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영관] 전 엑스포과학공원 상임임사

  김영관 전 엑스포과학공원 상임이사  
김영관 전 엑스포과학공원 상임이사

1년 전 대선 가도는 보수와 진보, 좌와 우,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의 날선 대립으로 팽팽한 긴장감 속에 어느 쪽의 승리일지 가늠키 쉽지 않은 진영 논리 속에서 진행되었다. 평행선으로 치닫던 양 진영의 목소리가 합창으로 바뀐 것은 안 철수가 내세운 새 정치 쓰나미에 밀려나면서 발생했다. 여야가 국회의원 기득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공약은, 지겨운 공방전 정치 지형에 마침표를 찍는 듯 보였다.

사실 국회의원 특권은 200여 부문에 달한다. 군에서 대령 계급장과 준장 계급장의 예우 간격은 하늘과 땅 차이로 비유된다. 별을 따면 60 가지의 대우가 바꿔지는 것에 비하면, 별보다 3배를 훌쩍 넘어서고, 일반 국민에 비하면 '설국열차'의 맨 앞 칸을 차지한 먹이사슬 최상위 지위를 누리고 있다.

먹이사슬 최상위 지위의 국회의원들

애국의 선두에서야 할 국민의 대표들이 민방위, 예비군 열외는 물론이고 국회 본청에 깔려 있는 레드 카펫을 국회의원만 밟고 다닌다. 비서와 직원은 다른 길로 다니고, 심지어 국회의원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어 국회의원만 탄다. KTX도 무료다. 해외여행 시엔 항공권 1등 좌석에 공항 심사도 별도 예외이며 VIP룸과 전용 주차장이 제공된다.

이뿐이겠는가? 국회의원 1인당 9명의 직원 채용이 가능하고, 1년 약 4억원 정도의 보수가 책정된다. (참고로 친인척 또는 아무나의 이름으로 보좌관, 비서관 세워 놓고 국민 혈세 챙기는 의원이 상당수라는 현실....?!) 1년에 2번의 해외 시찰과 국회의원직 그만 둔 뒤에도 죽을때까지 매월 120만원의 연금이 지급된다.

국민의 허탈과 박탈감을 자아낼 특권의 정점은 매월 야식비 59만원, 업무용 택시비 100만원, 명절 휴가비 775만원 등 1인당 6억원의 예산 투입이다. 300명 국회의원이면 매년 1800억, 4년 임기로 따지면 7200억원의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

작년 이맘때쯤 거센 국민의 여망은 기존 정치권의 환골탈태였으며, 새 정치 구현이란 막연한 (안철수의 새 정치 언급은 뚜렷한 명세서가 없었지만 국민의 호응도는 높았음) 구호에 당황한 양쪽 대선 캠프의 해법 중 하나가 국회의원 기득권 내려놓기였다.

잊어버리는 데 익숙한 국민은 자기가 당연히 지키고 가져야 할 헌법적 권리와 가치마저 상실하기 마련이다. 1979년 민주화의 시대 정신이 전두환의 등장으로 매몰된 것도,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한 체육관 선거의 유신시대에도 국민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시대의 주어로써 박정희와 전두환을 거론한다면, 국민은 당시에 무얼 함구하고 비겁하게 관망하며 동행 할 수밖에 없었다고 슬그머니 빠질 수 있는 것인가?

특권 내려놓겠다고 했지만 달라진 것 없어

국민이 있기에 국가도 있고 국회의원도 존재한다. 직접 민주주의의 한계점 때문에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한 대표성 간접 민주주의의 헌법 기관으로 국회의원의 지위가 부여되는 것이다. 대선의 열기가 한창일 때 앞 다퉈 특권 내려놓기를 약속했던 1년 전이나 현재까지 국회의원의 특권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작년 12월 경쟁적으로 정치개혁을 부르짖을 때, 개혁의 핵심은 국회의원의 특권 폐지였다. 그러나 말 잔치 였고, 오히려 금년 11월 2일에 마감한 국정감사 수준이나 국회 특위 5개월간에 회의 한번하고 3077만원의 거액 활동비를 타내는 (민간인 불법시찰 조사 특위) 파렴치도 여전하다.

국정 감사나 예산안 심사를 앞두고 줄줄이 몰아서 출판 기념회를 여는 갑(甲)의 편법 특권은 더욱 심해졌고, 628개의 피감기관과 예산 관련 부서와 연관 업체는 을(乙)로써의 눈도장 찍기 행렬이 유별났다는 보도이다.

국회의원 세비 30% 삭감안도 휴지조각으로

현재까지 개선된 조치는 국회폭력 처벌 강화, 국회의원 겸직 금지, 헌정회 연로회원 지원금 개선의 세 가지뿐이고, 세비 30% 삭감안은 대선이 끝나자마자 휴지 조각이 돼버렸다. 삭감은커녕 18대보다 20% 늘어난 액수로 책정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경제적 수입 특혜와 불체포 특권에 관한 한 한치의 수치심도 없이 '무노동 무임금'의 상설 국회는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대선을 코앞에 둔 작년 12월 3일, 민주당 의원 전원이 세비 30%삭감 법안에 서명하자, 3일 뒤 새누리당 이 한구 원내대표가 즉시 실천하겠다고 기자 회견을 한다. 새누리당은 한 수 더 떠 '무노동 무임금'을 정치 쇄신 특위에서 합의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1987년 처음 실시된 국정감사는 올해 들어 26년째 이어지는 국정 전반을 감사하는 입법부의 행정부 감시이자 견제이고, 국민을 대신하여 정부의 예산 낭비를 지적하고 국기 문란을 점검하는 중차대한 국회의원의 임무다.

현실은 본질과는 달리 일년 내내 댓글과 NLL 공방으로 장외로만 돌다가 무려 628개의 피감 기관을 20일 안에 (휴일 빼면 18일) 벼락치기 감사로 끝내고 만 것이다. 노련한 공무원들은 피감기관만 넘어가면 된다는 게 상식화 되었고, 피감 정답 매뉴얼이 등장한 건 오래 전의 일이다.

목소리 크게 내고, 기사 거리 되는 것만 들춰내기 바쁜 국회의원들은 국감의 알짜배기는 제쳐놓고, 국감 맞춰 출판회 하고, 불요 불급한 민간기업까지 피감기관으로 지정하여 합법적 후원금을 은근히 강제한다.

현실의 관행이다. 그러니 '무노동 무임금'에 끄덕할 리 없고 요지부동이다. '상설 국감'의 시급함이 논제로 숱하게 제기되어도 무반응이다.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해야 성적이 오르는 법인데, 20일간 벼락공부 해봐야 피감자들의 비웃음거리만 되는 게 의원들의 존재감인가? 자기 혐오적 자학적 권위를 스스로 형성하고 있다.

실제 국감의 증인들 태도를 TV에서 흔히 목격한다. 미래 창조 과학 방송 통신 위원회 국감에서 "법인 카드 어디 썼나"라고 다그치는 야당 의원에게 방문진 이사장은 "내 동선이 파악되면 업무에 지장을 받아 밝힐 수 없다."라고 받아친다. 책임 떠 넘기기, 뒤에서 비웃기, 대들고 허위 답변이 다반사다. 국회의원들을 목청만 높은 비 전문가로 가볍게 여기는 장면들이다.

상설 국감을 채택하고 있는 영국과 미국처럼 국회는 항상 열려 있고, 상임위를 무슨 경력 관리용이 아닌 전문성을 가진 의원들로 배치하고 키워내야 한다. 국회의원 스스로 국감을 특권 행사 기간이라고 여기는 관성을 타파하고 '유노동 유임금'의 상시 국감으로 만들면 된다. 여야가 맞대고 '국회법'과 '국정 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의 일부를 수정 보완하면 된다.

스웨덴 국회의원은 회기중 결근하면 세비 깎여

기득권 내려놓기를 약속하고, 비 상설 특위를 8개나 설치하여 6개월 활동비 2500만~3077만원 까지 활동비를 받는 작태를 온 국민이 알아차릴까 무섭다. 200여 가지의 특혜를 한꺼번에 내리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여야가 요란 떨며 약속한 세비 삭감, 면책 특권, 기초자치 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 공천체 폐지, 무노동 무임금 실천을 현실화시키라는 것이다.

스웨덴 국회의원은 관용차나 운전기사가 없다. 대부분이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하고, 국회 회기중 결근하면 그만큼 세비가 깎인다. 프랑스도 폴란드도 불출석 횟수에 따라 세비를 삭감한다.

정쟁으로 세월 보내는 국회,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특권에는 동침하는 국회를 국민들이 2016년 4월 20대 총선까지 방관만 하겠는가? '꼬리 칸'에 갇혀 아우성치는 대다수 국민앞에 정중히 문을 개방하고, 특권없는 새로운 정치판으로 더불어 동행하는 국회를 상상해 본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