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출신으로 경향신문 사장과 시사저널 사장을 지낸 심상기 씨가 언론인 생활 50년을 담은 책 ‘뛰며 너머지며-올챙이기자 50년 표류기를 ’를 펴냈다.

언론인 심상기가 뛰며, 넘어지며, 다시 일어나 기록하고 몸소 체험한 어제와 오늘의 현대사 단면과 50년 동안 격동의 세월 속에서도 언론인으로, 기업가로서 치열한 삶을 살아온 서울미디어그룹 심상기 회장의 뜨거운 고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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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용

4·19, 5·16 쿠데타가 일어난 격동기에 신문기자 생활을 시작한 심상기 서울미디어그룹 회장의 50년 언론인, 경영인으로서의 삶을 조명한 책이다. 저자의 치열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독자들은 격변하는 한국 현대사의 생생한 현장을 간접체험할 수 있다.

젊은 시절을 언론인으로 활약하다 53세라는 늦깎이 나이에 창업하면서 겪은 시련과 성공신화도 이어진다. 여성잡지 <우먼센스> · 만화잡지 <아이큐 점프>의 화려한 런칭과 함께 <시사저널>·<일요신문>을 펴내면서 당해야 했던 시련과 고통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언론인 심상기가 몸소 체험한 현대사 단면

신문대장을 들고 계엄사령부의 검열을 받으러 오가던〈경향신문〉올챙이 기자 심상기. 그가 기자생활을 시작한 것은 1961년으로 격동의 시대가 막을 올렸을 때였다. 4?19 혁명 직후 신문사에 들어가 곧바로 5?16 쿠데타를 겪어야 했던 것부터 그러했다. 그 이후에도 정치적 격랑은 끊이지 않았다. 경제?사회적으로 엄청난 지각변동이 따랐다. 새내기 시절에는 주로 사회부 기자로서, 중견기자 때부터는 정치부 기자로서 현장에 몸을 던졌다. 그 당시 취재수첩에 깨알같이 적어 놓았던 글씨들이 지금에 이르러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골격을 이루고 있다.

그는 사회부 기자로서 늘 문제의식을 갖고 현장을 살폈다. 운동화조차 사 신지 못한 시골 여자중학교 배구팀의 우승을 다룬 “맨발의 배구팀”, 4?19 시위대 행렬에 앞장섰다가 경찰의 총탄에 맞아 숨진 경기고교생에게 명예졸업장이 수여된 사연을 알린 “4월의 사자들에 명예졸업장”, 배움에 목마른 산골 학생들을 가르치려 찾아온 이화여대 졸업생 이혜숙 선생의 사연을 다룬 “두메에 배움의 새봄” 등이 초창기 기사였다.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으며 기사 속 주인공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중앙일보〉창간멤버로 합류해 정치부 기자로 활동한 저자는 1971년 12월 비상사태 선포 후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의결 현장의 증인으로 호출되기도 했다. 1972년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방북 사실을 알고 기사화하려다 중앙정보부 취조실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기도 하는 등 현대사의 단면을 몸소 체험했다.〈중앙일보〉편집국장 때는 암울한 5공 군사 독재정부에 맞서 싸워야 했다. 한수산 소설가의 신문 연재소설이 필화사건으로 비화되며 작가와 저자는 고초를 겼었다.

기업가 심상기와 서울 미디어그룹

신문사를 퇴사한 저자에게는 ‘내 회사를 차려 보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때 나이 53세, 창업하기엔 늦은 나이였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일단 ‘반드시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사고와 신문사에서 두루 거친 경험이 귀중한 밑천이었다. 잡지를 만들겠다는 목표는 금방 정해졌다.

‘센스 있는 여성, 젊게 사는 주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우먼센스〉창간호가 1988년 8월 선을 보였다. 결과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대박이었다. 월간지로서 재판을 발행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그것을〈우먼센스〉가 창간호부터 해냈다. 여세를 몰아 만화잡지인〈아이큐 점프〉를 창간해 역시 성공적으로 안착시켰고 이를 계기로 8년 동안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시사 주간신문인〈일요신문〉을 인수해 새로 발행하기 시작한 것은 1992년 4월의 일이다. 서울문화사를 설립해〈우먼센스〉등의 여성잡지를 내고는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시사성을 띤 뉴스매체를 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보다 뒤인 1999년에〈시사저널〉을 인수한 것도 그러한 열망 때문이었다.〈일요신문〉과〈시사저널〉의 재창간도 성공적이었다.

이렇듯 서울문화사와〈시사저널〉,〈일요신문〉을 통해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일요신문〉무기정간과〈시사저널〉파업이 그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장로로 있던 순복음교회 안팎에서 떠돌던 의혹들에 대한 진상 해명을 교회측에 요구하고 ‘교사모’ 장로들이 조사한 교회운영 실태를 밝히다가 출교당하기도 했다.

시련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현직에서 서울미디어그룹을 이끄는 심상기 회장, 최근 학습만화 잡지인〈보물섬〉과 국내 최초 격주간 패션잡지인〈그라치아〉를 창간한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저자는 지금까지 어떤 역할이 맡겨지든지 늘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로 살아왔다. 그것이 그를 지금까지 지탱해 온 가장 중요한 기둥이 아니었을까.

-차례

머리글 《뛰며 넘어지며》를 발간하며
추천글 야생마와 경주마 – 최종률
‘외유내강형 충청도 신사’의 올곧은 언론활동 반세기 – 김학준
숨겨져 있는 강골, 반골 기질 드러나 – 최학래
제1장 세월의 목격자
제2장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
제3장 <중앙일보> 시절
제4장 시련의 시절
제5장 출판업무를 책임맡고
제6장 서울문화사를 설립하다
제7장 <경향신문>의 사장을 맡아
제8장 <일요신문>, 그리고 <시사저널>
제9장 여의도 순복음교회 출교사건
제10장 아직도 이루지 못한 일들
부 록 사경을 헤맨 한수산의 고문 실록

책속으로
나는 신문기자로서 일련의 격변기를 일선 취재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겪어냈다.
그러나 정치?사회적으로 예민했던 상황인지라 신문지면에 기사로 싣기보다는 취재수첩의 기록으로만 간직한 것이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 당국은 마치 도가니처럼 끓어오르던 혼란의 흔적을 독자들에게 활자로 널리 전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기자들을 이런저런 구실로 연행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혐의로 구속하기도 했고, 심지어 언론사 통폐합이라는 명목으로 집단 해직시키기도 했다.

내가 언론인으로서 비록 이룬 것은 보잘것없어도 기억을 더듬어서나마 격동의 시대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언론인으로 살아온 입장에서 감히 역사의 증언대에 서는 일말의 책임감도 없지 않다. 몇 번이나 넘어지고,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사실의 기록을 전달해야 한다는 소명감이 뒤늦게나마 되살아났는지도 모른다.
-본문 33쪽

민주주의가 굳건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지금에도 언론의 역할은 필요하다. 언론자유는 모든 자유의 어머니라고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구석구석에 만연한 부정부패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켜내려 언론의 감시기능은 중요하다. 권력에 대한 비판, 사회 부조리의 고발, 정의사회 실현 등이 이루어져야만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언론의 기능과 역할이 더 확대되고 발전할 필요가 있다. 나에게 여력이 있고 건강이 허락된다면 언론인으로서의 길을 계속 걸어 나가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지금까지 해온 일에 계속 매달리고 싶다. 그것이 내 인생의 최대의 성취이자 보람일 것이다.
-본문 427~428쪽


-추천의 말

사회생활을 하며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좌절은 달리 생각하면 그 속에 엄청난 동기부여의 에너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좌절을 적대적으로 보지 않고 우호적,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경영인의 저력이고 타고난 재능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심 형은 역설적으로 성공의 열쇠는 좌절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성공한 비결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리라.
-최동률(전〈중앙일보〉주필,〈경향신문〉사장)

심 선배는 회고록의 마지막에서 자신은 진실탐구와 정의수호 그리고 시시비비의 엄정한 판별이라는 기자로서의 초심을 결코 잊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라 다짐했다. 뭔가 숙연해짐을 느끼면서 동시에 든든함을 느꼈다. 앞으로 더 건강하게 생활하면서, 새로운 언론환경에 걸맞은 언론경영을 시작하겠다는 그 꿈을 이루길 기원한다.
-김학준(전〈동아일보〉사장, 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그이가 언론인 생활 50년을 맞이했다는 게 이해가 된다. 사실 언론인이라는 직업, 언론계라는 동네가 좀체 50년씩 사람을 붙잡아두는 곳이 아니다. 더러는 양지를 좇아 옮겨가고, 더러는 대들다가 쫓겨나고, 또 더러는 술을 너무 퍼마신 나머지 요절하고…. 그래서 50년을 버틴 현역 언론인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희귀인종에 속한다. 심 회장처럼 언론계의 노른자위는 다 거친 팔십 줄 노인이 아직도 50년 현역이라면, 그 미소와 싸움기질, 겉으로 웃으며 속으로 창끝을 벼리는 자질이 그 지속의 밑천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최학래(전〈한겨레신문〉사장, 현 전국재해구호협회 회장)


-지은이 심상기(沈相基)는:

1936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경향신문〉사회부·정치부 기자를 거쳐,〈중앙일보〉정치부 부장·편집국장·출판담당 상무로 지냈다. 이후〈경향신문〉사장을 역임하였다. 1988년에 서울문화사를 설립하여〈우먼센스〉·〈아이큐 점프〉를 창간하였고, 1994년에는 유선방송국인 서서울케이블TV를 창설하였다. 1997년부터 7년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시사저널〉,〈일요신문〉을 인수하여 재창간에 성공했다. 파업과 무기정간 등의 시련을 겪기도 했다. 현재 서울미디어그룹(서울문화사,〈시사저널〉,〈일요신문〉)에서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최근 학습만화 잡지인〈보물섬〉과 국내 최초 격주간 패션잡지인〈그라치아〉를 창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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