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지사 책을 읽고

  김학용 편집위원  
 김학용 편집위원

 안희정 지사는 어떤 정치인인가? 지역 살림의 최고책임자인 충남지사가 된 지도 3년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도 아직 나는 그가 어떤 정치를 하려나 하는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 있다. 후보시절 그와 인터뷰한 적도 있고, 도 공무원들이나 그를 돕고 있는 전문가들한테서 그의 생각을 전해듣곤 하지만 그가 어떤 정치인이라고 말할 수 없는 편이다.

 그가 펼치고 있는 도정(道政)의 주요 제목들-3농혁신 행정혁신 지방분권 등-은 알고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텐데 하는 의문점이 있다. 적어도 안 지사가 그 이전 도지사들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은 여전하다. 누구보다 젊은 나이로, 더구나 민주당 충남지사로 처음 당선되었다는 점에 기인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의 적자' '친노의 핵심'이라는 딱지가 그에겐 붙어 있다.

친노의 핵심에서 나온 '위험한 좌파' 이미지

 이런 점들이 만들어낸 '안희정 이미지'가 여전히 있다. 젊은 좌파 정치인의 위험성 같은 것이다. 안 지사가 지난주 출판기념회를 가진 책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는 이런 이미지를 걷어내는 데 목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안 지사의 책은 처음 읽었다. 첫 느낌은 그가,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책 중 고엽제전우회와의 대화에 대한 기록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나는 한번도 그들의 희생과 노고를 폄하한 적이 없었다. 단지 일부 언론이 찍은 낙인이 우리 사이에 편견을 만들었다. 지금도 그 편견이 괴롭히고 있을 뿐이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자신을 '386 좌파 계략가'로 생각하며 두려움과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는 얘기도 소개한다. 전에도 그는 도지사로 들어올 때 자신에 대한 이런 이미지를 불식시키려 노력했다는 사실도 몇 번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런 노력 때문일까 이제 많은 도청 공무원들은 그를 '위험한 도지사'로 보지는 않는 것 같다.

안 지사를 괴롭히는 안 지사에 대한 편견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인 안희정'은 여전히 낯선 인물일 것이다. 적어도 안 지사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가 이번에 낸 책은 줄곧 자신은 결코 위험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정의, 공정, 공평, 명분, 대의 등을 내세우면서도 상대에 대한 배려, 이해, 존중, 타협, 양보를 거듭해서 강조한다. 방점은 정의 공정 쪽보다는 타협과 양보 쪽에 찍혀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안 지사가 누구보다도 타협하고 양보할 줄 아는 정치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분배와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치적 편향성과 진영논리를 확실하게 배척하고 있다. 그는 "희망버스가 대한민국의 위기를 극복하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며 보수진영을 속썩이던 '희망버스'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논란을 빚은 유성기업노조 사건에 대해서도 금속노조의 비겁함을 질타한다.

   
 안희정 지사가 12월23일 출판기념회를 가진 책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희망버스' 유성기업노조 비판하며 진영논리 배척

 그는 책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선 크게 강조하지 않는 편이다. 그가 강하게 반대했던 4대강사업도 그 자체보다는 MB정부의 대화 거부가 진짜 원인이었다고 적고 있다. 자신은 대화론자라는 것이다.

 외교 분야는 새누리당과 거의 일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민주당이 다소 거리감을 두고 있는 미국에 대해서도 "동맹관계를 약화시키거나 철회하는 잘못을 범해선 안 된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재앙"이라고 확언하고 있다. '원교근공'의 외교론을 들어 "미국이라는 (외교적) 자산을 훼손하면서 중국을 향해 서둘러 구애하는 것은 바람직한 외교정책 전환이 아니다"고 못박고 있다.

 책으로만 보면 그는 정치적으로는 확고한 '민주주의자'이면서, 경제적으로는 '시장(市場)주의자'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인생을 걸고 고민했던 문제는 민주주의"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민주주의를 짓밟았던 박정희에 대해 '공칠과삼(功七過三)'으로 평가해준다.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을 공정하게 평가하려는 모습이 눈에 띈다.

"미국 동맹 약화는 대한민국의 재앙"

 그는, 나는 독선적인 사람이 아니며 누구보다 대화로 문제를 풀고자 하는 정치인이고 따라서 자기 진영(민주당)이 반대하는 세력과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고, 진보진영이 부정하고 싶어하는 과거사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인정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경제 정책에서도 새누리당과 차이가 없다. 그는 '모든 통제는 시장(市場) 친화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기업권력의 시장 왜곡을 바로잡고, 민주주의 정책으로 펼쳐야 한다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시장(市場)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정부의 규제 정책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은 '기업가의 도전정신이 이끄는 나라'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 지사가 26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군수들과 함께 "충남도가 기업인과 동반자가 되어 드리겠습니다"고 쓴 플래카드를 걸고 투자유치를 펼치는 장면은 이런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도지사 취임 초기엔 기업유치엔 소극적인 모습이었던 게 사실이다.

"기업가 정신이 이끄는 나라여야"

 그가 속한 민주당이 '시장(市場)'이나 '기업'과 거리를 두는 진보적인 정당은 아니지만 새누리당보다는 '좌표'가 왼쪽이란 점에서 안 지사의 주장은 민주당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저자가 누군지 모르고 읽는다면 영락없이 새누리당 정치인이 쓴 책이다.

 그의 책을 읽으면 '정말 안희정이 이런 정치인인가?' 하는 생각이 들 법하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둘 중 하나다. 내가 안 지사를 잘못 보았든지 안 지사의 책이 너무 '의도된 기술(記述)' 탓이든지. 전자라면 그에 대한 편견을 벗지 못함 때문일 테고 후자라면 안 지사가 자기에 대한 편견을 떨쳐 내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너무 각색한 탓일 게다.

그동안 그가 한 말이나 공사석에서 그를 만난 사람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이번 책에 소개된 '안희정의 생각'과 큰 차이가 없다. 그는 예의바른 사람이며 독선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도지사가 아니다. 결코 위험한 좌파 정치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책까지 내서 "난 위험한 좌파가 결코 아니오" "친노지만 그들과는 달리 나는 고집스런 사람이 아니오"라고 거듭해서 외치고 있는 것 같다. 책이 다룬 주제엔 국가경영에 관한 것들이 많다. "나는 위험한 대선후보가 아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그는 도지사 4년째가 되어 가는 시점에도 여전히 자신에 대한 편견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듯하다.

편견 깨려면 국회로 들어가 본격 정치해야

 하지만 책이나 말로서 편견을 다 깨기는 어렵다. 더구나 이 책은, 그가 잠재적 대선주자의 한 사람으로 낸 책이다. 책은 '안희정의 진심'이란 부제가 달려있지만, 정치적으로서 계산된 표현과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 안 지사는 "그럼, 내 속을 까뒤집을 수도 없고 어쩌란 말이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방법은 있다. '정치의 장(場)'에 본격 진입해야 한다. 도지사는 그만하고 국회로 가서 주요 국정현안마다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고 추진하면서 '정치인 안희정의 정체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치력도 키울 수 있는 방법이다. 요즘 조경태 최고위원은 민주당에서 인기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발언과 행동은 자신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안 지사 책을 오독한 게 아니라면, 안 지사도 조 의원만큼 당내에서 '튀는' 주장을 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안 지사가 조 의원처럼 할 수 있을까? 안 지사 책을 읽은 사람이라도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같지 않을 것이다. 책은 책이다. 정치인의 진심은 말이 아니라 그의 정책과 행동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다. 다만 안 지사의 말은 민주당 내 대선후보 경쟁자인 박원순 시장에겐 자극을 주었을지 모른다. 박 시장이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을 접고 좌표를 오른쪽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면서 안 지사 영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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