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의 고전(古典)에서 길을…] 108

<원문> 예(禮)는 與其奢也(여기사야)론 寧儉(영검)이요. 喪(상)은 與其易也(여기이야)론
            寧戚 (영척)이니라.                                                                <논어 • 팔일편> 

<풀이> ‘예’ 특히 길례(吉禮)는 사치스럽게 하기 보다는 차라리 검소하게 해야 하고 상례(喪禮)는
            형식적인 겉치레에 치우치기 보다는 진심으로 슬퍼해야 하느니라.

<여설> 위의 원문 내용은 노나라의 위정자인 ‘임방’이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예’에 대해 자문을 구한 내용의 한 부분이다.
위의 문장속의 ‘예(禮)’는 ‘의례’(儀禮)를 뜻한다.
 ‘의례’란 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식 즉 의식(儀式)을 말한다.
‘임방’은 당시에 권세가 집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관혼상제를 비롯한 각종 의례가 호화롭고 번거로운 형식과 겉치레에 치중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걱정을 하면서 예의 전문가인 ‘공자’에게 “‘예’ 즉 ‘의례’의 근본이 무엇이냐”고 자문을 구한 것이다.

이에 ‘공자’는 ‘임방’에게 “ ‘예’ 특히 혼인의례와 같은 길례(吉禮)는 사치스럽게 하지 말고 검소하게 하고 상례(喪禮)나 제례(祭禮)는 지나친 형식이나 절차에 치중하지 말고 진정한 애도와 추모의 마음을 다하여야 한다.”라고 답을 하여 준 것이다.
 ‘예’(의례)의 근본은 인(仁)의 마음이다.
 다시 말해 혼례는 ‘축복의 마음’ 상례는 ‘애도의 마음’ 제례는 ‘추모의 마음’을 다하는 것'이 인(仁)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자칫 잘못이해 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각종 의례를 행하는데 있어서 근본 즉 인(仁)의 마음을 중시하라고 해서 형식과 절차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근본인 인(仁)의 마음과 함께 그에 걸맞게 형식과 절차도 중요시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 의례를 행하는 근본인 인(仁)의 마음과 의례를 행하는 형식절차 모두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근본을 중시하라는 것은 의례를 행하는 형식과 절차 하나하나에 인(仁)의 마음이 정성껏 깃들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산신제나 조상제사를 지내려 할 때는 며칠 전부터 금욕생활을 하거나 음식을 가리고 또 제물 준비에 정성을 다하는 것은 인(仁)의 마음을 중시하는 이치일 것이다.
지난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관혼상제의 풍습이 지나친 형식 절차와 허례허식에 치우쳐 우리 생활에 엄청난 경제적, 시간적 폐단을 초래하여왔다.

그래서 이러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 의례를 간소히 하는 ‘가정의례준칙’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50여년이 지난 오늘날의 ‘의례’의 모습은 어떠한가. 50여 년 전까지의 ‘의례’의 모습이 지나친 형식절차위주의 모습이었다면 50여년이 지난 오늘날의 의례의 모습은 근본인 인(仁)의 마음이 많이 경시되고 왜곡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남에게 과시하거나 체면치례를 위한 의례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 연휴에 여행지에서 조상의 차례를 지내고 인터넷 제사를 지내는 모습, 상주나 조문객 모두 진정한 애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는 장례식장 모습, 진정한 축하와 축복의 마음 보다는 마치 봉투내고 밥 먹는 예식장의 모습 등은 근본인 인(仁)의 마음이 경시되거나 왜곡된 오늘날의 ‘의례’모습이 아닌가 한다.

공자께서는 의례를 행하는 형식이나 절차에 있어서 반드시 옛날에 정해진 법이나 원칙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그때그때의 시류와 형편에 맞게 간편하고 검소하게 하여도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의례의 근본인 인(仁)의 마음이나 정성만큼은 그대로 지켜나가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요즈음 장례식장에 가면 대체적으로 상주(喪主)가 전통적인 ‘굴건제복’ 대신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착용하고 있다.
이는 시대의 형편과 시류에 의함이기 때문에 도리를 크게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공자께서 오늘날에 계셨다면 ‘괜찮다.’고 했을 것이다.
또한 제사를 지낼 때 제주(祭主)가 맨 처음에 향을 피우고 모사그릇에 술을 따르는 강신(降神)의식을 행한다.
여기에는 하늘과 땅에 계신 조상의 혼백을 부르는 의미가 있다.
이처럼 제사를 비롯한 모든 ‘의례’의 절차나 법에는 그 나름대로의 예로부터 내려오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절차나 법이 귀찮고 복잡하다하여 자기의 편리에 맞게 함부로 줄이거나 없애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의례’에 소용되는 제수나 물품은 그때그때 시류나 형편에 맞게 검소하게 할 수는 있겠으나 의례의 법이나 절차에는 천지의 이치가 담겨 있기 때문에 자기 편리에 맞게 함부로 고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며 또한 인(仁)의 마음 즉 정성이 부족한 것이기에 공자께서는 이는 ‘옳지 않다.’했을 것이다.

▲ 그렇다, 혼례식과 같은 길례(吉禮)는 가능한 검소하면서 축복의 마음을 다 하여야 할 것이고 상례(喪禮)와 제례(祭禮)는 정성이 깃든 형식 절차 속에 진정한 애도와 추모의 마음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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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충남 교수는 서예가이며 한학자인 일당(一棠)선생과 '정향'선생으로 부터 한문과 경서를 수학하였다. 현재는 대전광역시 평생 교육문화센터와 서구문화원 등 사회교육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 명심보감과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금강일보에 칼럼 ?김충남의 古典의 향기?을 연재하고 있다.

또 어려운 한문이나 경서의 뜻을 쉽고 논리적이고 현대적 정서에 맞게 강의 할 수 있도록 하는 강의서를 집필중이다(김충남의『명심보감』, 김충남의『대학』, 김충남의『논어』, 김충남의『맹자』, 김충남의『중용』, 김충남의『생활한자』, 김충남의『고사성어』) 손전화 010-2109-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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