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의 고전(古典)에서 길을…] 137

<여설> 한자는 뜻글자로서 ‘만물의 이치’ ‘철학’ ‘마음 다스림’ 등의 뜻이 담겨 있다.
‘福’(복)자에 대해 살펴보겠다.
필자의 사견임을 전제로 한다.

? 福(복)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신(?)은 한(一)사람(口)마다 먹고살 밭(田)을 내려 주셨다.’
즉 ‘신은 인간을 이 세상에 내려 보낼 때 각자가 먹고 살 양식을 다 내려 주셨다.’라고 의미를 부여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누구나 자기가 먹고살 밥그릇은 갖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자식을 아무리 많이 낳아도 ‘걱정하지 마라 제 먹고살 밥그릇은 다 갖고 나왔으니까.’하고 말했다.

이처럼 하늘은 인간을 이 세상에 내려 보낼 때는 그에 따른 복(福)을 함께 내려 주셨는데 그 복의 크기는 다 다르게 내려 주신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발만한 큰 복을 내려 주셨는가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간장종지 만한 작은 복을 내려 주셨다.
사발만한 큰 복을 받거나 또는 간장 종지만 한 작은 복을 받거나 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 밖으로서 전적으로 하늘의 소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하늘이 내려주신 복을 인간 각자가 어떻게 받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노력하지 않아 평생 하늘이 내려준 복을 다 누리지 못하고 구차하게 사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하늘이 내려준 복 그릇이 작다고 차 버리고 더 큰 복 그릇에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은 파멸한다.

그러니까 자기 복 그릇만큼 채우며 산 사람, 다시 말해 자기에게 주어진 복만큼 누리며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웬만큼 세상이치에 달관한 사람이 아니면 자기 복만큼 누리며 살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이 내려준 자기 복 그릇의 크기는 헤아려 보지도 않고 무조건 큰 복 그릇을 누리려는 망상과 탐욕으로 파멸하게 되는 것이다.

하늘이 인간을 세상에 내려 보낼 때 함께 딸려 보낸 복 그릇을 다른 말로 분수(分數)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이 인간마다 내려준 복 그릇의 크기가 제각기 다 다르듯이 그 사람에게 정해진 분수 또한 다 다른 것이다.

인간은 하늘이 내려준 복 그릇의 크기에 맞게 자기의 삶을 담아서 살아야 하듯이 정해진 분수에 맞게 살아야 화를 당하지 않는다. 재앙은 넘치는 데에 비롯된다.
불이 넘쳐 화재를 당하고 물이 넘쳐 수재를 당하듯이 분수가 넘치면 인재(人災)를 당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불편한 진실이 있다.
물의 한계는 물이 다 없어지는 것이고 부(富)의 한계는 현재에 만족하는데 있다.
그러나 인간은 만족할 줄 모르다가 끝내는 제 몸을 망치고 만다.
어쩌면 이것이 한계이다.
즉 자기의 분수를 모르고 탐욕을 하다가 파멸한 뒤에야 자기 분수를 아는 것, 이것이 인간의 한계라 할 수 있다.

지나친 욕심으로 파멸한 뒤에 자기 한계 즉 분수를 알았다면 이미 때는 늦은 것, 그러므로 항상 살면서 하늘이 내려준 복 그릇의 크기 즉 자기 분수를 알며 사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이요 행복한 삶의 지름길인 것이다.

? 하늘이 준 복 의 크기만큼 사는 지혜, 분수에 넘치지 않게 사는 지혜, 그래서 행복한 인생을 사는 지혜는 여러 가지 많겠지만 인간을 파멸에 빠뜨리게 하는 재물욕, 권력욕, 명예욕을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자기 분수를 재물욕, 권력욕, 명예욕 등 물욕적인 젓에 빠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觀物外之物’(관물외지물)
즉 ‘사물 밖의 사물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아름다움과 독을 다 갖고 있는 독버섯처럼. 재물, 권력, 명예 역시 화려함과 독을 모두 갖고 있다.

사람에게 재물, 권력, 명예는 화려함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정도에 지나치면 그 화려함은 금새 무서운 독으로 변하여 사람을 파멸 시킨다.

그러므로 항상 ‘재물’밖의 감춰진 재물의 독성을 볼 줄 알아야 하고 ‘권력’밖의 감춰진 권력의 독성을 볼 줄 알아야 하고 ‘명예’밖의 감춰진 명예의 독성을 볼 줄 알아야 자기 분수를 지킬 수 있고 재물. 권력, 명예를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분수를 지켜 온전한 삶을 사는 지혜의 첫 걸음인 것이다.

? 思身後之身(사신후지신) 즉 ‘몸 밖의 몸,’을 생각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 ‘내 몸이 죽은 뒤에 올 평판을 염려하여 일이나 삶이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항상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 모두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한번뿐인 인생을 재물, 권력, 명예를 누리며 살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자칫 분수와 정도에 어긋난 탐욕을 하게 된다.

그러한 탐욕은 잠시 누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은 한순간 일뿐, 그 뒤에는 만고의 처량함이 닥쳐 올 것이다.
‘채근담’에서도 이와 같은 뜻으로 ‘도덕을 지키며 사는 자는 한때만 적막할 뿐이지만 권세에 아부하고 의지하며 사는 자는 만고에 처량하다.’했다.

? 그렇다, 하늘이 내려준 복 그릇 즉 분수와 정도(正道)에 맞게 사는 삶이 참된 삶이다. 행여나 지금의 내 삶이 분수와 정도에 어긋나고 있지는 않은지.

 

- (인문교양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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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충남 강사는 서예가이며 한학자인 일당(一棠)선생과 '정향'선생으로 부터 한문과 경서를 수학하였다. 현재 대전시민대학, 서구문화원  등 사회교육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 명심보감과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금강일보에 칼럼 ?김충남의 古典의 향기?을 연재하고 있다.

   김충남의 강의 일정

• 대전시민대학 (옛 충남도청)

   - (평일반)
          A반 (매주 화요일 14시 ~ 16시) 논어 + 명심보감
          B반 (매주 목요일 14시 ~ 16시) 대학 + 채근담 

   - (주말반)
          C반 (매주 일요일 14시 ~ 16시) 논어 + 명심보감

• 송촌서당 (매주 월, 수 10시 ~ 12시)

• 서구문화원 (매주 금 10시 ~ 1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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