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희와 염홍철의 선택

  김학용 주필  
 김학용 주필

권력이 맛있는 음식이나 금은보화와 다른 점은 아무리 오래 가지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권력은 한번 맛보면 죽을 때까지 놓고 싶지 않은 게 사람 마음이다. 고금을 통해 보면 왕의 자리를 스스로 버린 사람들도 간혹 있으나 그 경우는 권력이 싫어서라기보다 정치가 적성에 맞지 않은 때문이다.

욕심으로는 죽는 순간까지 권력을 쥐고 싶지만 현실적으론 그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물러날 때가 되면 후계자 문제에 신경을 쓴다. ‘후계자 고르기’는 물러난 뒤에도 권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수단이다. 또 전임자(前任者)가 되어 떠나는 사람은 하찮은 치적이라도 금방 지워지지 않기 바라기 때문에 자신의 뜻을 계승할 후계자를 고르려 한다.

황우여 “강 의장 (노병찬 후보) 민다면서요”

대전시장 선거에서 후계자 문제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엊그제 대전지역 기자들이 황우여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강창희 의장과 염홍철 시장이 노병찬 후보를 밀고 있다는 소문 때문에 지역이 시끄러운데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황 대표는 “강 의장이 민다면서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여당의 대표가 그렇게 답했다면 강 의장의 선거 개입은 사실이라고 봐야 한다.

강창희 의장과 염홍철 시장이 노 후보를 돕고 있다는 소문은 오래됐다. 당사자들은 부인해 왔지만 노 후보 출마에 ‘강심’과 ‘염심’이 작용하고 있다는 소문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황 대표는 염 시장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지만 염 시장도 강 의장과 ‘공조’하여 선거에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염맨들’이 노 후보 캠프에 많이 투입된 걸 봐도 그렇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쌓아온 경험과 지혜로써 대전 발전에 특정 후보가 대전시장이 되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런 후보에게 좋은 충고나 조언을 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직 국회의장과 현직 시장이 직접 선거판에 뛰어드는 건 적절하지 않다.

국회의장과 시장의 선거 개입은 그 자체가 선거법 위반이다. 곧 물러날 사람이라고 해도 현직 국회의장과 광역자치단체장인 만큼 선거 중립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강 의장의 경우, 법도 법이지만 국회의 수장으로서 원자력법 등 국가적 사안에 매달리기에도 힘이 부족할 처지다.

강 의장 염 시장, ‘상왕’ 노릇 하려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조언의 정도를 넘어 선거에 적극 개입한다면 목적이 있을 것이다. 강 의장이 시장을 만들어 지역에서 ‘상왕(上王)’ 노릇 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나온다. 자기 측근을 정무부시장에 심을 것이란 얘기도 있다.

염 시장 입장에선 후임 시장이, 자신이 남긴 흔적이 지워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물러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걱정하는 문제다. 염 시장은, 노 후보가 그런 걱정을 덜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노 후보는 그제 “새로운 공약만을 제시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며 대전시 7대 현안사업을 중단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노 후보가 염 시장의 ‘후계자’임을 공언하는 말로 들린다.

누구라도 전임 시장의 좋은 정책은 이어받는 게 당연하지만 전임 시장이 상왕이 되면 곤란하다. 상왕을 둔 후계자가 시장이 되는 건 걱정스런 일이다. 권력을 물려주고 이어받는 상왕과 후계자의 관계는 권력의 사사로운 분점(分占)일 뿐이다. 시 행정이 어떻게 될지는 뻔하다.

‘후계자 만들기’ 실패하면 대전 떠날 건가?

강 의장과 염 시장은 상왕이 아니라 원로로 남도록 해야 한다. 상왕과 원로는 다르다. 원로는 어떤 후보가 시장이 되더라도 지역 어른으로 대우를 받지만 상왕은 자기가 밀어준 후보가 아니면 그런 대우를 받기 어렵다. 시장의 상왕이 되려고 나섰다가 실패하면 그 지역에서는 살기도 민망한 처지가 된다.

지금 두 사람은 상왕이 되려고 ‘투기’를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후계자 만들기가, 성공하면 상왕이 되고 실패하면 쫓겨나야 하는 게임이라면 투기와 뭐가 다른가? 그렇게 해서라도 상왕이 된다면 얻는 바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겠으나 그건 착각이다. 노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도 진짜 상왕은 되기 어렵다. 왜 그런가?

진짜 상왕이 되려면 ‘상왕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첫째 자신의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거나 인품과 능력을 갖춰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 전두환이 노태우를 후계자로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상왕은커녕 백담사로 귀양을 가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인품이 부족하면 재력(財力)이라도 대단해야 한다. ‘황제노역’의 주인공처럼 시장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억지로라도 상왕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강 의장과 염 시장은 두 가지 중 어디에 해당되는지 모르겠다. 황제노역의 주인공에 버금갈 만한 재력의 소유자는 아닌 만큼 유능한 정치가 행정가였다는 평판이 있어야 한다. 두 사람에게 그런 칭송을 들을 만한 업적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뒤 주변의 존경받으면서 물러나는 사람이라면 선거에 개입해서 후계자 만들기에 골몰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강 의장과 염 시장은 그런 의심을 받고 있다. 지금이라도 선거에서 손을 떼야 한다. 국가와 지역의 원로로 남는 길을 가야 한다. 현직에서 은퇴하는 상황에서까지 선거판에 끼어드는 사람이 원로가 될 수는 없다. 진정한 원로의 조건 중 하나는 편향적이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정치적으로 어느 한쪽 편에 서는 사람은 원로 역할을 하기 어렵다.

강 의장 염 시장, 노 후보 아낀다면 그냥 놔둬야

두 사람이 순수한 마음으로 노 후보를 도와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노 후보한텐 도움이 안 된다. 이제 막 정치에 입문한 정치 신인이 ‘퇴물 정치인들’에게 업혀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강 의장과 염 시장이 노 후보를 지원할수록 노 후보의 신선한 이미지를 오히려 퇴색시키기 십상이다.

노 후보는 여야 대전시장 후보들 가운데는 가장 젊고 신선한 정치 신인이다. 주목해보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더 신선한 공약과 용기있는 행동을 기대하고 있다. 노 후보는 자신의 강점을 살려야 한다. 누군가를 상왕으로 떠받들어야 하는 후계자는 정치 신인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

강 의장과 염 시장이 노 후보를 진정 아낀다면 그냥 놔둬야 한다. 두 사람은 마음을 비우면 지역 후배들에게 좋은 조언과 충고를 해주는 원로로 남을 수 있다. 성공할 수도 없는 ‘상왕의 길’ 대신 ‘원로의 길’을 가야 한다. 그게 진정으로 노 후보를 돕는 길이다. 두 사람 자신들과 지역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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