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편집국장  
 김학용 편집국장

박근혜 대통령은 과학벨트를 적어도 지금 당장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싶지 않은 게 분명해 보인다. 박 대통령은 주초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과학벨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코레일, 과학벨트 등 여러 가지 갈등 확대를 막아야 하는데, 정부가 너무 나서지 않고 조정이 되도록 지켜볼 필요도 있다. 너무 처음부터 나서기보다는 상황을 잘 판단하셔서 조정을 통해 갈등이 수습되도록 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과학벨트를 ‘갈등 사안’으로 보고 있고, 따라서 ‘조정’이 필요한 사업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뜻인데, 이는 말이 안 된다. 과학벨트는 ‘갈등 사안’이 아니다. 과학벨트를 놓고 누가 누구와 갈등을 빚고 있다는 말인가? 과학벨트 입지는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대전으로 선정된 만큼 지역적 갈등 사안도 아니다.

과학벨트를 갈등 사안으로 보는 대통령

박 대통령은 부지 매입비를 정부가 전액 부담해야 하느냐 지자체인 대전시도 일부 분담해야 하느냐를 놓고 정부와 대전시 두 기관 사이에 ‘갈등’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 사이는 기본적으로 갈등할 수 있는 대등 관계가 아니다. 의견 차가 있는 경우에도 99%는 정부가 칼자루를 쥔 싸움이어서 지자체는 정부를 상대할 수가 없다. 과학벨트도 지자체가 정부와 갈등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이 문제를 ‘갈등 사안’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진정 과학벨트를 ‘갈등 사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박 대통령은 “‘일단은’ 과학벨트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는 말라”는 메시지다.

박근혜 정부가 주창하는 ‘창조경제’에 대한 해석이 구구했으나 “과학기술과 ICT(정보통신기술) 융합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게 박 대통령 자신의 설명이었다. 창조경제를 위해서라도 과학벨트는 박근혜 정부가 하루속히 시작해야 할 사업이다.

수 조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중대 사업이 곁가지인 지방자치단체와의 부지 매입비 분담 문제로 겉도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왜 과학벨트를 가로막고 있는 것인가? 박 대통령이 이렇게 나오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이 문제를 작년 대선 때부터 계속돼온 ‘정치적 갈등 사안’으로 보고 있다. 정부와 대전시의 부지비용 분담 문제가 아니라 ‘박 대통령 자신과 염홍철 시장 사이의 문제’가 본질이라고 본다. 작년 대선 때 ‘과학벨트’는 캐스팅 보트 지역인 대전 충청권 공약 가운데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사이에 가장 확실한 입장 차를 보인, 지역에선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문제였다.

‘과학벨트 전액 지원 약속’ 거부했던 박근혜 후보

문재인 후보는 부지 비용을 포함한 ‘전액 국고지원’을 약속했으나 박 후보는 ‘전액 지원’ 약속은 하지 않았다.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과 비판에도 전액 지원 약속은 끝내 거부했다. 박 후보로선 한 표가 아쉬운 절박한 상황인 데도 대전시민과 시민단체의 전액지원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서 염 시장은 ‘대전의 이익’을 내세우며 시장으로서 ‘특정 후보 지지 가능론’을 설파했다. 문재인 후보를 대전역에서 공개적으로 만나 과학벨트 전액 지원 약속도 받아냈다. 한 표가 아쉬운 박 후보도 염 시장을 찾아가야 했지만 그는 오히려 반대로 행동했다. 새누리당과 선진당이 합당한 이후에도 박 후보는 염 시장을 만나지 않았다. 합당 후, 대전시청으로 한번 방문해달라는 염 시장 측 요청도 거부했다고 한다.

박 후보는 대선 때 염 시장의 행보를 ‘권력 줄타기’로 보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비록 한 표가 아쉬운 상황이지만 염 시장의 요구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작심했을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박 후보가 ‘과학벨트 전액 국고지원 약속’은 끝내 거부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벨트 문제는 대통령의 말처럼 ‘중앙-지방 간 갈등 사안’이 아니라 ‘정치적 갈등의 산물’이다. 박 대통령과 염홍철 시장의 문제다. 이는 필자가 의심하는 바이지만, 이것 말고는 창조경제를 내세우는 박근혜 정부가 그 엔진이 될 과학벨트를 이런 식으로 대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과학벨트는 ‘창조경제 엔진’.. 공전시킬 이유 없는 정부 도대체 왜?

미래부 차관은 “모든 국책사업에 매칭펀드 개념이 도입되고 있다”는 말로 과학벨트 부지 매입비용 대전시 분담의 타당성을 언급했다고 하는데, 과학벨트는 지방비 분담을 조건으로 공모한 사업도 아니다. 만약 ‘매칭펀드 원칙’이 중요한 조건이라면 가난한 지방은 돈이 많이 드는 국책사업은 아예 신청할 수도 없게 된다. 그럴 경우 웬만한 국책 사업은 돈 많은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다 하게 될 것이다. 말이 안 되는 얘기다.

혹시, 박근혜 정부가 MB의 ‘세종시 수정안’처럼 과학벨트의 대전 입지 결정 자체를 흐지부지시켜서 다른 지역으로 옮기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얘기인가? 이것은 더욱 아니다. 수정될 뻔한 세종시도 살려낸 ‘원칙주의자 박근혜’라는 점에서 보면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또 하나, 대선에서 박 후보의 득표율에서 대전이 서울을 제외한 최저 지역이라는 점을 서운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과학벨트 브레이크 걸기’는 선거 후가 아니라 선거 과정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과학벨트 부지비용의 대전시 분담 요구는 본래 MB 정부에서 나왔다. MB가 대전시에 부지 매입비 분담을 요구한 것은 ‘세종시 수정’을 전제로 충청권에 주려던 것을 대덕특구가 있는 대전에 어쩔 수 없이 주면서 달았던 불만의 ‘토씨’였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는 MB와는 상관없는 입장이었고 대통령이 된 지금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염홍철 시장의 ‘대선 정치’에 책임 묻는 것인가?

그런데도 과학벨트에 관한 한 MB와 입장이 같아진 것은 ‘정치적 원인’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과학벨트와 함께 갈등의 사례로 들었던 ‘코레일’ 문제는 이 사업의 책임자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MB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언급한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과학벨트로는 염 시장의 ‘대선 정치’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과학벨트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과 염홍철 시장의 정치적 문제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박 대통령과 염 시장의 ‘편치 않은 사이’가 대선 이후에도 달라졌다는 정황은 아직 없어 보인다. 과학벨트 말고. 염홍철 시장의 핵심 사업인 롯데테마파크도 박근혜 정부 들어 제동이 걸리는 듯한 모습도 이런 정황들을 뒷받침한다.

이런 상황은 염 시장으로선 큰 부담일 것이다. 염 시장은 ‘대선 정치’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감수해야 할 처지다. 두 사람의 정치적 관계는 알 바 아니나, 그것이 지역의 최대 현안을 좌우하는 문제인 만큼시민들 누구라도 오불관언할 수가 없다. 대전시민으로선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 국책사업 ‘정치적 볼모’로 쓴다는 의구심

대통령과의 문제를 시장이 해결하기는 어렵다. 대통령이 풀어야 한다. 그 방법은 지역 정치권에서도 고민하고 도와줘야 할 것이다. 중대한 국책사업을 공전(空轉)시키는 것은 대통령 자신에게도 손해다. 더구나 그 사업은 창조경제의 핵심 아닌가?

대통령이 지역 현안을 ‘정치적 볼모’의 수단으로 쓰고 있다고 의심 받아선 안 된다. 박 대통령은 대전시민들에게 “나는 지난 대선 때 과학벨트 전액지원을 약속한 바 없는데 무슨 말이냐”고 답할지 모른다. 박 후보는 “(나중에 지방비를 받는 식으로)국비를 우선적 지원이라도 하겠다”는 약속은 했었다.

박 대통령이 맘만 먹으면 자신의 말을 뒤집지 않고도 얼마든지 ‘전액 지원’으로 추진할 수 있다. 대통령은 하루속히 과학벨트 사업을 시작해서 대한민국 창조경제의 엔진으로 만들어야 한다. / 김학용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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