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성완종 건에 이례적 선고 연기

  김학용 주필  
김학용 주필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와 함께 언젠가부터 재벌 회장도 유치장을 들락거리는 모습이 꽤 눈에 띄었다. 그러나 돈의 위력은 여전히 크다. 재벌 총수가 수의(囚衣)를 입은 모습은 법원이 국민들 보기 미안해서 간혹 펼치는 '때로는 유전유전(有錢有罪)'라는 쇼로 보일 뿐이다.

법원은 곧 '법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곤 한다. 돈 있는 사람은 봐주고 권력 눈치를 보는 듯한 판결이 연이어 나온다. 일당 5억원의 이른바 '황제노역' 판결이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유력 건설업체의 오너 성완종 의원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급작스레 연기됐다.

갑자기 연기된 성완종 의원 대법원 선고

성 의원은 2012년 4월 총선에서 기부행위로 고발돼 재판을 받고 있다. 1심에선 징역 8월, 2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당선무효형이다. 전혀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한 대법에선 당선무효가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은 선고날짜를 27일로 잡았었다. 그러나 성 의원에 대한 선고가 무기한 연기되자 배 의원도 억울함을 호소하며 선고 연기를 대법에 요청했고, 대법은 배 의원의 선고도 연기해주었다.

대법의 선고기일 연기는 아주 드문 일이다. 1심, 2심은 선고기일을 잡아 놓고 재판을 진행하지만 대법은 결론을 먼저 내놓고 선고기일을 잡는 게 관행이라고 한다. 성 의원의 선고 연기에 대해 법조계에선 '아주 이례적인 일'로 보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신규 변호인을 선임하면 피고인 방어권 차원에서 선고를 한 차례 연기해준다"고 해명했다. 통상 변호사를 새로 선임하면 재판을 연기해주는 관행이 있다. 성 의원도 변호사를 여러 번 바꾸면서 국내 최대 로펌까지 동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 그대로 '돈뭉치'로 재판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의 생각과 너무 다른 법관의 양심

재판을 받는 사람은 변호인의 보호를 충분히 받을 권리가 있다. 변호사를 몇 명 사든 아주 비싼 변호사를 사든, 제 3자가 간여할 바 아니다. 법관의 양심과 법에 따라서 이뤄진 것이라면 법원의 판단도 존중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성 의원에 대한 선고 연기가 정말 법관의 양심에 따른 것인지는 의문이다.

성 의원이 아니었다면 아마 배 의원 사건은 연기되지 않았을 것이다. 배 의원은 부자 의원의 덕을 본 셈이지만 법이 돈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같은 국회의원이지만 법원의 대우가 이렇게 다른 것은 법보다는 법관의 양심 문제에 기인하는 것 아닌가?

양심적인 재판인지 아닌지는 법관 본인만 알지만 국민이 보기에도 어느 정도 형평성은 유지해야 된다. 대법은 이번에 국회의원 선고일조차 부자와 부자 아닌 의원을 차별하는 모습을 노출시킨 셈이다. 권위는커녕 유치한 대법원이 되고 말았다.

선거법 재판은 1년 이내에 끝내도록 돼 있다. 요즘 규제 철폐를 외치지만 정치 개혁을 위해선 법원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제다. 선거법 위반 재판은 1년 이내에 마무리하라는 것이 공직선거법의 강행규정이다. 성 의원은 2012년 4월에 당선되었으니까 1년을 훌쩍 넘겨 2년이 다 돼간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오히려 선고일을 무기연기 해주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가 유력 건설업체의 오너인 부자 국회의원이란 점 때문에 '돈으로 금배지 다는 기간을 연장했구나' 하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피고인인 성 의원이 책망받을 이유는 없다. 스스로는 경미한 위반인 데도 당선무효까지 가는 게 억울 수 있다.

'일당 5억'도 법관 양심에선 나올 수 없어

이는 전적으로 법원과 법관의 몫이다.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면 되는 일이다. 문제는 법관의 양심이 국민들의 생각과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법관의 양심을 의심할 만한 재판이 너무 많다. 황제노역 재판도 판사의 양심에선 나올 수 없다.

황제노역 재판은 지역법관제 즉 향판(鄕判)의 문제로 지적되기도 한다. 판사가 한 지역에서만 10~20년을 머물면 재판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황제노역 재판 같은 경우는 지역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본다. 이 재판은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전에는 광주시민들도 전혀 몰랐다. 4년 전인 2010년 광주고법이 황제 노역의 주인공인 허재호씨에 대해 500억원 벌금을 250억원으로 깎아주며 '일당 5억'을 선고했지만 그 지역 언론들은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10개가 넘는 지역 언론 중 신문 한 두곳에서만 '허재호 회장 벌금 감경'으로 단순 보도했을 뿐이다. 일당 5억이 말이 되느냐는 비판은 없었다. 광주시민들은 4년 전 자기 지역에서 일당 5억의 황당한 판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황당한 재판'은 지방언론에도 책임 커

황제노역 판결은 발생 장소가 '지방'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된다. 내가 보기엔 지방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이 없는 지방에서 발생했다는 점이 사안의 본질이다. 황제 노역의 주인공이 그 지역의 유력 지방신문을 소유하고 있고, 집안사람들이 검찰과 법원에 포진하고 있는 점이 사건의 동기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지역 언론의 감시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면 그런 황당한 재판을 함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황제노역 판결이 대전에서 나왔다면 지역 언론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지역의 유력자에 대해 일당 5억 판결을 내렸다면 구경꾼 노릇만 했던 광주 지역 언론들과 달랐을까? 최근 대전지법의 '계룡건설 판결'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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