정당이 공정한 절차를 거쳐 선출한 더 좋은 상품을 선택돼야 맞다. 지방선거, 특히 구청장 급 이하 시의원과 구의원 선거에선 유권자가 상품의 품질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굳이 더 좋은 상품을 선별할 필요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 정당은 경선을 할 이유가 별로 없고, 결국 공천권자가 자기 맘대로 공천권을 휘두르게 된다. 이게 이번에 새정치연합 대전시당 공천 과정아니었나 한다.

시의원 구의원 정당 공천 더 공정해야 할 이유

시의원이나 구의원 공천은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더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본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후보의 품질을 알아낼 도리가 없는 만큼 정당 공천에서라도 공정하게 뽑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건 정당이 유권자를 대신해서 해줘야 하는 작업이다. 그래야 예선에서도 억울하게 탈락하는 후보가 줄고, 본선에서도 보다 낳은 후보가 선택될 수 있다.

이상민 의원이 새정치연합 공천 신청자들의 반발을 부르고, 이장우 의원이 동구청장 후보 공천 과정에서 논란을 초래한 것 모두 ‘오만’에서 비롯됐다고 보지만 그 결과에 대해선 차이가 있다. 이장우 의원은 ‘사천 욕심’을 부린 결과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져야 한다. 만일 다른 당으로 넘어간 한현택 씨가 당선된다면 우선 자신부터 큰 타격을 입는다. 그는 도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상민 의원은 다르다. 공천자가 줄줄이 낙선해도 책임 질 게 없다. 사람들은 그가 공천한 후보들이 당선되었는지조차 관심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선이 되든 말든 내 사람만 밀어주고 끌어주는 공천이 되고 마는 것이다. 같은 ‘오만한 공천’이라고 해도 이상민 의원의 경우는 이장우 의원 같은 책임도 없이 공천권만 휘두르는 게 더 문제다.

‘오만한 공천’ 이상민과 이장우의 차이

지방의원 공천은 대개 이런 시스템으로 이뤄지고 있다. 시·구의원의 경우 정당이 더 좋은 상품을 내기 위해 노력할 이유가 없다. 당협위원장이 자기 조직관리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내보내서 당선되면 좋고 떨어져도 그만인 공천만 계속되는 것이다. 분명 ‘헌정치’다. 민주당과 안철수씨가 외치던 새정치와 거리가 멀다. 새정치를 더 크게 외치던 사람들이 새누리당보다 새정치에서 오히려 더 멀리 가 있다. 아이러니다. 이유는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기초공천 폐지 약속을 뒤집은 죄로 국민들 눈치를 더 봤고, 새정치연합은 무공천 주장의 명분(우리는 ‘공천 장사’에 관심없는 착한 정당이란 자기 기만)에 빠져 국민들 눈치를 덜 봤다. 새정치연합은 김한길 안철수 대표의 리더십 실종으로 국민 눈치를 볼 겨를조차도 없었다. 무능해도 새정치는 어렵다. 국민이 감시하는 수밖에 없다. 선거는 감시의 합법적 수단이고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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