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전관용의 소설 ‘꺼삐딴 리’에서, 주인공인 이인국은 일제강점기에 제국대학 의학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의사다. 조국이나 동포, 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는 주로 권력과 재력을 가진 유력자를 골라 상대하면서 모범적인 ‘황국신민’이 되어 성공한다.

  -가기천 수필가?전 서산부시장-  
가기천 수필가·전 서산부시장

그 후 해방이 되고 북쪽에 소련군이 진주하자, 민족과 조국을 배반했다는 죄명으로 감옥에 갇힌다. 감방 안에서 주운 러시아어 회화 책으로 공부를 하고, 감옥에 번진 전염병을 치료하면서 인정을 받은 후 기회를 엿보다 소련군 장교의 얼굴에 있는 혹을 수술하여 주고 안면을 익혀 감옥에서 나오게 된다.

‘꺼삐딴 리’라는 이름은 그 소련군 장교가 붙여주었다. 아들은 소련으로 유학을 보냈다. 이어 전쟁이 터지자 월남하여 서울에서 병원을 열어 크게 키웠고, 미국으로 유학 간 딸이 그곳에서 결혼을 하게 되자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영어공부를 하고, 문화재를 선물하며 친분을 쌓은 미국대사관원과 접촉하여 미 국무성 초청케이스로 떠날 준비를 한다는 줄거리다. 격동의 시대를 능란한 변신술로 양지만을 찾아 살아간 한 이기주의자요 기회주의자의 삶을 그려낸 소설이다.

역사에서도 소신과 지조를 멀리하고 시류를 쫓아 자신의 영달만을 챙겨 살아간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며, 백성과 나라를 배반한 인물들이 몇몇에 지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근대사에서 찾으면 이완용은 “때에 따라 변하지 않으면 실리를 잃고 끝내는 성취하는 바가 없게 될 것이다”라는 구실을 내세워 변신을 거듭한 그의 행보는 대세순응주의자의 전형으로 오명을 남기고 있다.

신념 묻어둔 채 공천과 당선 가능성만 보는 후보자들

선거가 다가오면서 어떤 사람들은 꺼비딴 리와 같은 처세술을 발휘할 것이다. 선거에 나서는 사람을 본다면, 자신의 신념은 묻어둔 채 오로지 공천과 당선가능성을 바라보며 기회를 엿보고 줄타기하는 후보자가 없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그럴듯한 명분과 이유를 들어 자기의 입장을 합리화하며 그때그때의 상황에 적당히 타협하면서 변신을 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후보자는 그렇다 하더라도 미래 권력에 접근하려고 기웃거리는 사람 또한 존재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한편 지역에서 나름대로 알려지고 영향력이 있다고 알려진 인사들은 선거 때만 되면 난처한 입장에 처한다. ‘타의에 의한 꺼삐딴 리’가 되도록 요청을 받기 때문이다.

후보로부터 지원과 협조요청을 받으면 선뜻 도와준다고 나설 수도 없고, 막상 한편에 기울면 상대측으로부터 원망을 듣고 급기야는 불편한 관계가 되기에 입장이 거북하게 된다. 때로는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다가는 양 편으로부터 모두 서운하다는 말을 듣게 되니 차라리 구실을 만들어 외지에 나가 있거나 외국으로 여행을 가는 경우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이 또한 나중에 섭섭하다는 말을 듣게 되니 선거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한다.

지방선거 때문에 오해를 받고 불편해하는 사람들

특히 늘 후보자, 지지자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작은 지역에서 지방선거는 많은 사람들의 처신과 언행을 제약하고 불편스럽게 한다. 본의였던 아니었던 내편, 네 편으로 갈리게 되고, 때로는 오해를 받고 내내 불편한 관계를 털어내지 못한다.

더욱 딱한 것은 당선자와 경쟁했던 상대 후보를 위하여 일한 것으로 오해를 받는 경우다. 상대방을 돕거나 그 쪽에 기울었다는 소문이라도 들으면 미운 마음이 극에 달하기도 한다는데, 공연히 그런 오해에 말려들어 상처를 입는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사가 그런 것인지, 자기 공을 내세우려는 사람은 충성심이라도 보여주려는 듯 공연히 평소 껄끄러운 사람을 상대방 사람이라고 고자질하여 당선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해명이라도 할 텐데 그런 줄은 깜깜히 모른 채 상대방으로부터 경원 당하거나 서먹서먹한 관계로 지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공직사회에서도 어느 편으로 붙는 것이 유리할 것인지를 놓고 주판알을 튕겨가며 줄을 서는 행위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공직자가 그 본분을 망각하고 그 세계에 기웃거린다거나 후보자에 접근하려 한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상대 후보에 줄섰다는 공무원 명단을 안 봤다는 구청장

또한 당선자는 혹시 자기를 도왔다고 믿는 나머지 그런 사람을 편애하거나 이익을 준다면 그 자질이 의문되고 자세는 그릇된 것이며, 더욱이 자기를 돕지 않았다 하여 불이익을 준다면 조직을 흐트러뜨리고 구성원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로써 가장 경계하고 삼가해야할 일이다.

몇 년 전, 대전의 한 구청장은 선거에 당선되자, 어느 사람이 상대후보자에 줄을 섰다는 공무원들의 명단을 가져왔는데,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야단을 쳐서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일단 명단을 보게 되면 사람인 이상 뇌리에 박히게 되고 결국 알게 모르게 인사 에 영향을 끼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곧은 태도와는 달리 곳곳에서 논공행상의 뒷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니, 기회주의자의 전형을 살아 온 인물을 그린 소설속의 ‘꺼삐딴 리’는 여전히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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