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편집국장  
 김학용 편집국장

미래부 장관이 충청권 새누리당 국회의원들 앞에 사슴 한 마리를 갖다 놓고 물었다. “여러분, 이거 말(馬) 맞죠?” 이들 국회의원들은 장관에게 “도대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며 호통치는 시늉도 하더니 상황 파악을 했는지 이내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이게 요즘 상황이다.

과학벨트 논란이 거듭되고 있는 데도 새누리당 충청권 국회의원들은 말이 없다. 과학벨트를 반토막 내는 ‘수정안’을 ‘원안’보다 낫다고 믿기로 한 것 같다. 정부가 전체 사업비에서 불과 5% 부족한 예산을 핑계로 사업장(場)을 둘로 쪼개겠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수정안의 타당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충청권 의원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조고(趙高)가 살아와서 사슴을 말이라고 한다면..

환관 조고(趙高)가 살아와서 충청권 의원들에게 사슴을 내놓고 말이라고 불러도 ‘그게 왜 말이냐’며 되물을 사람이 없어 보인다. 과학벨트가 반토막 나는 것보다 어쩌면 이게 더 심각한 문제다. 이게 더 우리의 미래를 더 어둡게 한다. 과학벨트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 분야에 국한된다. ‘말못하는 국회의원’의 문제점은 그보다 훨씬 크다. 국가의 대소사 가운데 정치인들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없으니 말이다.

정치인에겐 말이 권리이기도 하지만 의무기도 하다. 국회의원한테는 직무상 행한 말과 행동에 선 책임을 묻지 않는 면책특권이 주어진다. 이런 특권은 말을 할 ‘권리’로서보다는 국민과 국가를 위해선 필요한 말을 꼭 해야 한다는 ‘의무’로서의 부여되었을 것이다.

사실(事實) 대로 말할 정치인의 권리와 의무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특히 정치인들에겐 중요 현안에 대해 사실(事實)대로 말할 의무가 있다. 여기에는 때론 용기가 필요하다. ‘그건 아니다’라고 말했다가 자리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다. 지금 충청권 의원들이 침묵하는 이유로 보인다.

미래부 장관은 분명 사슴을 갖다 놓고 말이라고 부르고 있다. 수정안을 내밀면서 원안보다 좋다고 말하고 있다. 반토막 짜리 수정안을 내밀면서 원안보다 좋지 않으냐고 말하고 있다. 충청권 주민들에 대해선 이건 제안이 아니라 능욕과 우롱에 가깝다.

그런데도 충청권 국회의원들은 그런 과학벨트 수정안에 동의했다. 미래부 장관으로부터 수정안에 대해 설명을 들은 직후 찬성 입장을 내놨다. 집 화장실을 좀 바꾸는 경우에도 며칠은 고민한다. 그런데 충청권 의원들은 5조원 짜리 과학벨트를 쪼개자는 제안을 즉석에서 수락했다.

과학벨트 ‘원안 불가 합창’에 동참한 새누리 의원들?

그럴 만한 곡절이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미래부 설명이 있기 전에 이런 정보가 전달되었는지도 모른다. “미래부 장관이 사슴을 들고 와서 말이라고 불러도 되묻지 마라. 그건 ‘윗분’의 생각이시다. 그분의 ‘레이저광선’을 대할 자신이 있느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월 청와대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과학벨트는 정부가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지침’을 내린 이후 정부와 여당에서 ‘과학벨트 원안 불가(不可)’ 합창이 이어졌다. “원안대로 하려면 대전시가 3000억원을 내라”는 현실성 없는 요구를 거듭했다. 이에 대해 처음에는 좀 반발하는 듯 하던 충청권 국회의원들도 ‘합창 대열’에 참여하기로 한 것 같다.

미래부 장관을 면담한 이후 충청권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과학벨트 언급은 자취를 감췄다. 한때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던 중진 의원이든, ‘큰 꿈’을 꾸고 있다는 또 다른 중진 의원이든, 한껏 목소리를 높이는 것 같던 소장파 의원이든 과학벨트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수정안이 ‘현실적 대안’이라도 침묵해선 안되는 이유

이들의 침묵 가운데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배제하기는 어렵다. 가령 어차피 ‘박근혜 시대’가 된 이상 박근혜 정부가 원하는 쪽으로 맞춰서 따라 가는 것이 현실적으론 더 낫지 않느냐고 반문하면 아니라고 딱 잘라 반박하긴 힘들다. 당초 계획대로 10개를 다 얻기 어려워 보이니 5개라도 건지는 수정안에 도장을 찍자는 주장도 가능은 하다. 많은 의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이들의 침묵은 비굴하다. 충청권 의원들은 미래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좋다, 과학벨트를 새 정부의 ‘창조경제’ 틀에 맞춰 바꾸겠다면 동의할 테니 말도 안 되는 5% 부족 핑계는 대지 마라. 대신 과학벨트 변경 계획 훼손을 최소화해서 시민들을 설득해보자!”

이렇게 해서 정부로부터 답을 얻어내고 거기에서 나오는 대안을 가지고 시민들을 설득해야 옳다. 충청권을 우롱하는 수정안에 아무 대꾸도 못하고 있는 건 장관이 사슴을 말로 부르고 있는 데도 태연한 것과 같다. 비굴한 침묵이다.

“No”라고 말하는 충청 새누리의원 한 명도 없어

충청권 국회의원들의 과학벨트 침묵은 ‘현실적 선택’의 뜻은 아니다. ‘박근혜의 시대’를 거스르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충청권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미래부 장관은 을(乙)일지 모르나 과학벨트를 함부로 추진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린 박 대통령은 임기가 창창한 갑(甲)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국회의원은 말로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말은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꼭 해야 한다. 과학벨트 문제는 국가적으로도 지역적으로 중요한 현안이다. 그런데도 지금 충청권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입을 닫고 있다. 비굴한 침묵이다. 새누리당 충청권 국회의원 14 명 중 “No!”라고 외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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