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길 충남대교수  
 정용길 충남대교수

국회가 행정부의 독주를 견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방자치도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 지방의회를 두고 있다. 지방의회는 조례를 제정하는 입법기능, 예산과 결산 등의 심의기능, 행정사무 감사 및 조사를 통한 감시와 견제기능,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고 조정하는 기능 등을 수행한다. 

대전시의회 지방의회 역할 4가지 수행하고 있나?

대전시 의회는 이러한 네 가지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는가? 조례제정 기능과 예산·결산 등의 심의기능은 모든 지방의회가 공통적으로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자세한 언급을 피하고자 한다. 다만 안전행정부의 ‘내고장 알리미’에 의하면 작년 6대 광역시의 지방의원 1인당 조례 제·개정 평균은 1.61건인데 비해 대전시는 1.35건으로서 전체에서 4위에 불과하다. 또한 대전의 정체성과 별 관련이 없는 음식 및 와인 축제에 막대한 시민 혈세가 투입되는 것을 방조하는 것을 보면 심의기능도 제대로 작동되는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대전시 의회는 집행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하고 있나? 자치단체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지방의원들의 기본적 의무이고 권리이다.

현재 대전시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과학벨트 사업의 정상적 추진이다. 이는 대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성장 동력과 연관되어 있는 중요한 사업이다. 과학벨트 사업은 특별법이 제정되어 있고, 2011년 12월에 정부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본계획’을 확정하여 발표한 사업이다. ‘기본계획’을 보면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총 5조 1,700억이 소요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부지매입비 한 푼도 반영 안 된 과학벨트 기본계획

그런데 그 안에는 과학벨트 관련 부지매입비가 한 푼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각주의 형태로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 가속기 부지매입비는 거점지구 개발사업 시행자 지자체 등 유관기관과 지속적으로 협의’한다고 되어 있다. 즉 대전시가 부지매입비를 부담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기본계획’이 수립되었다. 물론 이 ‘기본계획’을 만드는 과정에서 공청회 등 의견수렴 절차를 거쳤을 것이고, 대전시 등 유관기관과 협의도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 공약사업이고 국책사업인 과학벨트 사업에 대전시가 부지매입비의 일부를 부담하라는 중앙정부의 비상식적 요구는 이러한 ‘기본계획’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행정행위이다. 만일 전액 국고부담으로 추진하게 되면(대전시와 시민들의 바람이지만) 이는 ‘기본계획’을 어기는 것이며, 담당 공무원은 문책당할 수 있다. 비록 잘못된 ‘기본계획’이지만 적법한 절차를 거쳐 확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과학벨트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부지매입비에 대한 조건을 뒤에 붙였다는 것이며, 이는 중앙정부의 아주 잘못된 실수이다”라고 염 시장은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역민들의 역량을 결집하여 과학벨트 사업이 정상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과학벨트 기본계획에 부지매입비 조건을 붙인 것은 중앙정부의 실수인가? 아니면 차려준 밥상조차 제대로 받아먹지 못하는 대전시의 실수이고 잘못인가?

이 부분에 대한 진상 파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만일 중앙정부의 잘못이 크다면 ‘기본계획’의 부대조건을 삭제하기 위한 지역민과 정치인, 그리고 대전시의 결집된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만약 대전시의 잘못이 크다면 이는 관련 공무원의 책임을 묻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며, 염홍철 대전 시장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를 무시한 채 지역민들의 단합을 호소하는 것은 행정의 실수를 감추려는 의도일 수 있으며, 관련 장관을 불러다 호통치는 것은 지역 정치인들의 무능을 숨기려는 꼼수일 수 있다.

어처구니 없는 ‘과학벨트 사태’ 따져야 할 대전시의회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한 과정과 원인을 철저하게 따지고 파헤쳐야 할 당사자가 바로 대전시 의회이다. 그런데 대전시 의회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전시의 행정을 비판하고 감시해야 할 대전시 의회가 본분을 망각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의회가 시민들을 대신해서 대전 시정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을 포기한다면 의회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대전 시민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대전 시장의 눈치를 보는데 급급하여 침묵한다면 의원들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대전시 의회는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하고 있는가? 도시철도 2호선과 엑스포 과학공원 재창조 사업은 대전시와 지역 주민, 그리고 시민사회단체가 심각하게 이견을 보이고 있는 사업들이다. 대전시가 지역 주민과 전문가,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와 충분히 대화하고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동이 따르지 않고 말로만 소통을 외친 결과이다.

도시철도 2호선 사업은 건설방식과 관련하여 대전시와 시민사회단체가, 그리고 노선에 대해서는 대전시와 대덕구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엑스포 과학공원에 롯데 테마파크가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도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대전시가 충돌하고 있다. 이런 상태로 가면 민선 5기 동안에 이들 사업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표류하면서 쓸데없는 혼란과 갈등만 부추기고 말 것이다.

대전시-시민단체 갈등 상황에 시의히 뭐하고 있나?

대전시와 시민,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간에 심각한 갈등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대전시 의회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관련 상임위원회를 열어 이해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해결책을 고민하여 본 적이 있는가? 필요하면 특위를 만들고 공청회를 열어 시민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적절한 대안을 제시한 적이 있는가?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고 조정하는 기능은 의회의 중요한 기능이다. 대전시와 시민들 사이에서 소통의 창구역할을 해야 하며, 직접적 충돌을 방지하는 완충지대로서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면에서 대전시 의회는 낙제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별법에 의해 사업의 정당성과 적법성이 보장된 국책사업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못한 이유와 그 원인을 대전시 의회는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대전시와 지역 주민, 그리고 시민사회단체가 직접적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을 의회는 팔짱끼고 지켜만 보지 말고 적극적으로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서푼도 안 되는 의회 감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던 열정을 대전 시민을 위해 쓸 수는 없는 것인가? 이젠 그만 깊은 잠에서 깨어나 의회 본연의 역할을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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