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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용 편집국장

충남도가 새로운 ‘인사 실험’을 하고 있다. 국장급인 3급과 과장급인 4급으로 승진하는 데도 ‘역량 평가’라는 것을 반영하는 모양이다. 이른바 ‘역량강화 교육’을 통해 관리자로 승진할 만한 역량을 갖췄는지를 평가해서 ‘참고’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평가의 방법이다.

‘역량강화 교육’ 점수 참고하겠다는 충남도 간부 승진 인사

충남도는 최근 사흘간 하반기 승진후보자 72명을 합숙시키면서 ‘역량강화 교육’을 실시했다. 다음 주에는 본청에서 시험도 보게 된다고 한다. ‘교육’을 주목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평가’가 포함돼 있고, 더구나 승진후보자들끼리의 평가여서 인사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3~4급 간부로 승진할 사람들인 만큼, 이에 걸맞는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지만, 평가 결과가 승진에 조금이라도 반영된다면 공무원들에겐 교육이 아니라 평가를 위한 프로그램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합숙 교육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체로 “교육 내용은 좋았다”면서도 사실상 승진 평가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무척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8명 1조의 분임조를 짜서 조원끼리 상호 평가하고, 분임조 간에도 서로 평가하도록 하였는데, 이게 큰 고역이었다는 것이다. 어떤 참가자는 “20~30년 얼굴을 맞대고 함께 일해 온 동료에게 ‘승진 점수’를 매기는 것 같아 참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20년 넘게 같이 일한 동료 ‘승진 점수’ 매기는 일 고역

충남도의 ‘역량강화 교육’은 교육으로도, 평가로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교육이라면 그야말로 교육의 효과를 내야 하고, 평가라면 제대로 된 평가여야 한다. 승진인사에 ‘참고’하기 위한 것이라면 평가용이지 교육용이 아니다.

이 교육을 담당했던 한 강사는 “교육원이 생긴 이래 교육생이 졸지 않고 눈에 불을 켜고 듣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교육이 아니라 평가였기 때문이다. 물론 제대로 된 평가는 아니었다. 사흘 교육한 뒤에 매기는 성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식의 평가라면 머리 좋고 암기력 뛰어나며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이 점수를 잘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능력도 국장이나 과장급 간부로 승진하는 데 필요한 역량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그 사람의 성실성이나 일에 대한 추진력, 열정 등을 평가할 수 없다.

암기력 임기응변 뛰어나면 유리 성실성 업무능력 평가는 의문

사람을 평가하는 방법과 기준은 많다. 능력을 중시할 수도 있고, 실적을 중시할 수도 있으며, 도덕성을 중시할 수도 있고, 리더십을 중시할 수도 있다. 추진력을 더 볼 수도 있고, 성실성을 더 볼 수도 있으며, 정의감을 더 볼 수도 있다. 보직에 따라 요구되는 능력도 같지는 않다. 골치 아픈 민원이 많은 부서의 관리자와 공무원의 부패를 감시하는 부서의 관리자는 일하는 방법도 다르다.

인사권자는 간부 인사는 이러 저러한 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가장 적합한 인물을 선택하면 된다. 그게 간부 승진 인사의 원칙이고 기본일 것이다. 국장급 간부를 뽑는 데도 시험과 평가 과정을 추가한 것은 인사권자가 국장으로 뽑을 만한 사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밖에 안 된다. 그래서 ‘역량교육 강화’라는 이름으로 평가를 하고 그 결과를 반영하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심히 딱한 노릇이다. 최고위급 간부인 국장 4~5명을 뽑는 데 인사권자가 승진시킬 만한 마땅한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서 20~30년씩 함께 근무한 동료들 20명을 한데 모아놓고 ‘너희끼리 상대의 점수를 매겨보라’고 하는 것은 가혹한 주문이다. 인사권자인 안희정 지사는 전적으로 자신이 져야 될 인사 책무를 인사 대상자들에게 떠넘기면서 고통을 주고 있는 셈이다.

승진 탈락자 핑계 댈 곳도 없는 가혹한 ‘시험 승진제’

이제 충남도에서 국과장 승진은, 되든 안 되든 공무원 자신의 책임이다. 탈락자들은 ‘난 누구에게 밉보여 탈락했다’는 등의 핑계도 대기 어렵게 된다. 어떤 사람들에겐 탈락도 탈락이지만 그 책임을 온전히 자신이 져야 한다는 게 더 큰 부담이다. 승진 탈락이 전적으로 자신의 무능력 때문이라고 해도 ‘핑계거리’까지 없애는 인사 제도는 가혹하다. 고참 공무원들 가운데는 과거, 사무관으로 승진할 때 겪었던 ‘시험승진의 고통’을 떠올리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공무원들이 지지 않아도 될 그 부담은 인사권자로부터 넘어온 것이다. ‘시험 승진제’나 ‘평가 승진제’로 가면 인사권자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과 부담을 더는 듯한 생각이 들지 모른다. ‘승진하든 탈락하든 공무원 자신들 탓이니, 탈락자들도 나를 원망하지 마라.’ 당장은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사권자로선 인심을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게 많은 게 인사다. 도지사가 인사로 인한 ‘실인심(失人心)’을 우려하여 시험승진 요소를 도입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도지사가 치열한 승진경쟁이 벌어지는 공무원 사회에서 ‘인사 문제’를 부담으로 느껴왔다면, 실인심에 대한 전략은 아니더라도 그 부담을 회피하는 수단일 수는 있다.

인사의 공정성 객관성 높일 수 있으나 간부직에 안 맞아

‘시험 승진’의 장점도 분명히 있다. 인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는 데는 가장 효과적인 인사제도다. 그러나 시험은, 이게 아니면 객관적 선발이 어려운 경우에 적합하다. 가령 1000명 중에 10명이나 100명을 뽑는 경우는 일정한 양식이나 방법으로 시험을 보는 게 가장 공정하고 가장 효율적이다. 또 숫자가 적어도 평가의 대상이 서로 다른 집단이라면 시험승진이 바람직하다. 시군구 공무원의 시도(市道) 전입 시험이나 소속이 다른 고위직의 ‘고위공무원단 진입 시험’이 이런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같은 도(道)에서 근무하는 과장급 20명 중에서 4~5명을 국장 승진시키고, 계장급 30~40명 중 10여명을 과장으로 승진시키는 데 시험제를 도입한다면 합리적이지 않다. 승진 대상 과장급 20명의 업무 능력이 그야말로 백지 한 장 차이여서 인사권자가 선택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래서 ‘역량 평가’를 추가하는 것이라고 해도 말은 안 된다.

인사권자인 도지사가 양심적으로 선택하면 될 일

하위직 공무원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간부 공무원에 대해선 ‘역량 평가’가 적절치 않다. 도지사 자신과 매일 머리를 맞대고 도정을 걱정해야 할 국장을 어떻게 점수로 뽑는가? 도지사가 양심껏 능력있는 사람을 발탁해서 쓰면 된다. 국과장 후보자의 실적, 능력, 평판, 도덕성, 성실성, 추진력 등 종합해서 발탁하면 된다.

도지사가 잘 평가하기 어렵다면 도지사가 믿을 만한 사람 중에서 이런 요소를 고려하여 추천받아도 될 것이다. 도지사 자신도 잘 모르고, 평가를 대신할, 믿을 만한 사람(부지사나 자치국장)도 마땅히 없어서 ‘역량 평가’를 실시하는 것이면 인사가 아니라 도정 자체가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그건 아니라고 본다. 안 지사는 토론을 좋아하는 합리적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그것이 충남도 행정에 스며들기를 바라는 듯한 말도 거듭해왔다. ‘역량 평가’는 도지사의 이런 스타일과 맥을 같이하는 측면이 있다. ‘책읽기’에 점수를 주는 것과도 흡사하다.

과거(科擧)시험 합격자 100분의 1만 정말 ‘인재’

‘인사’도 ‘책읽기’도 실제와 이론엔 차이가 있다. 과거 벼슬아치들은 과거(科擧) 시험으로 뽑았다. 세습제나 추천제에서는 어려운 가장 공정한 경쟁방법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 실효성을 알아봤더니 과거 합격자의 10분의 1만 진짜 글을 지을 수 있었고, 그 중 10분의 1, 즉 전체 합격자의 100분의 1만 정말 덕이 있고 건전한 학식을 지닌 사람이었다. 시험의 방법과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허점은 있기 마련이다. 

과거 사람들도 이런 점 때문에 시험을 능사로 치지 않았다. 안희정 지사는 간부 승진에 대한 ‘역량 평가제’에 신중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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