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의 고전(古典)에서 길을…] 109

<여설> 부자자효(父慈子孝)라 하였다.
『예기』에 나오는 말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뜻이다.
5월에는 자식에 대한 사랑의 의미가 담긴 ‘어린이날’과 부모에 대한 효도의 의미가 담긴 ‘어버이날’이 있으니 바로 5월은 ‘부자자효의 달’이라고 그 의미를 부여해도 좋을 듯하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녀야 할 지극한 도리는 인(仁) 즉 ‘어짐’인 것이다. ‘어짐’ 즉 ‘어질다.’라는 것은 나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남이라 할 때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남은 부모와 자식이 아니겠는가.
부모와 자식 간에 있어서 인(仁) 즉 ‘어짐’이란 ‘부모는 자식을 위하고 자식은 부모를 위하는 것’ 다시 말해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부자자효’(父慈子孝)라 할 수 있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어버이의 자식인 동시에 자식의 어버이 이기 때문에 자식을 사랑으로써 길러야 함과 동시에 어버이를 효도로서 봉양하여야 하는 ‘사랑’과 ‘효도’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 수 없는 똑같은 인(仁)의 이치 즉 ‘어짐’의 이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불편한 진실이 있다.
누구나 ‘부모에 대한 효도 보다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더 크고 지극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식에 대한 사랑은 충분하지만 부모에 대한 효도는 늘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동물의 본능이요 인간의 속성으로서 인류가 탄생된 이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불편한 진실이 되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공자는 ‘네 자식 사랑하는 만큼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합리적인 방법을 제시 한 것이지 무조건 일방적인 효만을 강요한 것은 아닌 것이다.

공자와 제자와의 대화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인 ‘재여’가 스승인 공자에게 “왜 부모의 상을 3년간 모셔야 합니까, 3년은 너무 길지 않습니까.”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부모는 너를 낳아 기르느라 적어도 3년간은 아무것도 못하고 너를 보살펴 주셨지 않느냐 그러하니 너도 너의 부모가 돌아가시면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3년 동안 지극 정성으로 너의 부모상을 모셔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이 3년 상의 이치야 말로 어느 한편에 많거나 적음이 없이 자식을 사랑한 3년만큼 부모에게 효도하는 3년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요즈음 세태는 갈수록 부모에 대한 효도와 자식에 대한 사랑의 격차가 극심해지는 것 같다. 다시 말해 갈수록 부모에 대한 효도는 점점 멀어지고 자식에 대한 사랑은 집착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오죽하면 오육십 대를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버림받는 첫 세대라고들 할까.

부모에 대한 효도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나친 요즈음의 세태를 비꼬는 말 몇 가지를 소개 해 보겠다.

? 어머니 품 안에는 아홉 자식 있을 곳이 있으되
   아홉 자식의 집 어디에도 한 분 어머니 있을 곳이 없네.

? 제 자식의 오줌똥은 맨손으로 주무르나 부모님의 기침가래 불결하여 밥 못 먹네.

? 애완동물 병이 나면 가축병원 달려가도 늙은 부모 병이 나면 그러려니 태연하고.

? 열 자식을 키운 부모 하나같이 키웠건만 열 자식은 한 부모를 귀찮스레 여기네.

? 자식위해 쓰는 돈은 아낌없이 쓰건 만은 부모위해 쓰는 돈은 하나 둘씩 따져보네. 
  
그런데 변한 것은 부모위한 자식의 효심만 변한 것이 아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도 세태에 따라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먼저 고전적의미의 자식위한 부모의 마음을 나타내는 글을 보자.
‘내 목숨이 있는 동안은 자식의 몸을 대신 할 것을 원하고 내 죽은 뒤에는 자식의 몸을 지킬 것을 원한다.’ 즉 살아서나 죽어서나 오로지 자식 위해 희생하는 것이 고전적의미의 자식위한 부모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번에는 자식에게 바라는 요즈음 세태의 부모의 마음을 나타내는 ‘성불사’ 주지 스님의 글을 소개 하겠다.

? 아들아! 결혼 할 때 부모 모시겠다는 여자 택하지 마라.
너는 엄마랑 살고 싶겠지만 엄마는 이제 너를 벗어나 엄마가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단다.
엄마한테 효도하는 며느리를 원하지 마라.
네 효도는 너 잘사는 걸로 족하거늘……,

? 아들아! 네가 가정을 이룬 후 어미 애비를 이용하지는 말아다오.
평생 너희 행복을 위해 애써온 부모다.
이제는 어미 애비가 좀 편안히 살아도 되지 않겠니? 너희 힘든 건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다오. 늙은 어미 애비 이제 좀 쉬면서 삶을 마감하게 해 다오.

? 아들아! 우리가 원하는 건 너희들의 행복이란다.
그러나 너희도 늙은 어미애비의 행복을 침해하지 말아다오. 손자 길러 달라는 말 하지 마라.
너보다 더 귀하고 예쁜 손자지만, 매일 보고 싶은 손자들이지만 늙어가는 나는 내 인생도 중요하더구나.

? 오종남 서울대 교수는 ‘인생의 3대 바보’를 ‘손자, 손녀 보느라 스케줄 변경하는 부모’ ‘상속세 때문에 재산 물려주고 용돈 타 쓰는 부모’ ‘애들 방 모자랄까 봐 집 늘리는 부모’라 하였다.
그리고 진정한 자식사랑은 ‘늙어서 자식에게 짐이 안 되는 것.’이라 하였다.

? 그렇다, 위의 글들을 살펴보았을 때 부모는 자식을 위하고 자식은 부모를 위하는 부자자효(父慈子孝)의 도리도 이제는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오늘날의 ‘부자자효’ 도리는 어떤 것일까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다음호에 계속)

- (인문교양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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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충남 교수는 서예가이며 한학자인 일당(一棠)선생과 '정향'선생으로 부터 한문과 경서를 수학하였다. 현재는 대전광역시 평생 교육문화센터와 서구문화원 등 사회교육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 명심보감과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금강일보에 칼럼 ?김충남의 古典의 향기?을 연재하고 있다.

또 어려운 한문이나 경서의 뜻을 쉽고 논리적이고 현대적 정서에 맞게 강의 할 수 있도록 하는 강의서를 집필중이다(김충남의『명심보감』, 김충남의『대학』, 김충남의『논어』, 김충남의『맹자』, 김충남의『중용』, 김충남의『생활한자』, 김충남의『고사성어』) 손전화 010-2109-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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