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의장의 개헌 드라이브

  김학용 주필  
  김학용 주필

국회의장의 임무를 두 가지로 요약하면, 첫째 정부를 견제 감독하는 대의기관 수장(首長)으로서의 역할이 있다. 국회를 대표하여 국회와 국회의원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다. 두번째는 국회 내에서 여야의 공정한 심판관으로서의 기능이다. 특정 정파에 기울지 않고 의회를 공정하게 운영함으로써 국회가 국민의 뜻을 왜곡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그동안 국회의장은 어느 것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여당 국회의장은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총대를 메곤 했다. 그 점에서 지금 강창희 의장은 이전의 의장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개헌에 관한 한, 강 의장은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모양새다. 강 의장의 개헌 공론화는 박근혜 대통령과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이전 국회의장들과 다른 길 걷는 강창희?

강 의장은 작년 7월 제헌절부터 개헌공론화 나섰다. 청와대의 반응이 부정적이었지만 강 의장은 올 신년사에서도 거듭 개헌 드라이브를 걸었다. 지난 17일엔 국회사무처로부터 헌법개정자문위원회 구성 및 지원에 관한 업무보고를 받았다. 대통령이 뭐라 하든 개헌작업을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강 의장이 작년 처음 개헌론을 주창했을 때만 해도 청와대와 교감을 가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가 박 대통령의 원로 자문그룹 '7인회' 멤버라는 점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작년 박대통령은 부정적 입장을 보인 데 이어 올해 신년회견에선"개헌론은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더 확실하게 표명했다.

대통령이 반대하면 성공 가능성은 현실적으론 제로다. 강 의장도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주장을 꺾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회의장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신 표현인가? 더 나아가, 박대통령과 다른 길을 가겠다는 뜻인가?

자민련 시절 '내각제 전사'의 소신인가

강 의장의 소신도 분명 있다고 본다. 개헌은 국회의장으로선 가장 해보고 싶은 명분있는 과제다. 국회의장이 되면 대개 개헌의 목소리를 높인다. MB 시절 김형오 의장도 개헌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그땐 야당에서 반대하고 대통령이 판을 깔아줬었다. 지금은 그 반대다.

강 의장은 내각제 개헌론자로 알려져 있다. 과거 자민련 시절 그는 '내각제 전사(戰士)'를 자처하며 DJP 연합정권에서 장관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국회의장이 되어 그 소신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의 개헌 드라이브는 내각제를 전제로 한 것일 수도 있다. 얼마 전 출범한 운정회(충청권 정치인들 모임)를 내각제 개헌 응원세력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강 의장이 내각제 그림이라도 그려 발표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현실적으론 의미가 없다. 그림 그리는 일은 국회의장이 아니라 정치학자들이 전공이다. 대통령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이상 개헌은 추진될 수 없다.

개헌 드라이브를 통해 강 의장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국회의장의 존재감을 크게 높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야권의 일부에서 개헌론에 맞장구를 치고 있지만 대통령이 "노(No)"라고 하면서 개헌 문제는 다시 묻히고 있다. 강 의장은 아무 소득도 없이 박근혜 대통령과 껄끄러워지기만 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배신의 정치

국회의장이라 해도 실현 가능성이 제로인 문제 때문에 같은 편이었던 대통령과 멀어지는 길을 감수하고 있다면 이해하기 어렵다. 혹시 강 의장이 개헌론을 박 대통령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의 수단으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강 의장이 박 대통령과 멀어지기 위해 개헌문제를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는 "육사에 안 갔으면 운동권이 됐을 것"이라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정치하는 데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육사에 들어간 것을 후회하며 퇴학당하려고 일부러 백지 답안을 냈지만 뜻대로 안 됐다고 한다. '자의식'이 꽤 강한 정치인이라는 의미다. 정치학자 A씨는 이런 사례를 들어 "강 의장은 국회의장이 된 이상 박 대통령을 모시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강 의장이 작심하고 개헌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면 '탈박(脫朴)'은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바라는 것일 수 있다. A씨는 강 의장의 개헌드라이브를 '의도적인 탈박'으로 분석하면서 "개헌은 강 의장이 대통령의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것으로 박 대통령 입장에선 배신의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그의 개헌 드라이브는 "나는 더 이상 박근혜 사람이 아니다!"라는 메시지일 수 있다.

그럼 그가 '탈박'으로 얻는 것은 무엇일까? 모두들 가까이 가지 못해 안달인 대통령과 스스로 거리를 둘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국회의장이 되어서도 대통령한테 절절 매면서 말 한마디 못하고 그만두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은 사람은 없다. 물러나는 자리인 국회의장은 권세보다는 이름값을 높여야 하는 자리다. 이 점에선 탈박이 더 유리할 것이다.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국민들이 다수다. 국회의장이 대통령 눈치 안보고 노력하는 모습이라면 소신이든 탈박이든 응원해야 옳다. 그러나 현실성이 없는, 순전히 명분용에 불과한 것이라면 의미가 없다.

명분 있어도 현실성 없으면 허망한 작업

그는 국회의장이지만 한 지역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때는 국회의장이 돼서 국비 5000억원을 따오겠다고 했다. 대전시와 충남도의 골칫거리인 충남도청사 부지비용 해결도 그의 공약이었다. 5000억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지만 도청문제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장우 의원은 작년 말 '제2서해안고속도로 사업비 50억'을 따낼 수 있었던 비화를 기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완구 각본, 이장우 주연, 박수현 연출' 등 공조 작업으로 예결위원장을 압박해서 50억원을 확보했다는 ‘무용담’이다. 50억원을 따는 데도 이런 '정치'가 필요하다.

강 의장의 개헌론이 명분용이 아니라면 역시 '정치'가 필요하다. 강 의장에겐 그런 정치력이 안 보인다. 강 의장은 충청권 의원들과도 개헌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는 목표에 대해 주장만 하는 것은 정치인의 방식이 아니다.

강 의장이 대통령의 반대에도 개헌 추진을 계속함으로써 국회의장이 달라졌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르나 정치적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허망한 작업일 뿐이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압박하지도 못하고 소득도 없이 그와 껄끄러워지는 것은 '마이너스 정치'일 뿐이다. 지역에 정부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가져오길 바라는 지역민으로선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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