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임기 다 돼도 '사실적 평가' 깜깜

  김학용 편집위원  
 김학용 편집위원

지방공무원노조가 해당 기관 간부들을 대상으로 평가한 결과가 잇따라 공개되고 있다. 대전시공무원노조는 국장 2명 과장 5명을 '2013년의 진정한 리더'로 뽑았다. 노조원 500명 이상이 참여해서 선정한 것으로, '우수 상관'으로 뽑힌 선배들에겐 더 없는 기쁨일 게다.

공무원노조가 생기면서 부하직원들이 선배와 상관을 평가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이런 '상향(上向) 평가'로 인해 상관들은 아래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조금이라도 줄고, 업무를 대하는 자세도 달라질 것이다.

대전시노조는 시장과 부시장 평가는 하지 않았다. 전에도 시장을 평가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이유는 있을 것이다. 지휘부를 국장 과장처럼 평가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을 테고, 단체장에 대한 평가 자체가 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임기 4년 되도록 단체장 평가 어려워

그러나 지방공무원노조가 자치단체장 평가도 해보면 어떨까 한다. 단체장 평가는 간부 평가보다 효과가 훨씬 클 것이다. 간부 평가는 조직 내부용이고 부하직원에 대한 간부들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는 정도지만, 단체장 평가는 행정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엉터리 행정을 억제하는 효과가 꽤 있을 것이다.

2010년 취임한 시도지사와 시장 군수 구청장들의 임기가 종반부로 치닫고 있다. 주민들은, 자기 고장의 단체장들이 그간 성실하게 일해왔는지, 업적은 어떠한지가 궁금해질 때가 되었으나 이를 알아 볼 만한 곳이 없다. 

내년 지방선거에 다시 출마하는 단체장에겐 선거 결과가 평가인 셈이지만, 표심이 그 평가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선거는 단체장의 업적보다는 그의 이미지에 따라 좌우될 수도 있고, 소속 정당 지지도의 영향이 클 수도 있다. 주민들이 자기 지역 자치단체장의 '제대로 된 성적표'를 알 수만 있다면 선거 때도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언론기관 지방의회의 단체장 평가 신뢰 못해

그런데 그런 성적표를 생산하는 곳은 없다. 언론사 등에서 실시하는 여론조사는 단체장에 대한 지명도나 이미지 평가에 가깝지 업무 성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앙 정부의 평가도 단체장 실적을 평가하는 데는 거의 소용이 없다. 무능한 자치단체장도 각종 기관 단체에서 타오는 상(賞)이 수두룩하다. 개 중에는 수천만원 씩 갖다 바치고 받는 가짜 상도 있다.

지역 주민들은, 자기 지역 단체장이 정말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말만 요란하고 실속은 없는지, 양심적으로 하는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시도지사는 물론이고 시장 군수 구청장 같은 기초단체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주민들은, 자치단체장이 언론에 비춰지는 모습이나 소문 정도로 평가를 짐작할 수밖에 없다.

자치단체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의 밑에서 함께 일하는 그 지역 지방공무원이다. 그들은 단체장의 능력 장단점 인간성 취향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 이들이 공정하게 제대로만 한다면 이보다 정확한 평가는 없을 것이다.

아래 사람들의 평가라서 객관성에 문제?

공무원들의 단체장 평가는 객관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평가하는 공무원들과 평가받는 자치단체장이 인사와 업무 등으로 얽혀 있는 상황에서 객관적 평가가 가능할까 하는 점이다. 자치단체장이 평가를 의식해서 능력있는 직원을 발탁하지 못하고 연공서열로만 할 경우 조직의 활력을 떨어뜨릴 것이란 걱정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우라고 본다. 학점을 잘 주는 교수가 학생들한테 '베스트 티처'로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아래 사람 눈치만 보는 단체장이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보장은 없다. '발탁 인사'를 하든 '연공 인사'를 하든 단체장의 맘이지만, 노조 평가만 의식하다 일을 제대로 못하면 무능한 단체장이 되고 만다. 노조 평가가 전부는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단체장이 노조평가에만 신경쓸 수는 없다.

노조 평가는 몇몇 사람이 아니라 자치단체별로 수백 명 ~ 1천 명이 넘는 공무원들이 무기명으로 하는 투표여서 어떤 평가보다도 객관적일 수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기관) 등의 도움을 받아 평가의 객관성을 더 높인다면 공정성 시비는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대전시 노조가 간부 공무원 평가를 위한 설문지. 간부 평가 문항을 참고해서 시도지사와 시장 군수 구청장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대전시 노조가 간부 공무원 평가를 위한 설문지로, 1)~7)간부 평가 문항. 이를 참고해서 시도지사와 시장 군수 구청장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 도움으로 객관성 공정성 높일 수 있어

평가 항목은 이번에 대전시 노조가 간부들 평가에 사용한 항목을 약간 변형해도 무방할 것 같다. 대전시노조는 1)소통과 화합 2) 신뢰와 믿음 3) 봉사정신과 사명감 4) 리더의 자질 5) 업무추진 능력 6) 합리적 의사결정 7)만족도 등을 5점 척도로 조사했다. 단체장 평가는 1) 업무 전문성 2) 추진 능력 3) 소통 노력 4) 화합 노력 5) 합리적 의사 결정 5) 인사의 공정성 등으로 구분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조는 이런 식으로 매년 평가하되, 임기가 끝날 때는 '4년 임기 성적'을 평가할 수도 있다. 각 자치단체 노조가 독자적으로 실시할 수도 있지만, 다른 자치단체와 공동으로 실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대전 충남 충북 세종은 4개시도 노조가 공동으로 평가를 진행할 수도 있다.

자치단체장들은 찬성보다 반대가 훨씬 많을 것이다. 특히 무능하고 부패한 단체장일수록 결사적으로 반대할 것이다. 평가를 방해하고 투표를 막으려 할지도 모른다. 투표하는 사람들을 찾아내려 할 수도 있다. 각 지방공무원노조가 평가를 공동으로 추진하고 평가의 방법도 통일하는 것이 이런 점에서도 좋을 듯하다.

지자체 감시 평가의 사각지대.. 무능 부패 단체장들도 '장수'

지금 시도지사와 시장 군수 구청장들은 감시와 평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감사원 등 중앙 감시기관들은 지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알 수 없고, 위기의 지방언론사들은 광고 몇 푼에 단체장의 비리와 부조리에 눈을 감고 있다. 지방의회도 자치단체장과 한통속이 되어 '생선을 나눠먹는 고양이'일 뿐이다. 지방공무원 노조도 자치단체장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도 노조 평가는 무능하고 부패한 단체장을 드러내고 견제하는 효과적 수단이 될 수 있다. 시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수백 명에서 1천명이 넘는 공무원들이 평가하는 방법이란 점에서 신뢰할 만하고, 평가의 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근래 청양군의 경우처럼 비리 사실이 들통나지 않는 한, 단체장의 부패와 무능은 4년이 지나도 주민들은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이렇다할 업적이 없는 데도 단체장 본인은 업적이 많다며 거짓 홍보를 한다. 과거 관선 시도지사나 시장 구청장들은 허튼 짓을 하면 바로 목이 달아났지만, 민선시대에는 이런 위인들이 운 좋게 당선되면 형사처벌로 물러나지 않는 한 4년 임기를 다 마친다.

대전시 노조위원장, "단체장 평가 여론 수렴해보겠다"

무능하고 부패한 단체장을 도중에 끌어내릴 수는 없어도 '사실적 평가'는 가능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것도 막혀 있다. 주민들은 그가 무능하고 부패한 단체장이란 사실을 잘 모르니 재선 삼선하면서 '장수'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그 지역은 퇴보하고 주민들은 힘들어진다.

공무원노조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다. 여황현 대전시노조위원장은 단체장 평가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을 표했다. 다만 "지금, 단체장 평가를 한다, 안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노조 내부의 의견과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의 생각도 들어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각 자치단체가 따로 하든, 대전시 충남도 충북도 세종시 노조가 공동으로 하든, 그도 아니면 대전시와 5개구청이 함께 하고 충남도와 각 시군이 함께 하는 방식이든 지방공무원들이 단체장 평가를 실시해봤으면 한다. 물론 평가의 결과는 모든 주민들에게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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