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목민관의 임기말 인사

  김학용 주필  
 김학용 주필

"가련하게도 이 기공(寄公·영토를 잃은 제후로 퇴임하는 수령을 비유한 말)의 문 앞에는 공손히 대령하는 군졸 하나 없고 온 성(城) 안이 업신여기고 온 경내가 소문을 돌려가며 비웃는다. 그래도 관인합(官印盒·직인함)을 단단히 잡고서 도둑질하고 농간 부릴 생각을 하여, 향임(鄕任·부시장급)과 이임(里任·면장급)을 바꾸어 차임(差任·인사)하고, 차첩(差帖·사령장)에 도장을 찍어주는 값을 받는다. (중략) 비방하고 매도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와도 능청스럽게 못듣는 체한다." (목민심서)

『목민심서』 끝 부분의 '해관(解官)조’에는 경질되어 물러나는 목민관이 경계할 바가 들어 있다. '가련한 기공'은 봉고파직 등으로 불명예 퇴진하는 수령이 떠나가는 모습이다.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떳떳하게 떠날 수 있는 목민관도 그 행실이 '가련한 기공'과 다를 바 없다면 역시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성무용 천안시장의 ‘황당한 임기말 인사’

지금 천안시청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임기(정년)를 불과 두 세 달 남겨둔 사람을 끌어내리고 후임자를 새로 뽑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디트뉴스 등의 보도에 따르면 임기가 다 된 천안문화재단 본부장은 사표를 낼 사정이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닌데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서를 냈고, 천안시는 채용공고를 내 후임자를 뽑고 있다. 오는 6월이 임기인 3, 4산업단지 관리사무소장 2명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사표를 썼고 명예 퇴직한 국장급 공무원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물론 인사권자인 성무용 천안시장의 뜻으로 봐야 한다. 지역에서도 그리 보는 것 같다.

성 시장은 3선을 다 채우고 석 달 뒤면 물러나는 사람이다. 그런 시장이 '아직도 직인함을 단단히 잡고 사람을 바꾸어 차임(差任)하면서 차첩(差帖)에 도장을 찍으려 한다. 다산이 경계하였던 '해관(解官) 수령'의 바로 그 모습 아닌가? '보은인사'라며 사방에서 비방하고 매도하는 소리가 들려와도 시장은 못 듣는 체하고 있다.

이런 시장이 평소 인사는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다. 정실인사 보은인사 등으로 점철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천안시 행정이 어떻게 이뤄져 왔는지 이번 일로 그 수준을 알 만하게 되었다. 성 시장으로선 눈 한번 질끈 감고 감행하는 낯두꺼운 인사지만, 이게 지난 12년 간 자신이 해온 행정의 수준을 드러낸다는 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재선, 3선 출마 때는 표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비방이 잇따를 인사는 차마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젠 더 이상 표에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천안시청 내에 조소와 비난이 가득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 아닌가? 성 시장이 도지사 후보감으로 거론돼 왔다는 점에서 도민들에게도 실망이다.

임기말 인사는 조직에 재뿌리는 '놀부심보'

조직을 개편하고 인사를 하는 본래 목적은 조직 분위기를 쇄신하여 업무를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떠나는 수장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금방 떠날 사람이 하는 인사는 후임자를 골탕 먹이는 일이다. 후임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임기말 인사는 수장 자신이 일해 온 조직에 재를 뿌리고 나가는 것과 같다. 놀부 심보가 아닐 수 없다. 임기 마지막날 하는 인사라도 법적 하자는 없으나 해선 안 된다. 어떤 조직이든 수장(首長)의 잔여 임기가 채 6달이 안 되면 새로 인사를 하지 않고, 조직도 새로 짜지 않는 법이다. 행정에선 기본 상식이다.

천안시장의 임기말 인사는 그동안 그가 정말 천안시를 위해 일해왔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임기말 인사는 자기가 끌고 온 조직이 어떻게 되건 말건 시장이 자기 욕심만 채우겠다는 말밖에 안 된다. 그것이 '보은 인사'든, 혹은 '내가 시청을 떠나면 이젠 자네가 날 좀 잘 봐달라는 보험성 인사'든 사욕일 뿐이다.

새로 뽑고자 하는 사람이 정말 재능이 뛰어난 인재였지만 여태까지는 발탁기회가 없었다거나 적재적소인사라고 변명한다 해도 말이 안된다. 그렇다면 지난 12년 동안 그런 인재를 안 쓰고 뭐했나? 임기말엔 인사 요인이 생겨도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후임자에게 맡겨야 옳다. 떠나는 순간까지 관인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은 비웃음만 살 뿐이다. 천안시장은 지금이라도 상식에 어긋나는 임기말 인사를 중단해야 한다.

대전시도 임기말에 사람 채용 추진 '뒷말'

대전시도 지난 10일 대전시립예술단 내에 조직을 신설하고, 최대 10명의 인원을 새로 뽑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어 뒷말이 나오고 있다고 한 지방신문이 보도했다. 시 관계자에 따르면 이 일은 2년 전부터 추진해온 것으로 갑자기 조직을 신설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염 시장이 물러나기 전에 3~4명은 뽑을 예정이었던 같다.

이 사실이 '임기말 시장의 부적절한 인사'로 언론에 보도되자, 염홍철 시장은 자신도 몰랐다며 오해를 받지 않도록 충원 계획을 하반기로 미루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잘한 일이다. 채용을 강행하면 염 시장도 '가련한 기공'이 될 수밖에 없다.

시장 말이 사실이면 염 시장을 '가련한 기공'으로 만들 수도 있는 일을 시장도 모르게 공무원들이 스스로 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한 공무원들은 둘 중 하나다. 레임덕 시장이라서 우습게 여긴 ‘불충’이거나, 아니면 임기말 시장에 대한 '마지막 충성' 아니겠는가? 어떤 이유가 됐든 시장이 말한 대로 전부 후임 시장이 뽑도록 하면 된다. 

대전시장과 천안시장을 비롯하여 물러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우리 지역에도 꽤 있다. 대전시교육감도 물러난다. 어느 곳이든 나가는 순간까지 조직에 손을 대려 하고 인사 사령장을 손에 놓지 못하는 사람은 '가련한 기공의 우(愚)'을 범하는 것이다. 물러나는 '신목민관들'이 특히 조심할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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