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비 20분의1 때문에 사업장(場) 바꾸는 정부 어떻게 믿나?

  김학용 편집국장  
 김학용 편집국장

미래창조과학부가 기초과학연구원을 엑스포과학공원에 넣으면 어떻겠느냐고 대전시에 제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역사회가 자중지란에 빠진 모습이다. 국가사업인 과학벨트의 부지매입비를 대전시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안 된다며 일치된 입장을 보였던 지역사회에 분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래부 제안에 시민단체는 반대하고 대전시장과 지역국회의원들은 찬성하는 쪽으로 의견이 갈리고 있다.

과학벨트 해법, 의견 갈리는 지역 사회

시민단체는 대전시 소유의 과학공원에 기초과학연구원을 넣는 방식으로 결국 부지매입지를 대전시에 떠넘기고 과학벨트 규모도 축소될 우려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반면 대전시는 과학벨트 규모의 축소는 안 된다면서도 미래부의 제안을 수용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염 시장은 12일 과학기술인 임시회에 참석해 과학공원에 기초과학연구원이 들어오면 롯데테마파크 자리를 변경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어제 대전시가 마련한 토론회에서 대전개발위원회 관계자는 “미래부가 떡을 줄 때 받아먹어야 한다”며 찬성론을 폈다. 이 단체는 작년 말 염홍철 시장을 위해 만들어진 ‘대규모 현안사업 성공 추진을 위한 대전발전범시민실천본부’의 일원이다. 개발위원회의 찬성론은 염 시장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지역 국회의원들도 12일 미래부로부터 보고를 들은 뒤 미래부 의견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학기술인들도 환영 의견을 밝혔다고 하는데 대부분은 정부에 대놓고 반대하긴 어려운 사람들이다.

“과학공원 활용안(案)은 국제과학벨트 물건너가는 것”

나는 도시계획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과학공원을 활용하자는 미래부의 제안이 현실성 있는 아이디어인지 의문이다. 과학벨트 규모를 대폭 축소하지 않는 한, 기초과학연구원이 과학공원에 입주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세계적 수준의 우수인력을 유치해 노벨상까지 탈 수 있는 연구 역량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과학벨트의 목표다. 이를 위해 쾌적한 분위기, 교통, 주거, 교육, 의료, 근린생활 등 연구 활동에 불편이 없는 공간으로 만드는 게 100여만 평 규모의 과학벨트 기본계획이다. 미래부가 과학공원에 넣자는 기초과학연구원은 중이온가속기와 더불어 과학벨트의 2가지 핵심시설 중 하나다. 기초과학연구원에만 3000명이 근무하게 된다.

과학벨트 예정지(둔곡지구)에서 기초과학연구원을 빼내 10만 평 남짓한 엑스포과학공원에 넣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다. 기본계획상 기초과학연구원 부지만 16만여 평이다. 기초연구원은 들어간다 해도 이들을 위한 주거나 교육 시설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과학공원으로 오면 명실상부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물건너갈 공산이 크다.

국내외의 우수한 연구인력을 끌어들여 세계 10대 과학단지로 만든다는 게 과학벨트의 당초 목표다. 기초연구원을 떼 내 과학공원으로 보낸다면 과학벨트의 핵심 지구인 ‘거점지구’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말만 과학벨트지 과학벨트가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국제라는 말도 빼야 할 것이다.

과학벨트도 과학공원도 놓치게 될 미래부의 제안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과학공원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는 정부 측에서 보면 ‘좋은 테크닉’으로 보이지만 명실상부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안 하겠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그는 “과학공원에 기초과학연구원을 넣으면 대전시로서는 과학벨트도 과학공원도 다 놓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래부가 과학벨트를 축소시키려는 의도에서 과학공원 활용 카드를 제시했다면 박근혜 정부 하에서 진정한 과학벨트 추진은 물건너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정말 과학벨트를 뭉개려는 생각일까? 지역 국회의원들까지 미래부 안에 찬성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아직은 그런 ‘비관론’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4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과학벨트는 정부가 너무 나서지 말라”고 언급한 이후 정부와 여권에서 일제히 과학벨트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다. 미래부도 기획재정부도 여당인 새누리당도 ‘부지매입비 분담하라’며 일제히 대전시를 압박해 왔다.

총 사업비의 20분의 1 때문에 사업장(場) 확 바꾸려는 웃기는 정부

이런 상황에서 미래부는 엑스포과학공원 활용 카드까지 꺼낸 것이다. ‘부지매입비를 댈 돈이 없다면 대전시가 가진 땅이라도 내놓으라’는 것이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국가과학단지 사업에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돈을 보태라고 요구하고, ‘돈이 없다면 너희들 땅이라도 내라’고 윽박질러 벌이는 사업이면 이미 국가사업이 아니다. 과학벨트가 정말 미래부의 안(案)으로 수정된다면 최강의 ‘갑(甲)’인 정부가 ‘을(乙)’인 지방정부에 협박을 가해 추진하는 최초의 국가사업이 될 것이다.

난 이것이 미래부의 아이디어일 수는 있어도 ‘박근혜 대통령의 방법’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5조원 규모의 국가사업에 그 20분의 1인 2000~3000억원을 지방한테 대라고 요구하다가 사정이 어렵다고 하니까 ‘그럼 현물이라고 내라’며 사업장(場)까지 확 바꾸는 정부는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정말 치졸한 방법 쓸 것으로 보지 않아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치졸한 방법으로 국제과학비스니스벨트를 추진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충청지역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미래부로부터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 몰라도 지역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과학산업의 미래를 망친 정치인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모두 찬성 의견을 냈는지는 모르나, 이인제 이완구 정우택 홍문표 박성효 이장우 성완종 김태흠 의원들이 그 자리에 간 지역 출신 현량들이다.

대전시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염홍철 시장은 과학공원 활용 안에 반대해야 한다. 대전시가 정부 관련 사업에 관한 한 사사건건 발목이 잡히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국가와 지역의 미래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염 시장은 반대 의견을 미래부에 전달해야 한다.

염시장에겐 국가와 대전의 미래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

진정 정부가 부지매입비를 요구한다면 150만 대전시민에게 하소연해도 좋을 것이다. “정부가 5조원 짜리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대전에 만들겠다고 하더니 정부에서 내놓으라는 2000~3000억을 구할 길이 없어 진짜 과학벨트는 날아가게 생겼습니다. 시민 여러분! 1인당 20만원씩 보태주세요!” 대전시민 1인당 20만원씩 내면 3000억원이다. 이렇게 호소하면 나는 20만원 내겠다. 사업이 한 두 해 늦어지더라도 진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되도록 해야지 지방과학단지가 되도록 해서야 되겠는가?

미래부와 국회의원들이 창조경제 등의 용어와 개념을 동원하고, 철썩같이 약속해도 5조원 사업비에서 20분의 1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몇 년에 걸쳐 만든 과학벨트 기본계획을 팽개치는 정부를 어떻게 믿겠는가? 박근혜 정부는 그런 정부가 아니라고 본다.

박 대통령은 대선 때 ‘전액 국비지원’을 약속하지는 않았으나 “선(先) 국고지원이라도 하겠다”며 정상 추진을 약속했었다. 박 대통령이 정말 과학벨트를 축소하거나 뭉개려고 한다면 이 약속을 뒤집어야 한다. ‘신뢰의 정치인’으로 기록되려는 박 대통령이 과학벨트 하나 뒤집어서 불신의 정치인이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과학벨트는 선정 과정부터 온 나라가 들썩거린, 말 그대로 국가적 사업이다. 거듭 말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그런 중대 사업을 졸렬한 수법으로 뒤집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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