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상선 전 홍성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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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선 전 홍성군수

필자가 2000년 초 홍주(洪州)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평소 느껴왔던 홍성의 과거사 현대사를 진솔하게 정리하여 홍주(洪州)의 사서(史書)인 ‘홍주대관(洪州大觀)’을 발간하면서 홍주 1000년을 확인하였고 항상 앞장서서 자신있게 내고향 홍성을 자랑하였다.

홍주(洪州) 이름을 찾고자 주장했었다가 반대하는 자들이 있어 홍성이 시(市)가 될 때까지 미루고 말았지, 홍성을 공식 방문하신 정원식 국무총리께도 건의드렸고 동석한 장차관들도 홍주 이름을 찾는 게 당연하다고 공감을 하였었다.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고향을 떠나 10여 년이 지나도 애향심에는 변화가 없는데, 작년 2012년은 홍주라는 지명이 1000년이 되고 역사의 필연인지 충청남도청이 홍주 땅에 들어오는 뜻 깊은 해였다.아마도 전국이 떠들썩하게 각종 기념행사들이 펼쳐지리라 기대했었지만 아무 흔적도 없이 지나쳐서 섭섭한 마음에 잃어버린 1000년 홍주역사를 개탄한다라고 홍주신문에 기고를 하였다.

그랬더니 그 소리가 쓴 소리로 들렸던지 홍주 1000년은 6년이 모자라서 2018년이 1000년이 되는 해라고 아랫것들의 전결로 처리된 문서를 홍성군에서 받고 감히 1000년 역사에 먹칠하는 아이들에게 의분을 금할 수 없었다.

내포 신도시에 내포가 없다(대전일보)고 했는데 없는 내포에 홍주가 아닌 내포 귀신이 들어와 설쳐대고 이제 와서는 뒤늦게 홍주 1000년이 아니라고 하는 저의는 무엇인가? 홍주 역사를 규명하려는 중대한 사안을 철없는 아랫것들에 맡기고 오불관언하는 그들은 진정 홍주 사람이 아니고 내포 바닷가에서 주워온 자들이 아닌가 말이다.

6년이 부족하여 1000년이 아니라는 주장들

소 돼지를 많이 키우다 보니 홍주 역사가 소 돼지 역사로 보이는지 지극히 오만 불손한 작태이다. 홍주라는 지명이 생긴 지 1000년이라고 했는데 6년이 부족하여 2018년에 1000년이 된다고 확증도 없는 단순한 추정만 가지고 자랑스런 1000년 역사에 먹칠하는 아이들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한다.

홍주 지명 사용 연대가 기존의 1012년이 아니고 1018년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 자문을 요청한 박종기 교수님 이진한 교수님 윤용혁 교수님께서 내놓은 1018년을 검토해 보니 이해할 수 없는 부정적인 의사가 있어 이의를 제기하면서 진실을 다시 규명해주기 바란다.

박종기교수님은 고려 현종9년(1018년) 홍주의 영역이 크게 확장되면서 군현 명칭도 운주(運州)에서 홍주(洪州)로 변경되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했고, 이진한교수님은 조선후기에 편찬된 자료이지만 대동지지의 찬가 김정호가 홍주로 바뀌었다는 1018년이 홍주 지명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1018~1041년)년 범위 내에 포함되므로 1018년을 최초 사용년도라고 해도 될 것 같다 했다.

윤용혁 교수님은 운주가 홍주로 개칭된 시기는 분명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현종3년(1012년)이나 현종9년(1018년)에 혼선이 있었다. 다만 현종3년(1012년)에 운주에 파견된 지방관 명칭이 도단련사가 지주사로 바뀐 해이고 홍주로 지명이 바뀐 것은 그 뒤에 고친 것이라고 하면서 시대가 다른 대동지지에서 홍주 지명설을 명문화해서 이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일단 현종9년(1018년)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고 설명하였다.

1018년은 홍주 지명 사용은 추정일 뿐 근거 될 수 없어

결론적으로 자문에 응해주신 세 분 교수님의 자문 내용을 보면 모두가 1018년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였고 다만 그렇게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박종기교수)

“1018년을 최초 사용년도라고 해도 될 것 같다”(이진한 교수), “1018년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윤용혁 교수) 라고 막연하게 추정만 함으로서 1018년이 홍주 지명 사용 년도라고 한 주장은 추정만 할 뿐이고 근거가 될 수 없으니 당장 취소하기 바라며 수고해주신 자문 교수님들께도 양해를 구한다.

필자가 홍주대관을 만들 때 홍주대관 265쪽(고려사 편)에서 윤용혁 교수님이 집필한 내용 중에서 홍주라는 지명이 현종3년(1012년) 막연하게 “뒤에 지금 이름(洪州)으로 고쳤다”는 문안을 보았다. 그리고 264쪽에서 홍주라는 지명은 고려 초부터 등장하는 이름이기는 하나 홍주는 그 이전부터 운주(運州)라는 이름 이었다고 했다.

홍주라는 이름 처음 사용된 것은 927년 이전

자문교수님들이 제시한 문안 중 태조실록에서 태조 10년(927년)왕(王)이 운주로 들어갔다운주는 지금의 홍주다.(이진한 교수) 王이 운주(運州)로 들어갔다운주는 지금의 홍주다 주석(註釋)을 달았다(박종기교수)와 같이, 이진한 박종기 교수님이 태조실록에서 확인한 대로 운주에서 홍주로 개칭된 것을 확인했다. 따라서 개칭된 시기가 태조 10년(927년)으로 명기된 것을 보아서 홍주(洪州)라는 지명이 처음 사용된 것은 적어도 927년 이전부터 존재하거나 사용된 것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홍주라는 지명이 처음 사용된 것을 놓고 1018년을 근거도 없이 결론지어 통보한 우매한 처사를 강력히 질타한다. 당장 취소하기 바라며 1000년 홍주역사에 먹칠하는 자들아 6년 뒤에1000년이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명한 군민들이 주시하고 있다. 수준 이하의 자질을 한탄할 것이다. 적어도 927년 이전부터 홍주가 있었다는 사실이 태조실록에서 주석까지 붙여가며 기록된(운주는 지금의 홍주다) 홍주(홍주) 이름의 사용 년대를 규명하지도 못하면서 갑자기 1018년을 주장할 수 있나?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기관에 속해 있거나, 자타가 공인하는 사계의 권위자를 찾아 사용 연대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군수가 사명감 가지고 명망있는 학자들에 자문받아야

필자의 견해로는 우선 국사편찬위원회,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연구재단 독립기념관, 문화재청 등 수많은 학자들을 포용하고 있는 기관장의 추천을 받아 아랫것들에만 맡기지 말고 군수가 사명감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객관적이고 명망있는 학자들을 선정하여 고향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1996년대에 출간된 세계의 역사를 애니메이션(Animation)화하여 제작된 책으로 세계사(동?서양,한국)를 연대별로 정리한 역사책이 아주 좋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류재택, 조상제 박사도 있다.

역사의 진실은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고는 추정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으나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근거도 없이 추정한 사실만 가지고 쉽게 결론을 낸 것은 지극히 위험하고 무식한 오만 불손의 태도가 아닌가?

4346년이 반만년에서 654년 부족하여 ‘반만년’을 고쳐야 하나

혹시 이런 경우는 할 말이 있겠는가 묻고 싶다. 우리가 부르는 ‘조국 찬가’ 중에 반만년 역사 위에 찬란하다 우리문화라고 했는데 금년이 4346년이고 반만년에서 654년이 부족하니 반만년을 고쳐야 하겠는가?

광복절노래에서이날이 40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했는데 1945년 해방 되었으니 40년이 아니라4~5년이 부족하니 35~36년으로 고쳐야 하지 않겠나. 자네들 계산이라면 뜯어 고쳐야 할 것 같다.

홍주역사 1000년이라고 자랑했는데 1000년 기념행사 같은 것은 제쳐놓고 겨우 한다는 얘기가 6년이 부족하니 근거도 없이 2018년이 1000년이라고 주제넘은 결론을 보내주다니, 홍주 사람이 아니고 내포 바닷가에서 주워온 자들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더 이상 홍주를 부끄럽게 하지마! 홍주목사의 관할이던 예산에서는 10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지 않는가.

역사의식이 없으면 눈앞에서 사라져 군민들의 마음이나 편안하게 해주구려. 군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군수나 도의원 군의원 모두 함께 성토하여 주시기 바라며, 우리 군민들이 자랑하는 내 고향 홍주 역사에 더 이상 먹칠하지 말도록 경고를 보내며 설명이 필요하면 아무 때나 불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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