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편집국장  
 김학용 편집국장

정치인에게 ‘불출마 선언’은 고통스런 일일 게다. 더 높은 곳이나 전혀 다른 길을 가기 위해, 또는 전략적 선택으로 흔쾌히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면 불출마 선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법적으로 더 이상 출마할 수가 없기 때문이든, 주변 사정이 여의치 않은 때문이든 힘든 일이다.

이준원 공주시장이 어제 불출마 선언을 했다. 그는 재선(再選) 시장이므로 한 번은 더 출마할 수 있는 입장이다. 나이도 40대 후반이다. 이 시장은 그 기회를 스스로 접었다. 그의 불출마 선언은 개인적인 문제로 보인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가 위암에 걸려 큰 수술을 받는 등 고통을 받고 있다”며 “지금 아내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남편으로서 아내가 암과 꿋꿋하게 싸워나갈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도록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모와 아내를 위해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선택

그의 불출마는 병마와 싸우는 아내의 남편으로, 노모의 아들로 돌아가고자 하는 선택이다. 공주시장이라는 막중한 자리에서 물러나 자연인의 한 사람으로 되돌아가겠다는 뜻이다. 그의 불출마 선언은 - 공주 현지기자들의 말을 들어보니 - 일부의 소문처럼 무슨 큰 약점을 잡혀 수습용으로 내놓은 카드는 아닌 것 같다.

몇 가지 점에서 그의 불출마 선언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첫째는 ‘벼슬의 맛’을 한참 보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이를 내려놓기로 했다는 점이다. 아내의 병환 때문이라고 해도 정치인이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오겠다는 결심을 하기란 쉽지 않다.

불출마 회견 내용(노모를 모시고 아내를 돌보며 책을 쓰겠다)으로만 보면 그는 8년을 머물던 공주시장이란 자리에서 그냥 내려오는 것이다. 불출마 선언은 그런 결심을 시민들에게 공표한 것이다. 그게 어찌 쉬웠겠는가? 불출마 회견장에서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는 것도 이해된다.

임기 1년 넘게 남겨 놓고 불출마 선언

불출마 선언이 임기를 1년 넘게 남겨 놓은 시점에서 이뤄졌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기자들이 “임기가 1년도 더 남았는데 레임덕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 시장은 “공주시 공무원의 업무 능력을 믿기 때문에 레임덕 현상이 발행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한 조직의 수장(首長)이면 레임덕을 걱정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재임중 허수아비 같은 존재로 전락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상관이 떠날 것으로 예정되면 아래 사람들에게 명(命)이 잘 먹히지 않을 수도 있다. 리더십이 흔들리고 조직이 불안해질 수 있다. 이 시장의 불출마 선언은 스스로 그런 위험성을 안고 있다.

하지만 이 시장은 그런 걱정은 안 한다고 했다. 허세가 아니라면 자신감의 표현이다. 레임덕에 대한 걱정이 있다면 불출마 선언은 어려운 일이다. 이 시장이 행정을 포기할 정도로 무능한 사람이 아닌 한, 일찌감치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은 그의 리더십을 방증해주는 것이다.

그는 “선거가 1년이나 남은 이 시점에서 미리 입장을 밝히는 것은 내년 지방선거에 훌륭한 인재들이 미리 준비할 시간적 여유를 드리기 위한 것”이라며 “부디 많은 인재들이 공주 발전을 위해 뜻을 세워 준비해 주시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그가 진정한 공주시장이었다면 어찌 공주시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겠는가? 인재들이 떳떳하게 뜻을 세워 출마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일 것이다.

권력의 화신들은 ‘내려오는 법’ 몰라

그의 불출마 선언이 올라갈 줄만 알고 내려올 줄은 모르는 많은 ‘권력의 화신’들에게 고민의 계기가 되면 좋겠다. 사람은 나갈 때보다 물러날 때의 모습이 더 중요하다. 혹시 정승 판서처럼 보낸 세월이 있더라도 ‘물러나는 법’을 몰라 끝까지 버티다가 초라하게 물러난다면 미관말직의 종말보다 나을 게 없다. 또 욕심을 과도하게 부리다가 패자가 되어 쫓겨나오면 얼굴 들고 다니기도 힘들다.

‘염량세태(炎凉世態)’를 걱정하여, ‘양지’에 계속 머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이런 꼴을 당하기 십상이다. 이들에겐 ‘물러나는 법’에 대한 얘기가 다 남들 얘기로만 들리겠지만 고금을 통해 보면 예외가 별로 없다는 점은 알아두기 바란다.

능력이 안 되는 시도지사, 어떻게든 벼슬만 유지하여 권세를 누리려는 시장 군수 구청장, 그래서 재임중 아무 업적도 남기지 못한 사람들은 조용히 떠나는 게 상책이다. 우리 지역에도 이런 인물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퇴계(退溪)는 그의 자명(自銘)에 “나아가 행하는 데는 발이 엉켰으나, 물러나 감추는 데는 굳셌다(進行之? 退藏之貞)”고 했다. 퇴계의 높은 이름은, 평생 나가기보다 물러나기를 좋아한 데서 얻은 것 아닐까? 벼슬 욕심을 도저히 참기 힘든 사람은 이제라도 퇴계를 좀 공부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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