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추천 여행지-경북 포항시

100년 전 역사 속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전경

포항 구룡포에는 100여 년 전의 시간이 그대로 멈춰있는 공간이 있다. 우리네 집과는 다른 모양의 집들이 줄지어 있는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포항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바다와 육지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호미곶 상생의 손과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는 죽도시장을 필두로 맛있는 구룡포 대게와 과메기, 그리고 내연산 보경사와 운제산 오어사가 이어진다. 포항 경제의 거목이자 멋진 야경을 자랑하는 포스코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이 정도면 대략 포항의 내로라는 여행지는 거의 둘러본 것 같다. 여기에 지난해 개관한 구룡포 근대역사관을 더해보자. 그동안 해돋이 명소로, 또 맛있는 바닷가로만 저장해 두었던 포항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풍경. 약 500m의 거리에 80여 채의 일본식 가옥이 자리한다

구룡포에 일본인 가옥거리가 있는 이유는?

포항 구룡포에는 '일본인 가옥거리'라고 불리던 곳이 있다. 이름 그대로 일본 가옥들이 몰려 있던 곳이다. 수년 전만 해도 아는 사람들만 와서 구불구불 골목을 살피곤 했는데 지난 2012년 구룡포 근대역사관 개관과 함께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라는 이름으로 깔끔하게 정돈된 후 구룡포를 찾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어째서 이곳에 일본식 가옥들이 몰려 있는 것일까. 낡은 건물들은 대부분 보수공사를 마쳤지만 가옥의 크기 등을 고려할 때 제법 부를 갖춘 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이 구룡포에 입성한 것은 100여년 전 쯤으로 알려진다. 가가와현(香川縣)의 고깃배들이 물고기떼를 좇아 이곳까지 오게 된 것. 이후 많은 일본의 어부들이 구룡포로 이주했다. 1932년에는 그 수가 300가구에 달했다니 상당한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구룡포 근대역사관의 자료에 따르면 가가와현의 어부들이 처음 한반도 해역에 나타난 것은 1880년~1884년 경으로 알려진다. 당시 가가와현의 세토내해는 어장이 좁아 어부들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힘없는 어부들은 더 넓은 어장을 찾아 먼 바다로 나섰고 풍부한 어족자원을 품은 한반도에 정착하게 되었다.

고기가 풍부하니 돈이 모일 수 밖에 없었을 터다. 선박경영과 선박운반업, 통조림 가공공장 등으로 부유해진 일본인들은 집을 지었고 일본인 집단 거주지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음식점, 제과점, 술집, 백화점, 여관 등이 들어선 거리는 날로 번창했고 구룡포 최대 번화가로 성장한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일본식 가옥들로 당시 구룡포의 부흥기를 엿볼 수 있다. 약 500m의 거리에 80여 채의 가옥이 남아있다. 

구룡포 공원으로 이어지는 계단
   
 일제강점기 구룡포내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공부하던 심상소학교

이렇게 일본인들이 구룡포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20세기 대한민국의 역사를 뒤바꾼 일제강점기 때문이다. 포항 뿐 아니라 부산이나 통영 등 남해의 바닷가 마을에선 일본식 가옥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10년 8월, 대한제국은 사라지면서 1945년 8월 일본의 패망까지     일제강점기는 지속된다. 일본인 어부들이 구룡포에 들어선     시기와  맞물린다. 지금 남아있는 일본인 가옥을 보면서 당시 구룡포의 우리 조상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종전 후 그들은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남겨진 거리는 이곳에 존재했던 '사람'과     '시간'을 여전히 기억해낸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로 들어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구룡포 우체국으로 가는 것이다. 우체국을 왼쪽에 두고 골목으로 들어서면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가 펼쳐진다. 건물마다 옛날 사진과 함께 설명이 붙어있어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네와는 다른 모양의 집들이 눈길을 끈다.

건물들이 품은 이야기를 잠시 살펴보자. <호호면옥> 간판이 붙은 건물은 당시 구룡포에서 으뜸가는 숙박시설 <대등여관> 이었다. 지금은 냉면 등을 맛볼 수 있는 음식점이다. 현재 일본식 찻집이 들어선 <후루사토>는 80년 전의 인기 요리집 <일심정> 이었다. 이렇게 건물들을 따라 가면 왼편으로 계단이 나온다. 구룡포 공원으로 향하는 길이다. 구룡포 공원에 올라가면 구룡포 앞바다와 일본인 가옥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공원 뒤로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심상소학교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계단을 등 뒤에 두고 바다를 향하면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정문이 보인다.

   
구룡포 공원에서 내려다 본 구룡포 바다


하시모토 젠기치가 살던 곳, 구룡포 근대역사관

정문으로 들어섰을 경우에는 구룡포 근대역사관부터 가도록 하자. 상주하는 문화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안내책자도 챙길 수 있다. 월요일은 휴무다. 구룡포 근대역사관 건물은 1920년대 가가와현에서 온 하시모토 젠기치가 지은 집이다. 2층으로 된 일본식 목조가옥을 짓기 위해 일본에서 건축자재를 들여왔단다. 아기자기한 정원과 일본식 다다미를 품은 전형적인 일본식 집은 구석구석 살필 수 있다.

포항시청 김재우 문화해설사는 "당시 구룡포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큰 축은 하시모토 젠기치와 도가와야 스브로였다"며 "구룡포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이 둘을 중심으로 건설업과 어업 등에 종사하며 자리를 잡아갔다"고 덧붙였다 

   
구룡포 근대역사관

근대역사관으로 들어가보자. 1층에는 100년 전 일본 어부들이 구룡포에 정착하게 된 상황과 당시 일본인들의 생활상이 전시되어 있다. 부츠단과 고다쯔, 부엌 등 당시 이곳에 살았던 이들의 생활상을 재현해 두었다. 2층에서는 일본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볼 수 있다. 당시 구룡포에 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일본인들로 구성된 '구룡포회' 회원들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

"종전이 된 것은 기뻤어요. 너무너무 싫은 전쟁이 끝나니까. 하지만 일본으로 돌아올 때는 외로운 기분이었어요."

구룡포 근대역사관 건물에 살았던 젠기치가(家)의 막내딸 하시모토 히사요(86)씨의 말이다. 어린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그는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 계속 있고 싶었다"며 "친구와 헤어지는 것도 슬펐다"고 했다. 과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과 한국인이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100년     전의 시간을 오롯이 품은 이 거리를 걸으며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여행정보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익산~포항고속도로→포항IC→31번국도→925번 지방도→구룡포

* 대중교통

서울→포항 동서울터미널(1688-5979)에서 매일 40분 간격으로 19회(07:00~19:00) 운행. 4시간30분 소요, 요금 2만3300원. (심야 23:10, 24:00운행, 요금 2만7500원)
부산→포항 동부시외버스터미널(1688-9969)에서 매일 10~15분 간격으로 수시(05:30~21:00) 운행. 1시간 20분 소요, 요금 7700원. (심야 22:30, 23:30운행, 요금 8500원)
광주→포항 종합버스터미널(062-360-8114)에서 하루 4회(08:00, 11:00, 14:00, 17:05) 운행. 4시간 소요, 요금 2만5800원.

2.맛집

죽도시장 내 활어시장 뿐 아니라 그 주변에도 음식점들이 가득이다. 가격은 거의 비슷하다. 마음에 드는 곳에 들어가면 된다.

해양회대게센터 북구 죽도동 / 대게 매운탕 모듬회 / 054-255-0055
환여횟집 북구 두호동 / 물회 / 054-251-8847
마라도회식당 북구 두호동 / 물회 / 054-251-3850
진미고래 북구 남빈동 / 054-248-9668
할매식당 북구 용흥동 / 054-247-9521

3.숙소

아쿠아모텔 남구 구룡포읍 / 054-284-6900
해뜨는집 남구 구룡포읍 / 054-284-2515
나루끝민박 남구 구룡포읍 / 054-276-3709
호미곶한나모텔 남구 호미곶면 / 054-284-9802
호미곶콘도텔 남구 호미곶면 / 010-9555-8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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