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원 칼럼] 대전시 2시, 경상도 11시 만나는 이유

약 1년 전. 디트 뉴스24에서 ‘만담 뉴스’의 제목을 보는 순간 먼저 떠 오른 것은 공무원들이 출근시각에 늦거나 점심시간이 지나서 사무실에 들어오는 것을 비판하는, 즉 공무원들의 기강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방송을 들어 보니 내용이 달랐다. 대전시 공무원들이 현실에서 처하고 있다는 씁쓸한 이야기였다. ‘대전시공무원들은 국회의원보좌관을 만날 때 두시로 약속한다. 이는 상대방을 편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못해서 그렇다.

그런데 경상도공무원들은 11시에 만난다. ‘기름칠’을 하는 경우와 ‘대화만’하고 오는 경우 누가 예산을 더 따올까? 출장비 예산은 (대전시나 경상도나) 같을 것이고, 출장비로는 안 될 텐데 어째서 그런 현상이 벌어질까?

경상도 공무원은 11시.. 대전시 공무원은 2시

그 이유는 경상도, 전라도 쪽 공무원들은 지역상공인들이 도움을 주기 때문에 중앙부처 공무원들을 만날 수 있고 이렇게 하여 예산을 따오면 결국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대전시 공무원은 2시, 경상도 공무원은 11시. 이런 말은 이런 데서 나왔고 결과적으로 지역발전에 엄청난 차이가 나게 된다.

대강 이런 요지였다. 영·호남의 공무원들은 열한시 쯤 찾아가서 용무를 보고 자연스럽게 식사로 이어지곤 하는데, 대전시 공무원들은 국회나 중앙부처에 출장을 가게 되면 점심시간이 지난 두시 쯤 방문한다는 것이다.

‘설마 그럴 리가’하며 믿고 싶지 않은 가운데 어떤 경로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궁금했었다.

‘만담 뉴스’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익살스러운 우스개’로 가볍게 들을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근거가 없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아니겠지’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지역상공인들의 도움’이라는 이야기도 그렇다. ‘영·호남 공무원들에게는 지역상공인들이 경비를 모아 준다’는 이야기는 신빙성이 의문될 뿐만 아니라, 아마 충청지역은 그런 기대를 가지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설령 그런 제의가 있다하더라도 과연 이를 받아들일까 여겨졌다.

하지만 예를 들어 차표 한 장 구하는 것조차 충청과 영?호남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즉, 열차표를 수작업으로 발매하던 시절, 갑자기 출장을 가게 되면 차표 구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충남지사의 업무추진비 사용 개방

그러나 영?호남의 공무원들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언제든지 열차표나 버스표를 구할 수 있고 항공권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영·호남 공무원들과 만나면 그런 일에서부터 얕잡아 보였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각 시·도가 모여 함께 일을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시간 다른 지방에서 온 공무원들은 겸사 일을 보거나 출향 인사를 만나곤 하더란다.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의 현안을 설명하고 친교를 두텁게 하는 기회를 갖는데 비하여 충청인들은 규정된 출장비만을 마련해 가는 형편에 혹시 누구를 만나게 될까 염려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밥을 같이 먹었다’는 의미는 큰 것이고, 반대로 ‘그동안 전화 한번 없더니 아쉬우니까 연락을 한다’라던가 ‘차 한 잔 나눈 적이 없었다’는 말은 인간관계의 소원함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쓰여 진다. 일이 있거나, 필요할 때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평소에 유대의 끈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일 년 전의 대담방송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은 얼마 전 국회인사청문회에서 ‘특정업무경비’ 씀씀이에 관하여 논란이 있었고, 또한 일부 자치단체장의 업무추진비 집행실태와 대전시의 현안부서?공무원에 대한 격려금지급 논란에 대한 보도내용이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안희정 충청남도지사는 자신의 업무추진비를 실?국장들도 사용하라는 파격적인 주문’을 내놓으면서 특히 “예산확보나 갈등관리 등의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소한 비용이 문제가 된다면 도지사 업무추진비를 얼마든지 쓰라”고 강조하며 “나는 안 써도 좋으니 어려워 말라”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파격적인 주문’이라는 표현과 같이 그동안 아랫사람들로서는 거론이 금기시되었던 부분을 과감하게 풀었다는 데 나름의 의미가 있다.

이제 업무추진비에 대한 인식전환과 함께 이와 같은 조치가 다른 자치단체까지 확산되고 일반화되어야 할 것이며 나아가 예산을 편성할 때부터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계상하고 부서장 책임아래 투명하고 적정하게 집행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이른바 ‘2시 공무원’이라는 희화적인 지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편의 하나가 될 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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