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용길] 대덕특구 기관장들에게 깊은 실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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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길 충남대 교수

미래부가 기초과학연구원을 원래 예정지인 둔곡지구에서 엑스포 과학공원으로 이전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이를 계기로 과학벨트 사업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이 제안에 대해 대전시장과 충청권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찬성하였고, 대전시는 곧 미래부와 MOU를 체결할 것이라 한다.

이번 사태가 전개되어 가는 과정을 보면서 도대체 대전시장과 이 지역의 정치인, 특히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행태에 깊은 실망과 분노를 느낄 뿐이다. 대전의 발전과 시민들의 삶을 걱정하기 보다는 중앙 정부의 눈치나 보면서 자기들의 정치적 이해득실 계산에 급급하고 있는 무능과 무책임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절차적인 측면과 내용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자.

지역민 얼마나 우습게 보았으면 이런 엉터리 행정을 할까?

먼저 절차적인 측면, 그중에서 과학벨트 사업이 변경되어 가는 과정을 따져 보자. 과학벨트 사업의 기본계획에 의하면 기초과학연구원은 둔곡지구에 50만m2의 규모로 건설하도록 되어 있고, 이를 정부고시로 발표까지 하였다. 더구나 작년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선 국고지원을 해서라도 과학벨트의 정상적 추진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상황은 전혀 변화가 없었고, 돈이 없으면 현물출자라도 하라는 차원에서 과학공원에 기초과학연구원을 건설하자는 미래부의 공문이 지난 9일 공개되었다.

국책사업으로 기획되었고, 대통령의 공약사업이 이처럼 뚜렷한 이유도 없이 중단되고 있는 것은 문명국가에서 이루어지는 행정의 모습이 아니다. 만일 상황변화가 생겨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으면 타당한 사유를 국민에게 밝히고 필요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국가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정치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며, 행정의 일관성이 훼손되는 결과를 가져 올 뿐이다. 얼마나 국민을 무시하고 지역민들을 우습게 보았으면 이런 엉터리 행정을 할까?

새누리당 지역 의원들, 미래부 장관에 호통치던 호기 어디 갔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제안에 대해 대전시장과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의 행태는 더욱 한심하다. 지난 9일 미래부의 공문이 공개된 이후에 행적을 보자. 12일 오전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은 미래부 차관과 간담회를 갖고 ‘미래부 안’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다. 얼마 전 미래부 장관을 데려다 호통 쳐 ‘국비 전액지원’을 약속받았다고 으쓱대면서 말하던 호기는 어디 갔다는 말인가? 그것은 정치적 쇼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염홍철 대전시장은 11일 시민사회 직능단체들과 간담회를 갖고 의견을 청취하였으며, 12일에는 실무책임자가 시의회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차원에서 산업건설위원회 간담회를 열어 관련 의원 3명에게 설명하는 형식을 취했다. 13일 염 시장은 미래부 안에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조만간 미래부와 MOU를 체결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전의 미래 걸린 문제 3~4일만에 결정될 수 있나?

대전의 미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과학공원이라는 시민의 공적 공간이 사라지는 사업에 대한 의사결정이 불과 3~4일 만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그리 급하다고 이리 졸속으로 결정한다는 말인가? 이것이 염 시장이 평소에 그렇게도 강조하던 시민과의 소통이라는 말인가?

대전시장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기초과학연구원이 과학공원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대전 시민들의 소중한 휴식공간이며 과학체험 공간인 과학공원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를 하고, 양해를 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전과 대전 시민에게 미치는 다양한 효과를 장단기적 관점에서 치밀하게 검토해야 하며, 생각을 달리하는 전문가 및 시민사회단체들과 치열한 토론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전시 의회와도 협조를 통해 사업변경의 타당성 여부를 검토하여야 한다. 정식회의도 아닌 간담회를 통해 26명의 의원 중 3명에게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만으로 의견을 수렴했다고 하는 것은 의회를 허수아비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의회 스스로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일말의 수치심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연구단지 만들겠다는 계획 수포로 돌아가는 것

다음으로는 기초과학연구원이 과학공원에 들어오는 것이 과연 내용적으로 타당한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기본계획에 의하면 둔곡지구에 들어설 기초과학연구원은 50만m2의 면적으로 건설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엑스포 과학공원에 들어설 기초과학연구원은 25만m2로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세계적인 연구기관으로 만들겠다는 당초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과학벨트 거점지구의 핵심시설은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이다.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기본계획을 구상할 때는 두 기관이 서로 인접해 있어야 학제간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전체 사업비의 5%에 불과한 부지매입비 문제로 인해 기초과학연구원을 과학공원에 위치하게 되면 거점지구 자체가 근본부터 흔들리게 될 것이다.

또한 과학공원은 부지가 협소한 것 외에도 이미 주위에 아파트와 호텔, 그리고 컨벤션 시설 등이 들어서 있기 때문에 쾌적한 연구 환경을 구축하고 연구의 보안을 유지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거기에 도서관, 기술거래소, 첨단기업 창업 공간 등을 담은 20층 규모의 사이언스 센터가 들어서게 되면 연구 환경은 더욱 열악해질 것이 뻔하다. 다시 말해 기초과학연구원이 들어설 공간으로서 엑스포 과학공원은 입지적합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이다.

대덕특구 기관장들에게 깊은 실망

과학공원에 기초과학연구원이 들어오면 정부는 3,500억을 절약할 수 있는가? 미래부의 제안에 의하면 거점지구 전체 면적(104만 평)은 줄지 않을 것이고, 기초과학연구원이 들어설 예정지는 산업단지로 개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렇다면 어차피 예정지를 정부가 매입할 것이고, 따라서 정부로서는 부지매입비를 절감하는 것이 아니다. 비용 절감이 되지 않는데 굳이 대전 시민의 소중한 공간을 빼앗고 그곳에 기초과학연구원을 건립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초기에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둔곡지구에 기초과학연구원이 들어서고, 살기에 적합한 정주환경을 조성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세계적 수준의 기초연구환경을 구축하고, 기초연구와 비즈니스가 융합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겠다는 과학벨트 사업의 조성목적이 달성되는 것이다. 40년 전 대덕연구단지가 개발되었던 초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쾌적한 연구 환경을 갖추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을 찾는 사업인데 최소한 10년~20년 이상은 내다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단편적이고 단기적인 사고에 빠져 기초과학연구원의 과학공원 입지에 찬성하는 ‘대덕 R&D특구 연구소 기관장들’에게 깊은 실망을 느낀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대전시장과 지역 정치인들

절차와 내용 면에서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한 일을 추진하는 정부에 대해 이 지역을 대표하는 대전시장과 지역의 국회의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시민들이 당신들에게 표를 주고 시민의 혈세로서 당신들의 생활을 보장할 때는 대전의 발전과 대전 시민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라는 것이다. 부당한 중앙 정부의 요구와 간섭에 대해 저항하고 싸우라는 것이다.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자원이 배분되는 과정에서 이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항상 홀대를 당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역의 정치인들을 거물로 키워야 한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이 보여주고 있는 치졸한 행태에서 우리는 절망만 확인할 뿐이다. 특별법에 근거를 두고 진행되는 과학벨트 사업, 특히 그중에서 중이온 가속기 사업이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 사업은 이미 국비가 1,000억 이상 투입되고 있다. 이 사업은 원래 중복투자가 된다는 이유로 제외되었고 대신에 ‘중이온 가속기’를 구축하기로 계획을 세웠던 사업이었다. 이 지역에서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배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참담한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당신들의 무능과 무책임이 대전의 발전을 더디게 하고, 정치 불신을 초래하고, 국가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지금 당신들이 보이고 있는 치졸한 행태는 지역민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현재의 권력이 아닌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정치인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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