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어린이들 후원하는 시각장애인 김영묵 씨

“안마와 침술을 배우러 대전맹학교로 가는 학교 버스를 탔는데 초등학생 시각장애 어린이 몇 명이서 초코파이가 네모라느니, 세모라느니 옥신각신하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아이들은 초코파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도 보질 못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마흔일곱 살 김영묵 씨는 올해로 시각 장애인 4년차다. 정확히 말하면 아들이 11살 때까지 얼굴을 본 후 14살이 된 지금은 보질 못한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의 교복 입은 모습을 상상만 했지 볼 수 없으며 한창 성장기인 아들의 훌쩍 자란 모습이 궁금하기만 하다.

김영묵 씨 망막색소변성증으로 43살에 시력 잃어

김영묵씨
김영묵씨

33살에 결혼한 김 씨는 결혼한 지 얼마 후 망막 기능이 소실돼 서서히 시력을 잃는 망막색소변성증이 생겨 43살에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다니던 직장도 잃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된 김 씨를 절망감에서 일으켜 세워준 게 초코파이 사건이다.

“함께 맹학교 버스를 타는 시각장애 어린이들이 초코파이 모양이 네모인지 세모인지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걸 들으며 그래도 나는 초코파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봤고 네모, 세모, 동그라미가 어떤 모양인지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있으니 행복한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비록 아들의 현재 얼굴은 못 보지만 아들이 태어나던 순간과 아장아장 걷던 모습,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얼굴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김 씨는 시각장애인으로 평생 살아야하는 어린이들이 꿈과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시각장애인이면서 맹학교에 장학금 기부하고 어린이날에 선물

김 씨는 정기적으로 대전맹학교에 장학금을 내놓는가하면 어린이날과 소풍 등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보내온다. 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장애 어린이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해 주는가하면 생필품을 사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김 씨의 형편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그 자신이 시각장애인으로서 맹학교에서 배운 안마와 침술로 작은 지압원을 차려 세 식구 빠듯한 살림을 하고 있다.

“맹학교 어린이들이 내 아들 같아 밝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원하는 것”이라는 김 씨는 “좋은 일을 하고 나면 지압원에 손님이 더 많이 오더라”며 웃었다.

자신도 시각장애인으로서 정부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할 사람이 다른 장애인을 돕는 모습을 보며 맹학교 이화순 교장은 후원금을 거절하기도 하고 선물을 가져오지 말라고도 했단다.

김 교장은 “가장으로서 아들을 키우며 살기도 넉넉지 않을 텐데 맹학교 어린이들에게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어 고마운 마음을 넘어 미안하고 부끄럽다”면서 “후천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상실감이 더 클 수 있는데 김 씨는 늘 밝고 활기찰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줘 학교의 귀감이 되고 있다”고 칭찬했다.

김 씨 “안마?마사지 퇴폐 윤락업소로만 보지 말았으면”

   
 김영묵 씨가 대전맹학교에서 안마와 침술 실습을 하고 있다.

김 씨는 현재 대전맹학교 전공과(대학) 과정에서 안마와 침술을 배우고 있으며 오전에는 학교 수업을 받고 오후에는 자신이 운영하는 지압원에서 일한다.

“사회 통념상 안마와 마사지를 퇴폐윤락업소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김 씨는 “시각 장애인들이 사회에 나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안마 일을 하는데 무조건 나쁘다는 편견으로 보지 말고 생활안마로 이해해 주고 이용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력을 잃기 전까지 회사원으로 근무했던 김 씨가 맹학교 어린이들을 후원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들이 사회에 나가 자립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하고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전문기술을 익히라는 뜻에서다.

김 씨는 “국가가 장애인을 금전적으로 지원해 주는 것도 좋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시력을 잃지 않았다면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과 함께 운동장을 달렸을 텐데 그럴 수 없는 게 가장 안타깝다”는 김 씨는 “비록 아들과 운동은 못해 주지만 같은 또래의 시각장애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일은 계속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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