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권오덕 전 대전일보 주필

 대전시립합창단의 ‘봄 여름 가을 겨울....연주회’를 보고

권오덕 전 대전일보 주필
권오덕 전 대전일보 주필

한국정상급인 대전시립합창단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연주회(11월 19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는 한마디로 관객들과 하나가 된 성공적인 연주회였다.

창단 32년이 넘는 대전시립합창단의 이번 공연을 필자가 다른 어떤 공연보다 주목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오랜만에 레퍼토리를 한국가곡으로 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연주회와는 달리 맛깔스런 기획의 참신한 연주였다는 점이다.

특히 시낭송과 함께 펼쳐진 배경화면 등 참신한 기획은 돋보였다. 대전시립합창단은 알려진 대로 국내 정상급 합창단이다. 그동안 뛰어난 기량과 기획력으로 다른 합창단을 압도해 온 게 사실. 특히 2007년 합창의 마에스트로인 독일인 빈트리트 톨을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앉혀 안정된 소리와 함께 레퍼토리의 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이다. 고전부터 현대작곡가들의 곡까지 폭넓게 소화해 왔다.

톨은 합창음악의 진수인 바흐의 B단조미사(2007년)와 요한수난곡(2009년)을 원전연주로 선보였고 헨델의 Dixit dominus HWV232를 연주해 한국합창음악계에 잔잔한 충격을 주었다. 또 이미 2005년 독일 바흐국제합창페스티벌 초청연주로 그 실력을 세계무대에 떨친바 있다. 2012년에는 모차르트 레퀴엠, 브람스의 ‘새로운 사랑노래’등을 새로운 해석으로, 헨델의 메시아를 고음악으로 재현해 주목을 받았다.

시낭송과 배경화면 등 참신한 기획, 정상급연주 과시

  시립합창단 연주회 모습  
시립합창단 연주회 모습

그러나 이 같은 전문합창음악은 일반 관객에게 조금 어려운 게 사실이다. 마니아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클래식한 곡의 연주는 당연하지만 팬들에겐 쉽게 들을 수 있는 레퍼토리도 필요하다. 각국 민요나 팝송, 때로는 국악과 대중가요까지 아울러야한다. 필자는 그중에서 우리 가곡을 자주 연주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갈수록 우리 곁에서 멀어지고 있는 우리가곡을 살렸으면 해서다.

이에 발을 맞춘 듯 기획된 ‘봄 여름 가을 겨울.....’연주회는 순수한 우리 가곡(대중가요도 한 두곡 있었지만)만으로 연주돼 관심을 끌었다. 무엇보다 4계절을 노래한 가곡을 차례로 부른 착상이 신선했다. 1부의 봄은 아직도 우리 귀에 익숙한, 예컨대 강 건너 봄이 오듯(임긍수곡), 남촌, 청산에 살리라, 봄이 오면 등 우리가 자주 부르는 전통 가곡을, 여름은 여름 냇가, 영계백숙, 바다야 바다야 등 신곡들을 연주했다.

또 가을노래는 가을의 기도, 푸르른 날, 못 잊어 등 유명 시인의 시에 새로 곡을 부친 노래들이, 2부 겨울에서는 손종호 시인(충남대교수)이 직접 낭독한 겨울 속의 그대 이야기, 정호승시인의 첫눈 오는 날 만나자, 하얀 눈과 마을과 등 젊은 작곡가들이 만든 가곡을 노래했다. 다시 봄 파트에서는 나비에게, 산 넘어 남촌에는, 이 아름다운 자연을 등의 노래가 합창으로 엮어져 아름다운 하모니를 수놓았다.

전문합창곡과 함께 가곡•국악•동요도 많이 연주해야

각 파트에 앞서 작가의 시낭송은 분위기를 한껏 끌어 올렸고, 노래 관련 화면을 스크린에 올려 극적인 효과를 노렸다. 모든 연주가 끝난 후 관객들이 함께 부른 김동환 작사 김규환 곡 ‘남촌’ 역시 적합한 선곡이었다. 너무 오래된 가곡보다는 비교적 최근의 곡을 선택해 팬들이 따라 부를 수 있게 한 것은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 아쉬운 것은 우리 민요나 동요를 넣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란 점이다.

이 같은 한국가곡연주회가 올 들어 처음은 아니다. 대전시립합창단은 이대우 부지휘자의 지휘로 연중 몇 차례 한국가곡 연주회를 가져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철저하게 기획된 연주는 희귀한 게 사실이다. 한국가곡연주회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음은 사실이다. 이는 대전뿐 만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다. 근본원인은 입시위주의 교육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가곡을 철저히 무시하는 방송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시청율과 청취율을 의식해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라도 관심을 가져야하지만 그렇지 못하니 답답하다. 다만 KBS FM에서 매일 저녁 9시30분에 30분 간 방송하는 게 유일하다. 지난 60, 70년대에는 방송에서 창작가곡 경연대회를 열어 ‘한국가곡전성시대’를 구가하기도 했다. 우리 민족과 애환을 같이 해온 우리 가곡을 살리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 음악인들조차 우리 가곡을 외면하니 문제다.

갈수록 시들해지고 있는 한국가곡 살리는데 앞장서길

최근엔 지역의 음악대학에 성악과가 없어지고 우리 가곡을 잘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성악가조차 독창회에서 한국가곡만으로 레퍼토리를 짜는 건 전무하고, 전곡을 외국가곡과 오페라로 채우는 게 보통이다. 대개 14곡-18곡을 부르는데 모두가 외국노래인 경우가 많다. 물론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나 ‘물방앗간의 아가씨’, 로베르트 슈만의 ‘시인의 사랑’등 연가곡집을 부른다면 어쩔 수 없지만.

더욱 한심한 것은 앙코르 곡마저 외국노래라는 점이다. 성악가의 독창회에서 조차 우리 가곡을 외면하고 있으니 말이 되는가? 세계적인 성악가나 기악연주가가 내한공연 말미에 앙코르로 한국 가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흔히 본다.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소프라노 안젤리 게오르규와 바바라 보니 등은 임이 오시는지, 그리운 금강산 등을 불렀고,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는 ‘청산에 살리라’를 연주해 갈채를 받았다.

그런데 한국성악가들이 외국가곡과 오페라만 부르고 한국가곡을 외면해서야 될 말인가? 한국가곡은 일제 때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 애환을 함께해온 값진 문화유산이다. 우리 전통가곡이 대접은커녕 내팽개쳐지는데 대해 우리 모두는 자성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살리는데 앞장서야한다. 이번 대전시립합창단의 ‘봄 여름 가을........’연주회를 보고 한국가곡의 부흥에 대한 가능성을 본 것은 커다란 기쁨이었다.

권오덕(전 대전일보주필) 010-6420-6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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