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편집국장  
 김학용 편집국장

학문에도 귀하고 천한 구분은 있을 수 없다. 어떤 학과는 높고 귀하며 어떤 학과는 낮고 천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학문의 성격에 따라 뿌리와 가지로 나눌 수는 있다. 뿌리는 기초학문, 가지는 실용학문이라 말해도 좋겠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뿌리다. 인문학도 자연과학도 그 정점에는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의 문제’를 다루는 인문학이나 ‘사물의 문제’를 탐구하는 과학도 학문의 궁극적 기반은 철학이다.

모든 학문의 뿌리는 철학

어떤 대단한 이론도 그것이 참인지, 현실적 가치는 있는지 등의 문제를 검증받으려면 철학의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학문적 수단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관의 역할도 철학의 몫이다. 문학도 법학도 경제학도 물리학도 수학도 공학도 의학도 그 바탕은 철학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없앤다는 것은 학문의 뿌리를 잘라내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뿌리를 없애는 대학들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 충청권 최고의 사립대를 자처한다는 한남대도 철학과를 없애기로 했다.

‘개똥철학’에 그친 장삼이사들도 이를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한남대도 명색이 대학인데 철학의 중요성을 모르겠는가? 한남대가 철학과를 없애려는 데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철학과를 지원하는 학생이 자꾸 줄고, 철학과에 들어온 학생도 다른 길을 찾아 떠나며, 졸업하는 학생도 취업률이 떨어진다는 진단은 사실일 것이다.

경쟁력 떨어지는 철학과

철학과의 이런 지표가 한 대학의 전체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대학별 성적표’에 불리하게 작용하면서 정부 지원을 못 받는 ‘부실대학’으로 추락시킬 수도 있다. 부실대학으로 찍히면 학생들 모집이 더 어렵고 그래서 대학이 더 부실해지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철학과 폐지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철학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나 대학이 생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논리다. 철학이 ‘뿌리 학문'이긴 하지만 당장 써먹는 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경쟁력은 떨어질 수 있다.

철학뿐 아니라 웬만한 기초학문이나 인문학은 불리한 입장에 있다. 지방대에선 이런 학과들이 다 존폐의 기로에 있다. 대전대는 이미 작년에 철학과를 없앴다. 올해부턴 입학생을 뽑지 않고 있다. 배재대는 올해 주시경과 김소월을 배출한 국문과까지 없앴다.

이들 대학들은 대신 항공승무원학과 실용음악과처럼 취업이 잘되는 ‘실용학과’를 만드는 데 열중하고 있다. 다 전문대에서나 개설하는 과목들이다. 4년제 대학들이 전문대 영역으로 내려가 ‘먹거리’를 빼앗아 오는 전략일 뿐이다.

예전에도 철학과는 '굶는 과'였지만...

예전에도 철학과는 ‘굶는 과’였다. 예나 지금이나 철학은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철학은 대학을 상징하는 학문이고, 대학을 대학답게 하는 최고의 학문이었다. 철학과 학생이 아니어도 철학은 대학생이 되는 기본 코스로 여겼다. 철부지 고등학생도 처음 대학 캠퍼스를 처음 밟으면 너나없이 ‘철학개론’을 수강했다.

30년 전 충남대엔 철학과 교수 10여명과 시간강사 30여명이 하루 10시간씩 철학을 가르쳐야 했다. 지금은 학생수가 훨씬 늘었는 데도 동양철학으로 개설된 강의가 고작 3~4개라고 한다. 충남대의 한 철학과 교수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20%~30%도 안 될 거라고 했다. 학생들은 언제부턴가 철학개론 대신 골프 같은 취미 분야로 교양과목 학점을 때우고 있다.

이런 현상에는 철학이 교수 자신들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학생들에게 닫힌 운영시스템도 한몫한다고 한 철학과 교수는 고백했다. 철학도 시대에 맞게 커리큘럼도 바꾸어 학과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철학이 사라지고 있다. 대학들은 앞다퉈 철학과를 없애고, 학생들은 골프나 사교 댄스 배우는 것을 철학공부로 대신하고 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가? 대학에서 철학과가 없어지고 철학강의가 사라져도 되는 것인가?

대학가에 철학이 사라지고 있다

모든 대학에 철학과를 둘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학문을 하고 가르치는 대학임을 자처하는 곳이라면 철학과를 함부로 없애선 안 된다고 본다. 철학은 지식이 아니라 학문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문이다. 철학은 다른 인문학과도 다르다. 명색이 대학이라면 없앨 수 없는 학과다.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하겠는가? ‘정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못난 사람들의 질투심만을 표현하는가?’ ‘정치는 전문가들이 담당해야 하는가?’ ‘노동은 노예화인가 자유화인가?’ ‘모든 복종을 자유의 포기라고 할 수 있는가?’ ‘인간에게 선한 욕망과 악한 욕망을 구별하는 근거나 자격이 있는가?’ ‘세계의 질서를 변화시키려는 것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가?’ 등등..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국민의 나라 프랑스의 고등학생들이 배운다는 철학 문제들이다. 누구라도 약간은 답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정답은 없다. 최고의 철학 권위자도 ‘이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학생들은 이 문제에 접근하고 사유하는 방법을 배울 뿐이다. 대학엘 안 가도 생각이 좀 깨이면 해야 하는 공부가 철학이다.

한숭동 교수가 미국에서 본 ‘거지 철학도’

철학자가 될 일이 없고, 윤리교사가 될 일도 없는데 이런 철학이 무슨 소용인가? 정말 그럴까? 얼마 전 한숭동 전 대덕대총장에게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들었다. 그는 미국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미국 유학 시절 뉴욕 맨하튼에서 한국인 거지를 보고 “그냥 고국에 있지 미국까지 나와서 저런 고생을 하나” 하고 혀를 찼다고 한다. 그러나 한 교수는 얼마 뒤 한 대학 도서관에서 세계일보에 난 그 거지 인터뷰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

한인 거지는 인터뷰에서 “내가 비록 거지노릇은 하고 있지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이 나를 볼 때 위안이 될 것이다. 그것이 나의 존재 이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햄버거 2개와 캔 맥주 한 개 값인 8불만 구걸하면 그날 ‘영업’은 그걸로 끝내는 주견이 분명한 철학도였다.

그는 미국까지 가서 거지 생활을 하고 있지만 프랑스 고고생이 배우는 철학문제는 확실하게 알고 실천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는 ‘세계의 질서를 변화시키려는 것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가?’ 프랑스 고교 철학의 질문에는 확실한 답을 구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한인 거지보다 나을 게 없는 부자들

우리 사회에는 직업도 경제력도 멀쩡하지만 정신세계를 보면 한인 거지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떵떵거리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돈으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많다. ‘개똥철학’도 없는 군상들이다.

개똥철학은 보잘것없는 아마추어 철학을 낮춰 부르는 표현이었으나 철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담고 있는 말이었다. 누구나 소싯적엔 개똥철학자가 아닌 청춘이 없었다. 한 참 뒤엔 청소년을 위한 철학콘서트 같은 대중철학서도 유행했다. 지금은 개똥철학도 대중철학도 없어진 것 같다. ‘철학 부재(不在)의 시대’가 되었다.

한남대가 철학과를 없애면 ‘부실대학’으로 떨어질 가능성은 좀 낮아질지 모르나 길게 보면 대학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는 불리할 것으로 본다. 철학과가 사라지면 종당에는 약간의 교양철학만 남게 될 것이다. 철학을 공부하지도 가르치지도 않는 대학이 대학다운 대학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본다.

한남대 철학과 폐지 '부실대학 카드' 휘두르는 정부만 책임인가?

한남대는 ‘전문대’나 ‘직업학교’로 간판을 바꿔야 할지 모른다. 이제는 종합대와 전문대의 구분이 없어지고 전문대 학장도 총장으로 불리지만 사람들 알게 돼 있다. 그 대학이 전문대학로 내려앉은 대학인지 아닌지를.

철학과 죽이기는 정부가 휘둘러대는 ‘부실대학 카드’에 기인하고, 근본적으로는 대학수와 정원을 마구 늘린 탓이지만, 이에 대처하는 대학 스스로의 책임도 클 것이다. 한남대를 비롯한 목원대 배재대 등은 교수연봉이 전국적으로도 상위권에 속한다. 연봉으로 보면 꿇릴 게 없는 대학이 대학의 자존심 철학과를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면 그 책임을 정부와 현실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철학이 다른 학문과 융합을 통해 실용학문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있는 데도 철학과 폐지를 서둘러 결정한 대학측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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