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추천여행-경기도 양평군

설매재는 2013년 하반기 최고의 화제작인 영화 <관상>의 촬영지다. 내경(송강호 분)의 가족이 마음 편히 살던 시절이다. 집 앞 억새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근심이 사라진다. 가을 나들이엔 1,1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는 인근 용문사도 권한다. <관상>에 나오는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전후해 두 번이나 찾은 사찰이다.

내경의 집 앞마당에서 억새 사이로 바라본 주변 전경

첩첩산중 관상가를 찾아

11월이다. 남한강변에 바람이 제법 차다. 사방은 울긋불긋하다. 만추(晩秋)다. 산세가 어우러지니 완연하다. 특히 양평은 이름난 산이 많아 가을에 더 분주하다. 유명산과 용문산, 중미산 등이 조금씩 다른 매력을 뽐낸다. 그러고 보면 산에도 저마다 다른 상이 있다. 풍수지리란 자연의 관상이려나.
얼마 전 영화 <관상>이 큰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 영화로는 열 번째로 900만 관객을 동원했다.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도 돋보였지만 관상이라는 소재도 흥행에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 <관상>은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한다. 수양대군이 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사건이다. 그 역사의 중심에서 관상쟁이 김내경의 시선을 좇는다.

억새밭 한가운데 자리한 내경의 집

첫 장면은 기생 연홍(김혜수 분)이 내경을 찾아가는 길목이다. 내경은 초야에 숨어 지내는 무림고수처럼 첩첩산중에 산다. 역적의 집안이라는 요인도 있겠지만 제 관상을 이미 알고 숨어 사는 건 아니었을는지. 그럼에도 그 재주를 어찌할까. 사람들이 알음알음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다. 기생 연홍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내경의 재주를 이용해 큰돈을 벌어보려는 속셈이다. 장사꾼으로 위장해 찾지만 당대의 관상쟁이를 속일 수는 없다.

“도화 빛이 돌고 입술이 붉은 게 무당 끼가 도는데 무당 될 팔자는 아니고….”
내경의 집을 찾아가는 길의 가을 풍경이 언뜻언뜻 연홍의 붉은 입술을 닮았다. 유명산 자락에 해당하는 설매재 고갯길이다. 눈이 많이 내려도 매화가 피어난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1999년부터는 그 능선에 사설 휴양림도 운영 중이다. 통나무집과 오토캠핑장을 고루 갖춰 캠핑 마니아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휴양림 내에는 다모숲, 소서노의숲 등이 자리했다. 드라마 <다모>와 <주몽>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관상>의 촬영지는 설매재휴양림 입구를 지나쳐 배너미재까지 조금 더 굽이치며 올라간다. 고갯마루에 다다르면 ATV 대여점과 작은 컨테이너 매점이 있다. 매점 옆에는 산을 향해 길이 나 있고 차량차단기가 있다. 촬영지로 향하는 들머리다. 주변에 차를 대고 30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관상>에 나온 내경의 집이 보인다.

유명산 설매재 일대는 숨은 억새 명소다.

설매재 억새밭의 초가집

내경의 집으로 가는 임도 초입은 웃자란 나무들이 시야를 가린다. 간간이 어비산의 단풍이 들고나지만 만족할 정도는 아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아쉬움을 만회하듯 시원스런 풍경이 열린다. 길 왼쪽으로 용문산과 백운봉이 위용을 자랑한다. 가을을 실감할 만한 산이다. 그 아래는 남한강 줄기가 따른다. 숨을 고르듯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본다.

다시 먼데 단풍에서 돌아서면 슬슬 억새의 하늘거림이다. 내경의 집이 멀지 않았다는 증표다. 곧 첫 번째 갈림길이다. 삼거리에 B, D코스와 왕남 코스라는 표지판이 섰다. 삼거리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거리다. 표지판 뒤에 샛길이 하나 더 있다. 왕남 코스를 택하면 조금 더 주변 풍광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특히 단풍 든 가을 나무 한 그루가 섰는데 경사진 억새밭과 인근 산들의 너울거림이 인상 깊다. 그 잔상을 안고 조금 더 걸어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 오르막으로 살짝 고개를 넘으면 내경의 집 뒷문이다. 영화에서 연홍이 찾아 오르던 길은 B, D코스 표지판 바로 뒤쪽의 왼쪽 샛길이다. 억새밭이 보이고 그 고갯마루에 내경의 집이 어른거린다.

내경의 집은 능선의 평지 위에 지어졌다. 너와를 올린 집과 초가를 올린 집 두 채가 ‘ㄴ’자로 자리했다. 그 품안은 마당이다. 연홍에게서 돈을 받은 내경과 팽헌(조정석 분)이 티격태격 닭을 삶던 장면이 어린다. 한쪽에 그 흔적처럼 황토로 만든 작은 아궁이가 있다. 뒷문으로는 능선 따라 억새가 오르고 앞문으로는 가을의 원경이 펼쳐진다. 예전에는 드라마 <바람의 화원> 촬영지로 쓰였다. 김홍도와 신윤복이 만난 집이다. 최근에는 영화 <관상>을 지나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의 촬영지로도 쓰였다. 현대 문명이 근접하지 않으니 사극 촬영지로 그만이다.

가을 단풍은 때때로 한 그루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설매재 억새, 용문사 은행나무

내경의 집 일대는 관상을 보기 위해 찾았던 이들이 그랬듯 알음알음 찾아드는 억새 명소다. 한때는 화전민이 땅을 일구기도 했다. 더 옛날에는 말을 키우던 마장도 있었다. 유명산의 본래 이름이 마유산인 연유다. 그래서인지 인적이 드물고 한적하다. 주변 경치를 벗 삼아 가을의 정취를 누릴 만하다.
내친김에 좀 더 걸음을 낼 수도 있다. 임도를 따라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멀지 않다.

활공장에서는 억새밭과 어울린 소나무 다섯 그루가 보이는데 이 또한 유명한 촬영지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장생(감우성 분)과 공길(이준기 분)이 마지막 놀음판을 벌이던 장이다. 활공장을 지나서는 유명산 정상까지 이어진다. 유명산은 보통 유명산휴양림 쪽에서 오르는 까닭에 <관상> 촬영지의 억새밭으로 오르는 길은 모르는 이가 많다.

화전민들은 널빤지로 지붕을 인 너와집을 짓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억새보다 단풍이 그립다면 유명산보다는 용문산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게 낫다. 설매재에서 용문산까지는 차로 30분 남짓(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벅차다). 설매재에 억새가 있다면 용문산은 단풍이다. 그중 으뜸은 용문사의 1,100년 된 은행나무다. 그 사실을 예고하듯 용문산 관광지에 가까워지면 은행나무 가로수가 반긴다. 몇몇은 아직 푸른색을 품었지만 샛노란 금빛이 가을의 절정을 알린다. 용문산 입구까지 굽이치며 이어지는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용문산 주차장에서 숲길 입구까지도 은행나무 가로수가 길게 늘어섰다. 은행잎이 떨어져 노란 길이 한 편의 동화 같다. 길가의 관상쟁이가 행인들을 붙든다. <관상>의 촬영지를 지나온 터라 괜스레 마음이 동한다. 상가 주변으로 주홍빛의 튤립나무 단풍도 아름답다. 가장 탐스런 단풍 가운데 하나지만 비교적 덜 알려진 나무다.  

바람도 고개 숙여 지나는 1,100년 고목

내경의 집에서 억새밭 사이로 걸어가면 패러글라이딩 활공장과 유명산으로 이어진다.

용문사까지는 숲길을 따라 1km 정도를 걷는다. 계곡이 열리자 은행나무 대신 붉은 계열의 단풍이 속속 등장한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에 창건했다. <관상>에 등장하는 수양대군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는 서른 살(1447년)에 세종의 명을 받아 어머니 소헌왕후 심 씨를 위해 보전을 지으러 용문사를 처음 찾았다. 왕위에 오르고 3년 뒤 마흔 살이 됐을 때는 사찰의 중수를 위해 한 차례 더 용문사를 방문했다. 단종을 폐위한 계유정난(1453)은 그 사이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 모든 나날을 묵도하듯 지켜본 것이 용문사 은행나무다. 그 그늘 아래에서 <관상>에 나온 내경의 마지막 대사가 떠오른다.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은 보지 못했소. …바람을 봐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당신들은 그저 높은 파도를 잠시 탔을 뿐이오. …높이 오는 파도가 언젠간 부서지듯이 말이오.”

용문사 은행나무는 통일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고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심었다고 전한다. 그 역사 또한 내경의 대사와 조응한다. 의상대사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 은행나무가 됐다고도 하고,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소리를 냈다는 전설도 있다. 정미의병(1907) 항쟁 때는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은행나무만 타지 않았다고도 한다.

용문산관광단지로 들어서는 아스팔트 도로를 은행나무가 샛노랗게 물들인다.

은행나무를 마주하면 알 수 있다. 어지간한 간섭에 흔들릴 나무가 아니다. 바람도 고개 숙여 지날 위엄이다. 수령이 족히 1,100년에 달하니 그럴 만도 하다. 높이가 약 42m, 밑동의 둘레가 15.2m에 달한다. 우리나라 최고령이자 가장 큰 은행나무다. 계단을 올라 대웅전 마당에서 마주해도 나무의 키를 넘지 못한다. 그러니 용문사는 1,100년 은행나무만으로도 한 번쯤 걸음을 내봄 직하다.

가을 단풍이 어우러진 용문교

올해는 11월 둘째 주말 정도에 단풍이 가득 찰 듯하다. 11월 첫 주말에는 푸름이 짙어 용문사를 찾은 이들이 아쉬움을 삼켰다. 반대로 용문산 단풍은 이를수록 화려할 것이다. 10월 말에서 11월 초를 지나며 절정을 맞았다. 정상인 가섭봉이 버겁다면 용문사에서 상원사까지 가벼운 산행도 나쁘지 않다. 그나마도 벅차거든 내경의 아들 진형의 말을 곱씹어도 좋겠다. 그는 과거에 급제한 후 가장 힘들었던 일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운명에 체념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물며 정해진 행로를 따라 걷는 한두 시간 남짓의 산행이야 <자료제공 한국관광공사>

   
수령 1,100년을 자랑하는 용문사 은행나무

여행정보

설매재(내경의 집) :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산29-1
설매재휴양림 :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산29-21, 031-772-5965, www.snrf.co.kr
용문사 : 경기도 양평군 신점리 625, 031-773-3797, www.yongmunsa.org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설매재(내경의 집) : 중부고속도로 하남IC → 팔당대교 → 6번 국도 양평 방면 → 고읍교차로 청평, 설악 방면 → 백현사거리 → 설매재휴양림 → 배너미재
용문사 : 중부고속도로 하남IC → 팔당대교 → 6번 국도 양평 방면 → 마룡교차로 → 용문사


* 대중교통

설매재(내경의집) : 양평터미널에서 6-3번 버스를 타고 용천3리 마을회관 하차. 배너미재까지 도보 5km 이동. 양평역(또는 양평터미널)에서 택시 이용
용문사 : 용문터미널이나 용문역에서 7, 7-4, 7-8번 버스를 타고 용문사 하차


2.주변 음식점

용문산농장쌈밥마을 : 쌈밥정식, 제육쌈밥 / 양평군 용문면 용문산로 176 / 031-771-8389
마당 : 곤드레밥 / 양평군 용문면 용문산로 239 / 031-775-0311 / korean.visitkorea.or.kr
옥천순두부 : 순두부 / 양평군 옥천면 신복길 124 / 031-774-4369 / korean.visitkorea.or.kr


3.숙소

용문사 템플스테이 : 양평군 신점리 625 / 031-775-5797 / www.yongmunsa.org
설매재휴양림 :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산29-21 / 031-772-5965 / www.snrf.co.kr
양평밸리 : 양평군 양평읍 백안길60번길 14 / 031-774-3000 / 굿스테이 / korean.visitkore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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