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의 잔소리]97

<여설> ▲ 60세의 나이를 이순(耳順)이라고 한다.
즉 ‘60세가 되니 귀가 순해졌다.’는 뜻이다.
 공자께서는 ‘오육십이이순’(吾六十而耳順) 즉 ‘내 나이 60이 되니 남의 말을 듣기만 하여도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다.’라고 하신 말씀에서 60세를 이순(耳順)이라고 한 것이다.

 공자의 이 시기는 고국인 노나라에서 인덕(仁德)정치의 뜻이 좌절 되자 공자는 55세부터 68세까지 약 14년 간 몇 몇 제자들과 함께 노나라를 떠나 각국을 유랑하면서 각국의 왕들에게 인덕정치를 펼치도록 권했으나 각 나라마다 처한 정치현실이 너무나 각박한지라 공자를 존경하면서도 그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심지어 공자의 도(道)에 대해 비방하는 자들도 많이 나왔다.
그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를 유랑하는 동안 식량이 떨어져 굶기도 하고 또한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등 고난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그러나 공자는 이러한 좌절과 고난 속에서도 오히려 세상사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또한 다른 사람의 비방도 거슬리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달관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보통사람의 나이도 60이 되면 산전수전의 세상사를 경험한지라 세상사에 대한 어느 정도 달관의 경지에 이르게 되어 세상사에 대한 여유와 너그러움의 폭이 넓어진다.
그러므로 상대방으로부터 섭섭하고 불쾌한 말을 들어도 젊었을 때처럼 화를 내거나 서운해 하지 않고 어느 정도 여유를 갖고 너그럽게 이해하여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반대로 도리어 나이가 먹을수록 귀가 어두워져 더욱 완고해지기만하고 자기 고집만 내세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쓸데없는 말이나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급적 말수를 줄이고 대신 남의 말을 경청하며 또한 남에게 서운하거나 불쾌한 말을 들었을 때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여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이해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호감을 받는 어른으로 대접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이 먹어서 버려야 할 것이 ‘노욕’, ‘노여움’, ‘노파심’의 3노이다.

▲ 61세를 환갑(還甲) 또는 회갑(回甲)이라고 한다.
또 미화하는 글자로서 화갑(華甲)이라고 쓰기도 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60년 만에 맞는 생일날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이를 치는 법으로 하면 예순한 살에 맞는 생일이다.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의 해가 다시 돌아 왔다는 뜻으로 돌아 올 회(回)자나 환(還)자를 써서 회갑(回甲) 또는 환갑(還甲)이라고 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평균수명이 늘어 예전에는 환갑을 넘기면 노인으로 보았으나 2011년도 조사에 의하면 노인이라 여겨지는 나이는 66.7세로 나타났다.

▲ 62세를 진갑(進甲)이라고 한다.
환갑에서 한해 더 나아간 해의 생일이라고 해서 나아갈 진(進)자를 써서 진갑(進甲)이라고 한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남한의 ‘고희’의 나이인 70세 때의 생일을 ‘진갑’으로 삼고 있다.

▲ 우스갯소리로 65세를 지공이라고 한다.
65세가 되면 지하철을 공짜로 타기 때문에 『지공』(地空)이라는 우스개 신조어가 떠돌아다닌다.

▲ 70세 나이를 ‘고희’(古稀) 또는 ‘종심’(從心)이라고 한다.
‘고희’란 말은 당나라 시인인 ‘두보’(杜甫)가 ‘사람이 70세를 산다는 것은 예로부터 드물구나.’라는 뜻의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고래희(古來稀)를 줄여 70세를 고희(古稀)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칠순잔치를 고희연(古稀宴)이라고 하는 것이다.
70세를 또 다른 말로 종심(從心)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공자께서 말년에 ‘내 나이 70이 되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았다.’라는 뜻의 ‘오칠십이종십소욕불유구’(吾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는 말에서 70세를 종심(從心)이라고 한 것이다.

이시기의 공자는 14년간 각국을 다니면서 인덕정치의 뜻을 펼쳐보려 했으나 모두 뜻을 이루지 못하고 69세에 고국인 노나라에 돌아와서 모든 정치의 뜻을 단념하고 마지막으로 시, 서, 예, 악(詩, 書, 禮, 樂)등 고전 학문연구에 몰두하였다.
이때 공자는 몸과 마음이 성현의 도(道)와 일치 하였다.
다시 말해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 즉 ‘자신의 학문과 도가 하늘의 이치와 통했다.’라고 한 것이다.
그야말로 자신의 학문과 도가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자는 임종 수일 전에 손에 지팡이를 들고 문전을 걸으면서 하늘을 보고 한탄하며 노래했다.
‘태산이 무너지고 대들보가 허물어지며 슬기로운 철인(哲人)이 시드노라.’하며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고 73세(기원전479)에 서거하였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70부터는 모든 욕심과 욕망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 서서히 인생의 갈무리를 준비해야할 시기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죽기 전에 다시 말해 이승의 세계에서 저승의 세계로 가기 전에 반드시 살아오면서 짓게 된 죄업과 때를 말끔히 씻고 가야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갈무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70부터는 현실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버리고 빈 마음으로 오로지 자기를 갈고 닦고 참회하여 깨끗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마침표를 찍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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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충남 교수는 서예가이며 한학자인 일당(一棠)선생과 '정향'선생으로 부터 한문과 경서를 수학하였다. 현재는 대전광역시 평생 교육문화센터와 서구문화원 등 사회교육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 명심보감과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금강일보에 칼럼 ?김충남의 古典의 향기?을 연재하고 있다.

또 어려운 한문이나 경서의 뜻을 쉽고 논리적이고 현대적 정서에 맞게 강의 할 수 있도록 하는 강의서를 집필중이다(김충남의『명심보감』, 김충남의『대학』, 김충남의『논어』, 김충남의『맹자』, 김충남의『중용』, 김충남의『생활한자』, 김충남의『고사성어』) 손전화 010-2109-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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