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의 고전(古典)에서 길을…] 116

<원문> 祭如在(제여재) 祭神如在 (제신여재)                               - 논어 팔일편 -

<풀이> 공자께서는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는 바로 앞에 조상이 계신 듯이 하셨고
              천지(天地)의 신(神)께 제사 지낼 때는 신령이 앞에 계신 듯 하셨다.

<여설> 위의 문장은 공자의 제자가 스승인 공자의 제사지내는 모습을 보고 기술한 내용의 일부이다.
제사란 조상신이나 천지신을 만나고, 보본반시(報本反始), 사신치복(事神致福)하는 의식(儀式)이라 할 수 있다.

? ‘보본반시’(報本反始)란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로서 인간의 근본인 천지(天地)와 선조의 은혜에 보답하고 처음 즉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우리가 고향을 찾는것도 근본을 잊지않고 내가 태어나고 부모님이 계신곳 그 처음을 돌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은 천지(天地)에서 왔다가 다시 천지(天地)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나를 태어나게 한 천지(天地) 그리고 내가 다시 돌아갈 천지(天地)의 은혜에 항상 감사하고 공경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 ‘사신치복’事神致福)은 ‘천지신이나 조상신의 제사를 잘 받들고 복을 내려 받는다.’는 뜻이다.
이 모두를 총합해 보면 제사의 의미와 목적은 조상신이나 전지신을 받들고 그 은혜에 감사하고 공경하는 의식(儀式)을 행하고 그리하여 복(福)을 내려 받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이러한 제사의 관건은 조상신이나 천지신의 감응(感應)이다.
그래서 예부터 사람들은 신령이 감응하도록 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사와 같은 의례의식을 행하여 왔다.
그런데 거기에는 반드시 정성이 깃 들여 있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는 마치 조상이 살아서 앞에 계신 듯이 공경의 마음으로 정성을 다 하였고 산신(山神)께 제사지낼 때는 산신(山神)이 임한 듯이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신 것이다.

‘주자’도 ‘귀신의 이치는 마음의 이치다.’ 즉 자손의 정성이 있으면 조상의 신이 이르고 정성이 없으면 조상신이 이르지 않는다 하였다.
제사에는 이처럼 정성과 그에 걸맞는 예(禮)가 함께 갖추어 져야 한다.
정성이 없는 형식적인 예(禮)는 허(虛)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날의 제사를 비롯한 ‘관혼상제’는 정성보다는 남에게 과시하거나 또한 형식적인 예(禮)를 위한 허례허식의 관혼상제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러면 오늘날 관혼상제 특히 상례(喪禮)와 제례(祭禮)의 모습은 어떠한가.
오늘날은 정성은 말 할 것도 없고 형식인 예(禮)까지 소홀히 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즉시탈상, 명절날 여행지에서의 차례, 인터넷 제사 등 정성도 없고 예도 없는 제례행태를 많이 보게 된다.

그러므로 가장 마땅한 관혼상제란 문질빈빈(文質彬彬)한 관혼상제 즉 정성이 모자라거나 형식이 지나친 관혼상제의 행태가 아니라 정성에 걸 맞는 의례가 잘 갖추어진 관혼상제를 말한다.
또한 관혼상제의 형식인 의례는 옛날부터 전래되어오는 의례(儀禮)를 현실의 흐름이나 편리에 맞게 조화롭게 적용시켜서 행할 때 문질빈빈한 예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전래되어 내려오는 의례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치와 도리가 담겨있다.

그러므로 그 이치나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그 시대의 흐름이나 편리에 맞게 고치어서 행하여야 문질빈빈한 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사를 지낼 때 제물을 진설하는 ‘홍동백서’ ‘조율시이’등의 진설법은 옛 왕조시대의 의례이기 때문에 현대에 맞게 조상님께서 평소 좋아하시던 음식이나 제철 음식을 정성껏 진설하는 것도 이치와 도리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현대의 흐름과 편리에 맞는 문질빈빈한 진설법이라 할 수 있다.
단 귀신이 응하지 않는다는 ‘복숭아’나 ‘삼치’ ‘갈치’ 등 끝에 ‘치’자가 든 생선이나 ‘고춧가루’나 ‘마늘양념’을 하지 않는 등의 진설법은 나름대로 그 이치가 있기 때문에 지켜야 할 것이다.

제사지내는 절차나 형식에 있어서는 옛 의례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왜냐하면 신을 모셔서 예를 표하는 절차의 이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을 모시는 강신(降神)의 절차나 축문을 읽는 독축(讀祝) 등의 제사지내는 절차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근본이치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진설법은 그 시대의 형편에 맞게 적용 할 수 있겠으나 신을 모시고 예를 표하는 제사의 절차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원리이기 때문에 그대로 지켜 나가는 것이 문질빈빈한 제례법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필자에 개인적 의견을 전제로 함이다.

? 그렇다. ‘형식이 내용을 낳는다.’하였다. 정성과 예(禮) 모두가 잃어져 가는 이때에 오히려 그 옛날의 엄격한 예(禮)로서 정성을 불러 일으켜 문질빈빈한 예(禮)의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 (인문교양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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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충남 강사는 서예가이며 한학자인 일당(一棠)선생과 '정향'선생으로 부터 한문과 경서를 수학하였다. 현재 대전시민대학, 서구문화원  등 사회교육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 명심보감과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금강일보에 칼럼 ?김충남의 古典의 향기?을 연재하고 있다.

김충남의 강의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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