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지 말아야 할 ‘임기말 도장’

  김학용 주필  
 김학용 주필

그동안 음식물 쓰레기는 분리수거 해서 밀봉 처리한 후 바다에 버리는 식으로 처리해왔으나 작년부터는 해양 투기가 금지되었다. 대전시는 밀봉해서 금고동쓰레기 매립장에 묻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계속 처리할 수는 없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는 모든 지방자치단체의 과제다.

대전시는 최근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업자를 선정했다. 494억 원이 소요되는 ‘음식물 음폐수 바이오 가스화 시설’이다. 유성구 금고동에 들어선다.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해서 가스를 만들고 전기도 생산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전시로서 시민들에게 알릴 만한 좋은 아이템이다. ‘이제, 음식물로 바이오 가스를 만든다!’ 이런 식의 보도자료가 나오는 게 정상이다.

시청 홈페지에 '숨겨놓고' 보도자료 안 내

그러나 대전시는 이 사업에 대해 어떤 홍보도 하지 않고 있다. 깜빡한 건 아닐 것이다. 이 업무는 시와 도시공사 등 3군데 부서에서 다루고 있다. 모든 부서 사람들이 건망증에 걸릴 가능성은 없다. 시시콜콜한 일까지 보도자료를 만들어 뿌려대는 대전시가 500억이나 되는 '첨단기술 친환경 사업'의 낙찰자를 결정해놓고 사실상 이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의무사항인 인터넷 공개만 한 상태다. 필자는 이 얘기를 전해듣고도 대전시 홈페이지에서 한참을 헤매고서야 간신히 찾을 수 있었다.

3월4일 올린 것으로 돼 있는 이 자료의 조회수는 13일 현재 18건이다. 많아야 18명만 알고 있는 셈이다. 줄곧 이 사업을 ‘주시해온’ 한 대전시의원도 사업자 낙찰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이 분야 사업의 관계자도 나중에야 알았다고 한다. 기자들도 몰랐으니까 기사를 안 썼을 것이다. 대전시에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대전시는 2월28일 ‘음식물 바이오가스화 사업’에 입찰한 계룡건설 컨소시엄과 현대엠코 컨소시엄 두 곳에 대해 심사위원회를 열어 계룡을 1위 업체로 결정했다. 대전도시공사는 이 심사 결과를 바탕으로 계룡 측과 사업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사실을 아직 공표하지 않고 있다.

'현대'와 경쟁해서 이긴 ‘환경기술 신생업체’ 계룡

이 사업의 ‘임자’는 계룡으로 정해져 있다는 소문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건설업체인 계룡은 환경기술 사업엔 경험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분으로 참여해온 게 고작이다. 그런 계룡이 이번 입찰에는 주관사로 참여했다. 업계에선, 환경기술이 성패의 관건인 이 사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따라붙곤 하였으나 계룡이 결국 사업권을 따냈다. 신생 업체가 현대 계열의 쟁쟁한 환경기술업체 현대엠코를 이긴 것이다.

대전시 홈페이지에는 심사의 내용이 공개돼 있다. 필자로선 심사가 제대로 됐는지는 알 수가 없다. 설사 미심쩍은 게 있다 해도 전문가가 아닌 한 잡아내기 어렵다. 이 분야 관계자는 "전문가라 해도 자료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최소한 절차상으론 하자 없이 사업 발주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대전시는 왜 계룡 낙찰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우선은 낙찰자가 계룡이라는 점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대전시(도시공사)는 유성복합터미널 사업 사업자로 계룡건설이 참여한 ‘현대증권 컨소시엄’을 선정한 상태지만 협약 기간을 임의로 연장하여 계약을 맺은 것이 문제가 돼 현재 법적 소송이 진행중이다. 도시공사가 협약 기간을 임의로 연기해주지 않았다면 계룡은 '입찰 제한 페널티' 때문에 500억원 짜리 사업에도 참여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가처분 신청에선 법원이 계룡 측 손을 들어주었지만 상대가 항고한 상태여서 최종 결과는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500억원 짜리 사업이 하나 더 계룡에 넘어간 것이다. 도시공사가 공모지침까지 어겨 가며 체결기한을 연기해주고, 시가 그런 도시공사를 솜방망이 처벌한 이유를 알 만도 하다.

  대전시 홈페이지에 '숨어 있는' 494억 짜리 사업 심사 결과. 계룡이 1등으로 사업권을 땄다. 대전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보도자료를 내지 않았다.  
대전시 홈페이지에 '숨어 있는' 494억 짜리 사업 심사 결과. 계룡이 1등으로 사업권을 땄다. 그런데 대전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보도자료조차 내지 않았다.

사실상 숨겨 진행해온 2200억 친환경 사업

계룡은 이것 말고도 1700억원 규모의 ‘자원순환단지’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물론 대전시 사업이다. 일반쓰레기와 하수슬러지를 처리해서 자원화하고 전기까지 얻는 친환경사업다. GS 측이 주관사다. 이 사업은' GS-계룡 컨소시엄'이 단독으로 신청해서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계약을 따낸 거나 마찬가지다.

수년 째 추진되고 있는 이 사업도 보도자료를 낸 것은 한 번뿐이다. 때문에 환경단체도 이 사업이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를 잘 모를 정도다. 이번에 계룡이 먹은 500억 짜리사업과 1700억 짜리 자원순환단지 사업을 합치면 2200억 원이나 되는 대규모 환경사업이다. 대전시는 이 사업을 숨어서 하고 있다.

대전시가 하는 큰 사업에 지역 업체가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걸 문제삼을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사업을 시민들 몰래 줄 이유는 없다. 2억 짜리라도 숨어서 할 사업은 대전시에 없다. 그런데 대전시는 왜 숨기고 감추는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요즘 계룡이 참여하는 사업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자꾸 벌어진다는 점이다. 대전도시공사가 계룡 측과 유성복합터미널 사업 협약을 체결하면서 공모지침을 어기고 협약서 제출 기한을 맘대로 연장해준 일은 정부의 사업자 공모에선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이번처럼 500억 짜리 사업자를 결정하고도 보도자료 하나 내지 않는 것도 기이한 일이다.

'도시철도 2호선 설계용역 주고 나간다'는 소문

물론 계룡 관련 사업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 시중에는 도시철도 2호선 사업에 대해 믿기 어려운 소문이 돌고 있다. 대전시가 염홍철 시장 임기 전에 건설방식을 확정하면서 500억 원에 달하는 ‘2호선 기본설계 용역’을 2개의 컨소시엄에 나눠줄 거라는 소문이다. 용역업체 이름까지 거명되고 있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근래 계룡의 사례 등을 보면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염 시장은 이제 물러나는 사람이다. 그래도 자신이 진행해온 사업은 마무리를 하고 싶겠지만 욕심을 접어야 한다. 임기 말엔 새 계약서에는 도장을 찍지 말아야 한다. 특히 수백, 수천 억 하는 사업에 도장을 찍겠다고 나서는 건 후임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임기말 도장 집착은 권리 의무 아닌 ‘몸부림’

이번에 계룡이 따낸 ‘음식물 바이오 가스화 시설’은 화급을 다투는 사업이 아니다. 일정이 다소 늦어진다고 해서 쓰레기 대란이 일어날 일도 없다. 임기를 목전에 둔 시장이 도장을 찍어야 할 이유가 없다. 계룡이 이번에 차지한 500억짜리 사업은 시장이 남몰래 조용히 준 ‘임기말 선물’ 아닌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람의 도장은 권리도 의무도 아니다. 마지막까지 관인(官印)에 집착하는 것은 딱한 몸부림일 뿐이다. 염 시장은 깔끔하게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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