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계획에 부지매입비 한 푼도 반영 안돼

  정용길 충남대 교수  
정용길 충남대 교수

2013년 추경에 과학벨트 부지매입비가 300억 책정된 이후에 지역에 논란이 뜨겁다. 금액의 규모도 문제지만 ‘과학벨트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부지매입 등은 유관기관과 협의해 조속 추진한다’라는 부대조건 때문이다. 

대전시와 새누리당은 이로써 과학벨트사업 추진에 탄력이 붙을 것이기 때문에 이를 환영하는 분위기이며, 민주당과 지역 시민단체는 부대조건이 족쇄가 되어 앞으로 부지매입비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혼란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박근혜 후보 선지원 약속한 과학벨트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면서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째는 왜 무엇 때문에 중앙정부에서 이와 같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과학벨트 사업은 대통령 공약사업으로서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누누이 차질 없는 건설을 다짐했던 사업이다. 선거 막판에는 ‘국비를 선지원해서라도 정상적인 추진’을 약속했다.

그리고 지자체의 분담금을 요구하는 공모사업도 아니고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갖춘 지역을 선택하여 중앙정부가 지정한 국책사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벨트로 지정된 지역은 국가가 소유 관리하는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되어 운영하게 되어 있다.

또한 과학벨트 사업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있고, 그에 따라 2011년 12월에 교육과학기술부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본계획(2012~2017)’을 확정하여 발표한 사업이다.

과학벨트 기본계획에 부지매입비 한 푼도 반영 안돼

따라서 특별법과 기본계획에 따라서 충실하게 사업을 집행하면 되는 것인데 이제 와서 부지매입비 문제로 중앙정부가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얼마나 충청민을 무시하면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인가 하는 분노와 자괴심이 들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 이유를 알기 위해 관련 법령과 자료를 찬찬히 검토하여 보았다. 검토하는 과정에서 두 번째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중앙정부가 불합리하게 보이는 주장을 반복해서 하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청사진이라 할 수 있는 ‘기본계획’ 53쪽을 보면 소요예산이 명시되어 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6년간 총 5조 1,700억이 필요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안에는 과학벨트 관련 부지매입비가 한 푼도 반영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친절하게 각주의 형태로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 가속기 부지매입비는 거점지구 개발 사업 시행자 지자체 등 유관기관과 지속적으로 협의’한다고 되어 있다.

허술한 기본계획 나올 때 대전시 지역 정치인들 뭐했나?

‘기본계획’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공청회도 거쳤을 것이고, 관련 기관과 심도있는 논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엉터리 ‘기본계획’이 나올 수 있도록 방치한 대전시는 도대체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또한 지역 정치인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길래 이런 허술한 ‘기본계획’이 나오도록 방치했단 말인가?

그리고 이제 와서 대전 시장과 대전 지역 국회의원들의 만남(13일), 4대 광역시도지사와 시도당 위원장 회동(14일), 충청권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당정 조찬간담회(15일) 등의 행사를 통해 뒷북이나 치고 있다는 말인가?

이런 상황이라면 누가 장관이 되더라도 그 사람은 ‘기본계획’에 따라서 대전시와 부지매입비를 협의하여 분담비율을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이를 어기고 중앙정부가 100% 부담하게 되면 스스로 행정의 일관성을 훼손한 것이고, 담당 공무원은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래부 장관 윽박지른다고 예산 반영될까

그런 상황에서 국회의원 17명이 모여서 미래부 장관을 윽박질러 얼떨결에 부지매입비를 100% 국고지원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오전에 받아냈지만 오후에 장관이 이를 다시 번복하는 촌극으로 발전한 것이다. 설령 미래부가 전액 국고지원으로 기획재정부에 올린다 하더라도 그대로 국가예산에 반영되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과학벨트 사업이 이러한 혼란을 겪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 대전시의 책임이다. 상식과 어긋나는 내용이 ‘기본계획’에 포함되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당당한 논리적 근거를 갖고 중앙정부에 저항해야 했으며, 만일 힘이 부친다면 지역 정치인들의 협조와 지역민들의 도움을 청해야 했다.

지역 정치인들 역시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그대로 방치하여 두었다가 이제 와서 호들갑을 떠는 것은 책임의 소재를 피하는 것이며, 문제 해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적 쇼로 보일 뿐이다.

민관정협의체 놓고도 우왕좌왕하는 모습 안타까워

겨우 300억을 추경에 반영했다고 국회의원들끼리 서로 수고했다고 격려하는 모습이 우습게 보인다. 장관을 불러다 호통치고 억지 답변을 받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충청권 의원들과의 간담회가 끝난 후 최문기 미래부 장관은 출입기자들과 만나 자신이 '지자체 일부 부담이 원칙'이라고 했으나 의원들이 전액 국비부담 약속을 할 때까지는 자리를 뜰 수 없다고 붙잡아 (어쩔 수 없이) 발언했다고 밝히는 것도 참으로 딱한 모습이다.

지금이라도 ‘기본계획’의 부당함을 밝혀 이를 바르게 수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문제를 풀어가는 정도(正道)이며, 과학벨트의 정상적인 추진을 담보하는 길이다. 여기에는 여와 야가 있을 수 없으며 초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대전시의 결연한 의지와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 문제를 풀어갈 단초가 될 수 있는 ‘충청권 민관정협의체’를 구성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에서, 더구나 이를 주도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해야 할 대전 시장이 뒤로 빠지는 모습에서 희망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당신들은 진정 이 지역을 사랑하는 지도자들인가? 사랑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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