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의 고전(古典)에서 길을…] 136

<여설> 한자는 뜻글자로써 ‘만물의 이치’ ‘철학’ ‘마음 다스림’ 등의 뜻이 담겨 있다.
‘惡’(악)자에 대해 살펴보겠다.
필자의 사견임을 전제로 한다.

? 惡(악)자를 파자(破字)해보면 亞(버금 아)자와 心(마음 심)자로 되어있다.
이것을 풀이해보면 ‘인간의 마음에는 선(善)한 마음 버금(亞)가는 또 하나의 마음(心)이 있으니 이것이 악(惡)이다.’라고 풀이 해 볼 수 있다.
즉 인간이 마음에는 선(善)과 악(惡)이 함께 존재한다는 뜻이다.

? 탈무드에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지구를 휩쓴 대 홍수 때 모든 동물이 노아의 방주(方舟)를 찾아왔다.
선(善)도 서둘러 달려 왔다.

그러자 ‘노아’가 “이배는 짝이 있는 것만 탈수 있네.”하면서 ‘선’(善)을 못 타게 했다.
그러자 ‘선’은 다시 숲속으로 돌아가 짝이 될 상대인 ‘악’(惡)을 데리고 방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선(善)이 있는 곳에 악(惡)이 있게 되었다 한다.

? 맹자는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착한 본성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60년 뒤에 태어난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한 것이 아니라 악한 것이며 단지 스승의 교화나 규범을 통하여 선하게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 인간이 선하게 되는 것은 타고 날 때부터의 선본성(善本性)에 의함이 아니라 인위적(人爲的)인 것이라는 말이다.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의 본성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이기적이고 질투와 미워함의 악한 본성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에게 과자를 주면 아이들은 양보함이 없이 서로 빼앗아 먹으려고 다투는데 이것이 바로 이기적 본성이라는 것이다.
양보하는 선한 마음은 부모나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 길러진다는 것이다.

이로써 본다면 인간의 본성은 악한 것이 분명하며 선함은 인위(人爲)의 결과라고 하는 것이 순자의 ‘성악설’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서로 상반된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한 찬반논란은 지금까지 계속 되어 오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에는 선과 악의 양면을 다 지니고 있다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마음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면서 서로 마음을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할 수 있다.

? 그러면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함께 공존하면서 마음을 차지하려고 다투고 있는 선과 악 중에 어느 것이 더 강할까’하는 것이다.
콩밭에 비유해 보겠다.

콩밭에는 콩과 잡초가 함께 자란다.
만일 번식력이 강한 잡초를 하루라도 뽑아주지 않으면 콩은 잡초에 치여 다 죽고 만다.

비유하건데 콩밭은 ‘마음’이다.
콩은 ‘선’(善)이고 번식력이 강한 잡초는 ‘악’(惡)이다. 또한 잡초가 콩보다 번식력이 강하듯이 인간의 마음에 있는 선과 악 중에 악의 본성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농부가 하루라도 잡초를 뽑아주지 않으면 콩이 다 죽듯이 우리 인간의 마음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악본성을 한시라도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에 자리 잡고 있던 선은 악에 의해 쫓겨나고 악이 마음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잡초처럼 번식력이 강한 악(惡)이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선(善)에 대한 화두를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장자’는 이러한 뜻으로 一日不念善 諸惡 皆自起(일일불념선 제악 개자기) 즉 ‘하루라도 선을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악이 저절로 일어 나니라.’하였다.

다시 말해 인간은 ‘선하게 살겠다.’는 의지 즉 ‘양심을 지키며 살겠다.’는 의지가 사라지면 결국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그러므로 악을 막는 방법은 ‘늘 선하게 살아야겠다.’ 즉 ‘양심을 지키며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악한 일은 대체적으로 하기가 쉽다.

그러나 착한 일은 의지가 없으면 못한다.
예를 들어 누구나 손에 들고 있는 쓰레기는 편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하여 아무데나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만일 그 충동을 이기지 못하였다면 선의 마음 즉 양심을 저버리고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선한 마음 즉 양심이 발동하였다면 수고롭더라도 쓰레기통에 다 버렸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은 조금만 방심해도 악의 마음에 의하여 선의 마음 즉 양심을 뺏기게 되는 것이다.
선의 마음 즉 양심이란 무자기(毋自欺) 즉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만약 단 1%라도 자기 자신을 속이는 마음이 있다면 그 1%의 속이는 마음이 나머지 99%의 양심을 다 잡아 먹어 결국은 양심을 저버리고 不善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정도는 괜찮겠지.’ ‘딱 한번 뿐인데 뭘’ 이러한 1%의 양심을 저버리는 마음이 결국은 음주운전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악한 마음은 처음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단 1%의 ‘자기를 속이는 마음’ 즉 ‘양심을 저버리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 그렇다, 내 마음을 악에 물들게 하는 단 1%의 양심을 저버리는 마음, 나를 속이는 마음을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신독(愼獨) 즉 홀로 있을 때 그 마음가짐을 더욱 삼가고 조심해야 할 것이다.

- (인문교양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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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충남 강사는 서예가이며 한학자인 일당(一棠)선생과 '정향'선생으로 부터 한문과 경서를 수학하였다. 현재 대전시민대학, 서구문화원  등 사회교육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 명심보감과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금강일보에 칼럼 ?김충남의 古典의 향기?을 연재하고 있다.

   김충남의 강의 일정

• 대전시민대학 (옛 충남도청)

   - (평일반)
          A반 (매주 화요일 14시 ~ 16시) 논어 + 명심보감
          B반 (매주 목요일 14시 ~ 16시) 대학 + 채근담 

   - (주말반)
          C반 (매주 일요일 14시 ~ 16시) 논어 + 명심보감

• 송촌서당 (매주 월, 수 10시 ~ 1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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