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양대 김용균 교수…"중이온가속기, 부가가치 집중해야"

  한양대 김용균 교수.  
한양대 김용균 교수.

최근에 다시 부지매입비 문제로 충청권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중이온가속기는 과학자를 꿈꾸던 20대 청년에서 지금까지 필자의 학문 인생을 함께 해 온 연구 시설이다.

핵물리학을 전공한 필자는 가속기 실험을 통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초, 미리 정해진 결혼 날짜에 연달아 일본 RIKEN의 가속기 실험 일정이 잡히는 바람에 결혼식 후 닷새 만에 RIKEN에 가서 중이온 핵반응 실험을 하게 됐다.

외국의 시설을 빌려 하는 실험이다 보니 결혼식 날짜와 딱 겹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결국 신혼여행도 못가고 연구하러 떠났다. 당시 필자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우리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연구 환경과 시설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마침내 2007년 무렵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기초과학 발전의 근간을 마련하기 위해 중이온가속기를 설립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과학계를 중심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외국에만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던 중이온가속기가 우리나라에도 지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하고, 이를 위해서는 불철주야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욕도 생겼다.

그러나 막상 시간이 흘러도 그 필요성에 대한 논의만 진행될 뿐 실질적인 작업에 착수할 수 있는 재원은 마련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중이온가속기 건설을 위한 예산을 마련할 수 있을까 하는 고심 끝에 몇몇 교수님들과 정진석 현 국회사무총장을 찾아갔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정 사무총장은 우리의 설명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들어줬고, “중이온가속기 건설은 지역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며 “대정부 질문에서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 후 국회 예결위에서 강력히 주장한 덕분에 충청권 의원 중심으로 정치권과 예산당국의 호응을 얻게 됐고, 결국 2009년 추경에 50억 원이 반영돼 과학벨트와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개념설계의 기본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기본 설계가 시작됨과 동시에 가속기의 위치선정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 세종시 수정안이 기각되면서 과학벨트를 전국 각지에서 유치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었다.

당시 일본 학회에서 만난 세계적 핵물리학자이자 중이온가속기 권위자인 아키토 아리마 박사는 “중이온가속기는 지반 안정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일본에 가까워서 지진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는 설치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이후 필자는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에서 “지반 안정성이 뛰어난 충청권에 가속기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한국 과학의 메카인 대덕에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가 자리 잡게 됐다. 그러나 이제는 부지매입비라는 또 다른 문제로 중이온가속기 건설은 난항을 겪고 있다.

딸만 셋인 우리 집에서 저들끼리 옷이나 음식으로 다툼이 나면 아내가 자주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오래전에 어느 대단한 양반집에서 며느릿감을 구하는데, 쌀 한 말을 가지고 남녀종과 석 달을 버텨서 먹고 살아 남으면 누구든 며느리로 삼겠노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많은 처녀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 시도했지만 다들 굶어가며 쌀을 아끼고 아끼다 결국 쌀이 떨어지면 포기하곤 했다.

그러던 중 이웃 마을의 가난한 집 딸이 지원했다. 이 처녀는 삼 일치 먹을 양만 남긴 후 튼튼한 도끼와 바느질감을 사는 데 쌀을 모두 써버렸다. 그런 다음 여종에게는 옷을 짓게 하고, 남종에게는 나무를 해다가 돈을 벌게 하니 석 달이 지난 후에는 잘 먹고도 도리어 쌀과 돈이 쌓여 있었다.

이 처녀는 절약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과감히 미래를 바라보는 투자를 실행에 옮겼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조경제의 원형이 바로 이 이야기 속에 녹아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국가와 대전시는 당장 지출해야 하는 부지매입비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 안목에서 중이온가속기 건설이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중이온가속기를 건설함으로써 대한민국은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한 기초과학의 토대를 다질 수 있고, 대전은 대한민국을 넘어 국제적인 과학기술의 중심지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다.

과학벨트사업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살릴 창조경제의 핵심이다. 필자는 하루 빨리 과학벨트와 중이온가속기를 둘러싼 문제들이 해결되고 대전시와 국가, 여당과 야당이 힘을 합쳐 사업을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이 사업을 통해 인재를 육성하고 새로운 기술과 가치를 창출하는, 함께 부를 나누며 성장하는 더욱 풍성해질 대한민국을 꿈꾸어 본다.

김용균 교수 소개: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핵물리학 실험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책임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한양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핵과학자로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와 ‘중이온가속기’의 초기 입안 과정부터 핵심 역할을 하였으며, 기초과학연구원 중이온가속기구축사업단의 그룹리더로서 실험장치의 연구개발을 이끌고 있다.

2006년에는 원자력 분야의 국제적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세계 3대 인명사전에 등재되었고, 한국원자력학회 우수논문상, 대한방사선방어학회 우수논문상, 한양대학교 연구분야 최우수교수상 등을 수상했다. 대한방사선방어학회 부회장,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전문위원, 국회 입법지원위원, 기초기술연구회 전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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