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편집국장  
 김학용 편집국장

과학자 교수 의사 변호사 등은 전문가다. 그러나 전문가가 다 지식인은 아니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모든 전문가는 ‘잠재적인 지식인’일 뿐이다. 그럼 전문가는 어떻게 지식인이 되는가?

사르트르에 따르면, 지식인이란 지적 능력에 관계되는 일(정밀과학 응용과학 의학 문학 등)로 명성을 얻은 뒤 이를 이용하여 자기 영역을 벗어나고, 보편적이지만 독단적인 개념(명확하건 불명확하건, 도덕주의건 마르크시즘이건 간에)을 내세워 사회의 기존질서를 비판하려 하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과학자가 핵무기 개발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을 경우는 그저 학자일 뿐이다. 그 학자가 핵무기의 가공할 만한 위력에 두려움을 느끼고 핵무기 사용을 억제하기 위한 여론 조성을 위해 선언문을 작성하고 서명하였을 경우 비로소 지식인이 된다.

과학벨트 문제에 대한 대덕연구단지 과학자들의 태도 

핵개발 문제처럼 ‘지구적인 이슈’에 대한 입장 천명만이 지식인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작은 문제라도 전문가로서 독립적이고 양심적인 발언을 할 수 있다면 사르트르의 지식인 요건에는 부합한다 할 것이다.

과학벨트 문제에 대한, 이른바 전문가들의 태도를 보면 대덕연구단지에서 지식인을 찾기는 애초에 글렀다. 미래부가 과학벨트 수정안이라는 것을 대전시에 보낸 뒤 염홍철 시장은 대덕연구단지의 전현직 원로과학자(과학인)들을 불러 간담회를 가졌다. 미래부의 수정안을 대전시가 어떻게 받아들여 하는지에 대해 의견을 듣기 위해 이름깨나 알려진 과학인을 부른 것이다.

이 자리에선 “미래부의 제안을 어서 빨리 받아들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반대 의견은 없었다. 조건을 붙인 찬성도 없었다. 오히려 대전시장이 수정안의 수용 조건으로 내건 4개 조항에 대해서도 고집하지 말고 수정안을 받아들이라는 의견까지 나왔다. “미래부의 수정안은 대전에 대한 특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전시는 6월12일 대전시청 대회의실에서 미래창조과학부의 기초과학연구원 엑스포과학공원 입주 제안에 관한 '과학기술위원회 임시회'를 열어 과학계 의견을 들었다.

정부안(案)에 찬성의 박수만 치는 전문가들

정부 정책에 반대 입장을 보여야만 지식인인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미래부의 수정안이 원안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정부가 순전히 전체 예산의 5% 정도에 불과한 부지매입비 때문에 기본계획까지 확 바꿔 과학벨트의 핵심시설 절반을 과학공원으로 옮기겠다는, 이해할 수 없는 계획 변경의 진짜 이유를 따져묻는 과학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니 말이 되는가?

만일 이들 과학자에게 정부가 공기 좋은 둔곡지구(당초 과학벨트 예정지)에 10억원씩 들여 100평짜리 전원주택 한 채씩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다가 순전히 5천만원(5%)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주택의 50평은 도심에 가까운 과학공원에다 지어야겠다’고 말을 바꾼다면, 설사 수정안이 좋아 보여도 무슨 꿍꿍이 속인가 하여 그 내막을 알아보고 따져볼 것이다. 그러나 그날 과학벨트 간담회에서 연구단지 과학자들은 누구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모두들 찬성의 박수만 쳤다.

지식인 못되면 과학자가 아닌 연구직 공무원 불과

이런 과학자들은 사르트르의 지식인과는 거리가 멀다. 노벨상급 과학자를 유치한다는 국가적인 과학벨트 사업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 5%에 불과한 부지매입비 부족은 진짜 이유는 아닌 게 분명함 - 송두리째 뒤집히는 데도 그 연유조차 캐묻지 못하는 과학자라면 아무리 원로 소리를 들어도 지식인은 아니다. 그저 연구직 공무원의 한 명일 뿐이다.

한심한 전문가들은 대덕연구단지 밖에도 있다. 지난 일요일 아침 방송된 대전KBS의 ‘과학벨트 토론’에는 과학자이기도 한 대학교수를 포함, 교수 3명이 나왔다. 그 중 한 명만 미래부 수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고, 나머지 2명은 어중간한 입장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찬성론자가 분명했다. 찬성론자들은 “과학벨트는 하루빨리 추진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맞는 말이지만 정부의 수정안은 빨리 추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도 안 되는 5% 때문인 데도 이에 대해선 의심이 없었다. 

과학자든 교수든 진정한 찬성론자라기보다는 ‘정부에 대한 반대가 어려운 사람들’로 보인다. 권력에 대한 비판이 불가능한 사람들 같다. 대덕연구단지의 한 관계자는 “연구단지 기관장이나 원로들이 국가 정책에 대놓고 비판하는 사례는 없었다”고 했다. 정부 비판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사르트르 “‘가치있는 반대’ 못하면 지식인 아니다”

사르트르는 전문가가 지식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로 바로 그 점을 지적한다. “전문가는 권력층에 의하여 ‘가치 있는 부정적(否定的) 자세’의 포기를 강요당하기도 한다. 그는 또 스스로 이의(異議) 제기의 권한을 내던져 버리기도 하는데 전문가로서의 기능을 생각하면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경우 우리는 그를 ‘지식인이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흔히들 대전은 전문지식인들이 가장 많은 도시라고 한다. 연구단지 덕분에 전문가 비율로는 가장 높고, 숫자로 쳐도 서울 다음일 것이다. 그러나 지식인이 못 되는 전문가들이라면 국가와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이번 과학벨트 문제를 겪으면서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삼척동자의 셈법으로도 따져 물어야 될 국가적 사업에 명색이 과학자 교수라는 사람들까지 박수나 쳐대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니 한숨이 나왔다.

과학벨트 망조로 가면 과학자들도 책임 있어

과학벨트 수정안이 정말 현실화된다면, 그래서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추진돼야 할 과학벨트가 망조의 길로 간다면, 영혼 없는 이들 과학자와 교수들의 책임도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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