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기천] 에너지 절약과 동떨어진 세계의 음식점들

  가기천  
 가기천 수필가

가까운 곳에 웬만한 규모의 음식점이 있다. 손님들이 제법 들락거리는 것으로 보아 음식이 괜찮은지 한 번쯤 들어가 보고 싶지만 막상 가본 적은 없다. 왜냐하면 그 음식점 밖에 죽 매달린 수박덩이만큼 커다란 여러 개의 전등이 사시사철 한낮에도 적황(赤黃)색 불을 켜놓고 있는 주인의 의식과 상술이 밉기 때문이다.

대지가 타들어 가는 듯 무더운 여름철에 그 붉은 불빛을 보면 뜨거운 불덩이가 다가오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전력낭비를 넘어 행인들에게는 분명 공해의 하나다. 아마 영업 중임을 나타내려는 의도가 있겠지만 다른 마땅한 방법이 없다면 작은 등 하나만 켜놔도 될 터인데 조명기구를 취급하는 점포도 아니고, 그 주인은 에너지절약과는 동떨어진 세계에 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에너지 절약과 동떨어진 세계의 음식점들

어느 땐 들어가 음식을 먹으면서 넌지시 말을 건네 보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런 사람과는 말을 섞고 싶지 않으니 속이 좁은 것인지 용기가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2년 전,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處暑)가 지나고 나서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9월 15일, 저녁 갑자기 정전(停電)되었다. 영문을 모른 채 오랜만에 촛불을 켜서 어둠을 몰아내고 있는데, 십분 쯤 지났을까 관리소에서 알리는 말이 스피커에서 흘러 나왔다. 

“입주민 여러분! 갑작스런 정전으로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신속히 복구하도록 하겠습니다.” 관리소에서는 단지안의 전기시설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우선 비상발전기를 돌려 안내방송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방송이 나왔다. 전력부족으로 인한 ‘순환 정전 조치’로 지역 일대가 모두 정전이 되었다며 언제 쯤 들어올지 알 수 없으니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이른바 ‘블랙아웃(大停電)’사태였다. 삼십 분 쯤 지나자 전기가 들어왔다.

주인과 종업원만 있는 식당도 에어컨 쌩쌩

가정에서는 작은 불편쯤이야 견딘다고 하더라도 비상발전시설이 없는 병원과 공장이 어려움을 겪었고, 수족관과 슈퍼마켓, 식당의 냉동?냉장고가 돌아가지 않아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교통신호등이 작동하지 않아 도로에서는 큰 혼란이 일어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사태로 주무부장관은 얼마 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일이 있은 다음 날, 저녁모임이 있어서 약속장소인 음식점에 갔다. 예정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그 식당에는 손님은 한 사람도 없고 주인과 종업원들만 있었는데 방마다 전등이 켜있는 데다가 에어컨에서는 찬바람을 뿜어내고 있었다.

냉방기가 돌아가니까 유풍(有風)이지만, 전력난에는 아랑곳 하지 않는 무풍(無風)지대였다. 주인을 아는 집이라 방마다 다니며 전등과 에어컨을 꺼가면서 “아니 손님도 없는데 왜 전등은 켜놓았어요? 더구나 에어컨까지”라고 물으니 “불을 켜놔야 사람들이 영업하는 것으로 알고 들어오지요. 에어컨은 미리 켜서 냉방을 해야 손님들이 방에 들어가면서 시원하다고 하거든요.”

정전 사태 불편 겪어보면서도 절전 의식 없어

“정 그렇다면 전등은 홀에만 켜고 방에 있는 에어컨과 전등은 손님이 올 때쯤 켜면 어때요?”하니까 그때서야 수긍하는 듯 했지만 진정성은 보이지 않았고 ‘별 간섭을 다한다’는 표정이 읽혀졌다. 갑작스런 정전사태로 불편했고 피해가 있었다는 불평만 쏟아낼 뿐 절전을 해야 한다는 의식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하기야 물가 오르고 전기요금 많이 나왔다는 구실로 음식 값을 올리던지 음식의 질이나 양을 조절하면 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겨울에도 몇 차례나 단계별 경보를 발령하며 전력관리를 하여 겨우 위기를 넘겼다. 이제 본격적인 더위는 아직 시작조차 되지도 않았는데 전력당국은 벌써부터 비상사태에 들어가고 연일 경보를 발령하고 있다.

전력수요는 해마다 늘어나는데 그 예측과 대책은 미흡했고, 발전소는 이런저런 이유로 가동을 멈춘 데다, 관계자들의 ‘천인공노’할 비리도 한몫했다는 소식이 더 무덥게 들린다. 앞으로 긴 여름을 어떻게 넘어갈까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전문가는 겨울철이 더 두렵고 위험하다고 한다.

강제 순환단전 블랙아웃 겪어야 경각심 들까?

현대 생활에서 전기가 없다면 사실상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전기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도 없게 되었으며, 이제 전기는 물, 공기 다음으로 생존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까지 말한다.

이상기후, 기상이변으로 더 추워지고 더 더워지는데, 이런 상황에 만약에 몇 번의 강제 순환단전 조치와 블랙아웃사태를 겪어야 비로소 교훈을 얻고 그것이 경각심을 갖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면, 그 대가는 너무 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제 그 식당에 가 볼까 고민하면서, 만약에 간다면 “사장님, 낮에는 외등을 좀 끄면 어떨까요?”라고 말하고 싶다. 공무원들이 그런 것까지 일일이 계도하고 단속할 겨를이 없을 테니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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