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 가까워 오고 보니 휴대폰으로 오는 문자메시지가 부쩍 늘었다. 그런데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보낸 문자를 받으면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아서 보냈을까?’하는 의문부터 갖게 한다. 더구나 선거구가 아니어서 표(票)를 줄 수 없는 인물이 보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일면식도 없는 후보로부터 받는 문자

  가기천 수필가 · 전서산시부시장  
가기천 수필가 · 전서산시부시장

요즘 금융사, 카드회사, 통신회사 등 여기저기에서 줄줄이 터진 정보유출과 관련하여 혹시 그런 경로를 통하여 얻어낸 정보를 가지고 보낸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궁금증을 넘어 불쾌감마저 들 때가 있다. 하기야 지역일, 나랏일을 해보겠다고 나서는 분들이 옳지 못한 방법으로 전화번호를 입수할 리는 전혀 없을 것이라 여기면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얼마 전, 은행과 카드사로부터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사과의 말씀’ 편지를 받았다. 결국 고객이 부담하는 비용을 들여서 보냈을 ‘사과의 말씀’을 보면 형식에 지나지 않는 그런 편지를 받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치 못하다.

며칠 전에는 같은 카드사로부터는 거푸 왔는데, 똑같이 인쇄된 편지를 발송한 우편집중국이 하나는 동서울이고 다른 하나는 안양인 데다가, 받는 주소도 하나는 종래의 지번 주소이고 다른 것은 도로 명 주소로 되어있으니 그 이유를 알 수 없고, 하나의 카드가 두 번 유출되었다는 것인지 그 서한문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또한 ‘직접적인 피해’가 있으면 보상을 해주겠다고 하는데, 사태를 수습하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한 둘이 아니다.

서한문에 쓰여진 ‘임직원 일동’ 진정성 의문

생색내는 광고에는 대표자의 이름을 내면서도, 그 서한문에는 ‘임직원 일동’이라고 쓴 것도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처사로 여겨졌다. 서한문에 있는 대로 ‘개인정보 유출여부 확인’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성명, 주민번호, 전화 번호, 카드번호, 유효기간, 카드정보, 신용한도, 경제정보 등 무려 13개나 되는 항목이 떴다.

‘아니 그런 것도 있나?’싶을 만큼 나 자신 지금도 궁금한 항목들이 적나라하게 벗겨져 돌아다닐 것 같아 찜찜하다. 몇 가지 조치사항과 주의사항이 나열되어 있으나, 이곳저곳에서 이중, 삼중으로 신상명세가 다 털리고 모든 것이 노출된 판에 걱정한들 무슨 뾰족한 대책이 있겠는가?

이제 개인정보를 의식하는 것이 무의미한 지경에 와 있지는 않을까 한다. 당국에서는 잦은 개인정보 유출사고와 더불어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일이 문제가 되자 개선책을 내놓는다고는 하지만 과연 얼마나 과감하고 획기적인 대책이 나올지 의문이다.

그런 발표 이후에도 마구잡이 정보 수집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에 인터넷으로 인쇄물을 주문하는데, 거기에서도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였다. 인쇄물 내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입력을 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를 않으니 어쩔 수 없이 기입할 수밖에 없었다. 또, 이사를 하느라 전 거주자가 마감장치를 하였던 도시가스를 풀고자 신청하자 찾아온 기사가 주민등록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무엇 때문에 필요하냐?”고 물으니 “사용자 카드 양식에 쓰게 되어 있고, 다른 사람들도 다 쓴다”는 것이다.

혹시 ‘까다로운 고객으로 미운 털이 박혀서’ 나중에 어떤 불이익이라도 받지는 않게 될까 하는 생각에 공연히 물어본 것은 아닐까? 걱정거리가 하나 늘었다. 사설교습소에 회원등록을 하는데도 주민등록번호를 쓰라고 할 만큼 일상화되었다. 어느 지인은 요금을 자동이체하려고 하는데 관련업체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기에 거부하였더니 결국 자동이체를 할 수 없어 매달 직접 은행에 가서 내야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고 한다.

모르는 후보가 보낸 문자 보고 찍을 사람 있을까?

가끔 갖가지 명목의 여론조사를 하는 전화가 오곤 한다. 그 때마다 드는 의문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 어느 기준으로 하필 나를 골랐을까?’하는 의문이다. 물론 조사 기법에 의하여 표집대상을 추출하겠지만, 특히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를 빙자하여 ‘특정인의 성향을 떠보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아무리 ‘조사목적 이외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라보고 놀란 가슴’은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더욱이 전화를 받는 입장에서는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는 반면, 상대방에서는 나를 환하게 꿰뚫고 있거나, 아니면 나에 대하여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즉, 손자병법대로 상대방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롭지 않은(知彼知己 百戰不殆)’ 위치이지만 혹시 피조사대상이 되는 입장에서는 ‘적은 누구인지 모른 채 나만 알려주는’ 그런 비대칭(非對稱)의 상황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문득, 전혀 알지 못하는 후보자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받았을 때 ‘내 전화번호를 알아낸 경위를 밝히지 않는다면 나는 그 후보자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왜냐하면 혹시 부정하게 남의 정보를 취득하여 선거에 활용하는 후보자라면 공직을 맡을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지나친 기우(杞憂)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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