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길 충남대 교수

  정용길 충남대 교수  
정용길 충남대 교수

며칠 전 박병석 국회부의장이 “새누리당 대전시장 공천에는 염 시장이 가장 가까이 있다고 본다. 정치에는 신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염홍철시장에 대한 새누리당 공천은 정치적 신의의 문제임을 역설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황당한 느낌이 들었다. 4선의 국회의원이며, 이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의 발언 치고는 너무 사려 깊지 못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우선 박 의원이 요즘 무척 한가한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을 새롭게 바꿔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앞에 놓고 통렬한 반성과 진지한 성찰의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한가하게 남의 정당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민주당의 대전 시장 공천을 말하기에는 시기상조라 하면서 새누리당의 대전 시장 공천은 특정인을 거론하는 모습이 어처구니없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대전시장 공천은 그쪽 정당의 문제이니 맡겨놓고 구태에 찌든 민주당의 변화와 혁신을 이야기하고 실천하기를 간곡히 바란다. 그것이 박 의원이 이 지역민들에게 믿음을 주는 행동이다.

권력 쫓는 기회주의적 행동은 신의 아니라 추악한 거래

박 의원이 말하는 정치에서의 신의란 무엇인가? 신의(信義)란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인간적인 믿음과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어려움이 닥쳐도 묵묵히 올바른 길을 걸어가는 행동을 말한다. 과연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이 지난해 10월 대선을 앞두고 합당을 한 것이 신의를 지킨 행동이라 할 수 있는가? 또한 반대급부로서 특정인의 대전시장 공천을 보장하는 것이 정치적 신의라 할 수 있는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뜻과 무관하게 권력을 쫓아 움직인 기회주의적 행동이며, 추악한 정치적 거래에 불과할 뿐이다.

박 의원은 이 지역의 원로 정치인이다. 따라서 한마디를 하더라도 신중해야 하며, 지역민과 정치 후배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적 거래’와 ‘정치적 신의’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발언을 한 것은 민주당과 박 의원을 지지하는 시민들에게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할 뿐이다. 박 의원의 말대로 하면 앞으로 선거 과정에서 자리를 보장받고 이 당 저 당을 옮겨 다니는 정치 철새를 절대 비난하면 안 되는 일이다. 또한 부당한 약속이라 하더라도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정치적 신의를 지키는 행동이 되는 것이다.


박 의원이 정치적 신의를 이야기하려면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이 합당을 선언하며 발표한 ‘정책합의문’의 핵심 사안들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비판해야 한다. 국회 입법 및 정책 활동 등을 통해 7대 지역정책을 조속한 시일 내에 반드시 실천하기로 한 합의문이 쓰레기통에 던져지는 것이 정치적 신의를 저버린 행동이라 지적해야 한다. 그것이 야당 국회의원다운 행동이며, 정치적 신의를 지키는 행동이다.

박의원은 ‘정치적 거래’와 ‘정치적 신의’ 구별 못하나?

지난 대선에서 대전 지역은 민주당이 주도하는 민주 캠프와 시민사회단체가 주도하는 시민 캠프로 나뉘어 선거를 치렀다. 민주당은 정권창출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기 때문에 민주 캠프는 당연히 사활을 걸고 선거에 참여했을 것이고, 중앙당의 자금 지원도 있었다. 그러나 시민캠프는 오로지 정권교체와 정치혁신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이루기 위해 자발적으로 결성된 조직이었다. 일부 구성원은 ‘담쟁이 포럼’부터 참여했기 때문에 몇 달 동안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다. 존재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민주당으로부터 단돈 일원도 지원받지 않고 스스로 경비를 만들어 캠프를 이끌었다. 일부 젊은 친구들은 자신들의 생업을 접어가면서 혹독한 추위 속에 열성적으로 선거운동을 도왔다.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대전 지역은 새누리당과 대등한 득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후 민주당의 어느 누구도 시민 캠프에서 고생하고 헌신한 사람들에게 “선거에 져서 미안하다” “열심이 뛰어 주어 고맙다”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민 캠프를 동반자가 아닌 경쟁자로 인식하는 듯 여러 부정적 이야기가 들리곤 했다. 당연히 민주당은 시민 캠프에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시했어야 했다. 그것은 너무도 상식적인 도리이며, 정치적 신의이다. 더구나 시민 캠프는 민주당의 정치적 자산으로 키워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실리적인 면에서도 이들에게 그러한 배신감과 상처를 주면 안 된다.

정치적 거래와 정치적 신의를 혼돈해서 안 된다. 정치적 거래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정치적 신의는 지켜져야 한다. 아무리 정치판이라 하지만 신의라는 말이 오용되거나 오염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정치적 신의는 국민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며, 역사 앞에 당당히 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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